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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 청소차 뒷발판에 올라탄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했다 [탐사기획-당신이 잠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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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2-14 17:36:46 수정 : 2025-12-14 20:54:29
탐사보도팀=조병욱·백준무·배주현·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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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죽거나 다치거나
김동철씨의 죽음
인생 스트라이크 꿈꿨지만…
죽을 만큼 힘들어도 가족들 생각에 신발끈 매
해뜨기 전에 작업 끝내려고 뒷발판 매달렸다
어둠 속 전봇대 못 본 채 차량 후진 충돌 참사
가족의 1번 헤드핀은 그렇게 쓰러지고 말았다

그 새벽 아빠가 살아 돌아올 확률은 0%였다고, 챗GPT가 말했다. 청소차 뒤편에 매달려 있다가 전봇대와 부딪힌 아빠는 그 자리에서 크게 다쳤다. 살릴 방법은 없었을까. 서연(가명·18)은 가능성을 곱씹으며, 인공지능 대신 다른 어른들을 붙들고 묻고 싶었다. 압박, 압궤, 저혈압, 쇼크. 아빠에게 사망 진단서 속 의학 용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지난달 17일 밤 서울 금천구의 한 주택가에서 형광색 작업복을 입은 환경미화원이 청소차 적재함에 쓰레기봉투를 싣고 있다. 최상수 기자

서연은 조숙한 막내딸이었다. 대인기피증이 있는 큰오빠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둘째 오빠 사이에서 누나 역할을 해야 했다.

잠결에 난데없는 전화를 받고 달려간 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실, 울고 있는 엄마를 입구에 잠시 세워둔 채 시신을 먼저 확인한 사람도 서연이었다. 같이 들어간 외삼촌은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는 아빠의 손을 잡았다. “아직도 손이 따뜻해.” 외삼촌이 말했다.

아빠가 신던 볼링화 한 켤레는 여전히 신발장에 남아 있다. 아빠 김동철(55)은 옆 동네 볼링장을 매주 찾곤 했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세원볼링센타는 ‘센타’라는 표기가 어울리는, 동네 터줏대감 같은 볼링장이었다. 지하 공간 특유의 습기와 텁텁한 공기, 볼링공이 19.5m 길이의 레인 위를 굴러가 마침내 핀과 쨍그랑 부딪히며 쓰러지는 소리. 이런 것들을 그는 사랑했다.

볼링은 동철에게 인생이었다. 동철은 사랑도, 우정도, 직업도 볼링장에서 찾았다.

아빠는 총각 시절에도 엄마를 데리고 볼링장을 자주 찾았다고 했다. 엄마는 볼링공 한 번 만져본 적도 없으면서, 친구 소개로 만난 깡마르고 눈썹이 진한 남자의 공이 마룻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엄마는 “당시에는 뭐가 씌었는지 그게 그렇게 재미있더라”며 좋았던 시절을 회상했다.

동철이 양천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볼링 동호회 ‘경신코리아’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5년 전부터였다. 1990년 시작돼 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는 동호회에서 동철은 “차분하고 조용하고 묵묵한” 사람, “말 없고 내성적인” 친구, “잘해도 잘한다고 티 안 내는” 회원으로 통했다.

170㎝를 간신히 넘기는 키에 비쩍 마른 동철이 흰색과 분홍색, 하늘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화려한 패턴의 동호회 유니폼을 입은 모습은 어딘가 어색했다. 머리숱이 줄어들기 시작한 동철은 볼링장에선 늘 검은색 야구 모자를 쓰고 다녔다. 영정으로 쓰인 증명사진에서 동철은 정장 차림에도 모자를 빼먹지 않았다.

