호주 원주민 작가, 서구 중심 시선 비판
식민 기록 속 꾸며낸 신화로 침략 미화
보이드, 옛 만화·악보 위 수천개 점 찍어
위계 걷어내고 다른 시선서 역사 조명
“내 작업, 일방적 시선을 흩뜨리는 과정”
어떤 시선은 기록으로 남고, 또 다른 말들은 가장자리에서 차츰 지워진다. 식민적 서사가 남긴 빈자리 위에 호주 원주민 작가 다니엘 보이드는 점을 찍고 또 찍는다. 점들은 렌즈가 되어, 우리가 오랫동안 ‘역사’라 믿어온 장면들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되비춘다.
보이드의 작업 세계는 2011년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확장됐다. 당시 그는 호주 최초의 수인(囚人) 선단과 관련한 유물, 박물관이 축적해온 식민의 기록들을 면밀히 연구했다. 이 경험은 ‘누가 기록하고, 무엇이 지워지는가’라는 질문을 그의 작업 중심에 놓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보이드는 식민주의, 지식 체계, 문화적 가치의 위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토대로 서구 낭만주의가 구축한 권력 구조와 신화적 서사를 끊임없이 해체·재구성해왔다. 그의 점(dot) 회화는 바로 그 질문들을 시각적 언어로 번역해온 방식이자, ‘보이지 않는 역사’를 다시 부르는 그의 지속적 탐구의 핵심이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에서 보이드는 1958년 호주 정부가 제작한 아동용 학습 만화의 장면들을 끌어와 서구 중심의 시선으로 쓰인 역사를 들여다본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빌렸을 뿐, 페이지 곳곳에는 유럽 정착민의 시선과 식민적 상상력이 자연법처럼 스며 있다. 실재하지 않는 내해를 찾아 헤매던 유럽 탐험가와 그를 안내한 원주민 그리고 사랑과 존경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과 원주민들. 보이드는 오랫동안 전승돼온 신화적 서사를 비롯해 서구 낭만주의가 구축한 미의 전형 아폴론 등을 캔버스 위로 올려 수천 개 점을 덧입힌다.
“제가 원이라고 부르는 이 점들은 위계가 없는 형태입니다. 가장자리와 중심까지 모든 위치에서 거리가 똑같은 형태니까요. 이 점들은 세계를 구성하는, 마치 원자나 입자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보이드는 점은 생태적이고 우주론적인 언어이자 하나의 시선을 여러 개의 시선으로 분해하고 흩뜨리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점들의 떨림 속에서 단단했던 서사와 이미지는 잘게 조각나고, 지워진 기억들은 비로소 들어설 틈을 얻는다. 관객은 지워진 요소들과 남겨진 흔적 사이를 걸어 다니며 자신의 렌즈를 구성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전시장 중심에 걸린 이 대형 회화 맞은편에서는 보이드 작업의 핵심 모티브인 ‘렌즈’가 설치작품 ‘무제(Untitled·PCSAIMTRA)’로 확장된다. 취조실에서 사용되는 단방향 거울 다섯 개는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관계를 시사하며, 외부의 시선으로만 사건을 이해해온 시간들을 상기시킨다. 관람객이 움직이는 순간 시선의 주체가 뒤바뀌고, 역사라는 것도 결국 누가 바라보고 기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층위로 형성된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한다.
또 다른 전시장 한옥 공간에서는 악보 형상의 회화와 아동용 학습 만화 콜라주가 이 문제의식을 이어받는다. ‘애버리지널 난센스 송(Aboriginal Nonsense Song)’과 ‘코로보리(Corroboree)’ 같은 제목이 붙은 악보는 비(非)서구 언어가 서구식 표기법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비하와 왜곡을 입는지를 은유한다. 전시는 2026년 2월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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