동철은 뼈대가 굵고 힘이 셌다. 어렸을 적 별명은 ‘용가리 통뼈’였다. 동철의 볼링공 무게는 15파운드(약 6.8㎏)였다. 보통은 자기 체중 10분의 1 정도 되는 공을 쓰는데, 척 봐도 동철에겐 과하게 보였다. 무거울 법한데도 동철은 섬세하게 공을 던졌다. 일직선으로 구르던 공이 핀에 가까워질 때 갈고리 모양으로 휘어 1번과 3번 핀 사이 측면을 타격하는 ‘훅 볼’이 그의 주무기였다.

동호회 회원 이종매는 “볼링을 그림처럼, 선수처럼 쳐요. 스핀을 먹여서 뱅글뱅글 도는 공이 핀을 치는 거야”라며 동철을 떠올렸다.

세원볼링센타 한구석 게시판에는 11월24일 종료한 올해 ‘월요리그’ 순위표가 붙어 있었다. 이미 세상에 없는 동철은 평균 196.2점, 76명 중 15위로 올해 리그를 마쳤다.

“동철이는 실력으로 치면 A등급이지. 200점 정도 되면 엄청 잘 친다고 하거든.” 동호회 안에서 동철보다 순위가 높은 두 사람 중 한 명인 허정도가 말을 보탰다.

 

‘퍼펙트게임’은 동철을 포함한 모든 볼링인의 꿈이다. 10번 연속으로 스트라이크를 기록한 뒤, 2번 더 스트라이크를 치면 300점 만점을 받는다. 이를 퍼펙트게임이라고 부른다. 프로 수준에서 스트라이크 확률은 60% 수준이라고 한다. 0.6의 12승을 계산하면 0.0021, 열 두번 연속 스트라이크가 나올 확률은 0.2% 남짓이다. 이 순간을 평생 경험하지 못하는 프로 선수도 수두룩하다.

 

지난 9월18일 숨진 환경미화원 고(故) 김동철씨의 영정.

동철이 마지막으로 리그에 참여한 것은 사고 사흘 전인 9월15일이다. 25주차 리그 경기가 열린 그날, 동철은 두 번째 게임에서 자신의 올 시즌 최고점 257점을 기록했다. 9연속 스트라이크를 친 뒤 10프레임에서 아쉽게 스트라이크를 놓쳤을 때나 나오는 점수다. 스페어로 남은 핀 3개를 두 번째 투구로 처리하면 정확하게 257점이 채워진다. 이 계산이 맞는다면, 동철은 눈앞에서 퍼펙트게임을 놓친 셈이다.

 

“볼링이 왜 사람 잡는 줄 알아? 다음번엔 꼭 스트라이크 칠 거 같거든.” 볼링을 소재로 한 영화 ‘스플릿’의 등장인물 대사다. 동철도 어쩌면 다음번에는 퍼펙트게임을 달성하겠노라 다짐했을지 모른다. 동철의 삶은 그랬다. 이번엔 스트라이크겠거니 할 때마다 번번이 스페어가 남았다.

 

시작은 가방 공장이었다. 볼링장에서 알게 된 형님의 소개로 스무 살에 가죽 원단을 미싱해 가방으로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열여덟에 집을 뛰쳐나와 빈손으로 세상을 마주한 동철은 그때 처음으로 먹고살 걱정이 없어졌다.

 

예상보다 빠르게, 축복 같은 첫 아이가 찾아왔다. 엉겁결에 동철은 아빠가 됐고, 남편이 됐다.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공장 사장의 권유로, 같은 공장 한 귀퉁이를 빌려 ‘한 지붕 두 업체’를 차렸다.

 

큰 기업으로부터 하청을 받은 작은 기업에서, 다시 하청을 받아 가방을 공급했다. 실제로 벌이가 좋아졌던 시기가 있었다. 강서구 화곡동 한 건물의 지하 공간을 빌려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3명을 고용하기도 했다. 결혼 뒤 발길을 끊었던 볼링장을 다시 찾았던 것도 그때쯤부터다.

 

한숨 돌리는가 싶었던 순간 불청객이 찾아왔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주문량은 급감했다. 벌이는 줄었는데 나가는 돈은 그대로였다. 어린 줄만 알았던 막내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동철은 강서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찾아 ‘까대기’를 치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부터 온종일 산지에서 날아온 과일과 채소 상자를 트럭 짐칸에서 내렸다. 쿠팡 물류센터를 찾아 택배 상품을 분류하고 싣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가족의 생계와 공장의 존속은 7번과 10번 볼링핀처럼 여전히 떨어져 있었다. 세 번째 줄 양 끝 7번과 10번 핀만 남은 상황은 스페어 처리가 가장 어렵다는 일명 ‘뱀의 눈’으로 불린다. 공 하나로 쓰러뜨리기엔 거리가 너무 멀어서다. 미국프로볼링 통계에 따르면 뱀의 눈을 단번에 처리할 확률은 0.7%다. 새벽 3시까지 일하고 자리에 누우면 어디선가 나타난 뱀이 똬리를 튼 채 노려보는 듯했다.

 

동철은, 이제 공이 아니라 핀의 입장이었다. 그것도 맨 앞줄 1번 자리의 헤드핀이었다. 동철이 쓰러지면 네 식구가 차례로 무너질 터였다.

 

환경미화원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다.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에서 우연히 본 채용 공고가 동철의 눈을 잡아끌었다. 환경미화원이라고는 해도, 구청 소속으로 거리에서 비질을 하는 이들과는 달랐다. 지방자치단체의 하청을 받아 종량제 봉투에 담긴 쓰레기나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민간 회사 소속이었다. 아내는 동철을 말렸다.

 

“너무 힘들고 위험하지 않겠어? 차라리 예전에 하던 상하차가 낫지 않아?” “이제 일자리가 안 구해져. 가릴 때가 아니야.”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다.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을 다니는 것은 처음이었다. “실업급여도 탈 수 있고, 몸이 아프면 쉴 수도 있대.” 걱정하는 아내를 달랬다. 일을 마칠 때쯤 일출을 보며 너절해진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죽을 만큼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면서도 동철은 기꺼이 볼링공 대신 쓰레기 봉지를 던졌다. 이번엔 내심 스트라이크를 예감했다.

 

사고가 일어난 건 9월18일 오전 3시20분이었다. 해가 뜰 때까지 세 시간 남짓 남았다. 동철과 같은 근무조로 일하는 문전수거원 김상선은 어두운 빌라촌을 달리듯 걷고 있었다. 날이 밝은 뒤 쏟아질 출근 행렬을 생각하면 조금 더 서둘러야 했다. ‘□□빌라’ 또는 ‘○○주택’이라는 글자를 외벽에 붙인, 어느 동네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똑 닮은 붉은 벽돌 건물들이 상선 뒤로 스쳐 지나갔다.

 

최대 6.1t을 적재할 수 있는 덤프식 압착진개차의 너비는 2.3m에 달한다. 거미줄 같은 도로는 좁았다. 길 곳곳에 삐쭉빼쭉한 전봇대와 주차된 차들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좁게 느껴졌다. 차량이 진입하기 전 골목을 샅샅이 훑으며 쓰레기 봉지를 한데 모아놓는 게 상선의 역할이었다. 상선이 일정한 간격으로 쓰레기를 쌓아놓으면, 청소차 후면 발판에 올라탄 상차원 동철이 적재함에 쓰레기를 옮겼다.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운전원 A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길가에 주차된 차량과 접촉 사고라도 일어났을까. 미지근한 불안감이 상선의 전신에 퍼졌다.

 

지난달 17일 밤 서울 금천구의 한 아파트 단지 분리수거장에서 환경미화원이 일반쓰레기 봉투를 청소차 적재함에 싣고 있다.  최상수 기자

청소차와 순찰차가 마주친 게 화근이었다. S빌라 앞 도로는 연석과 연석 사이를 기준으로 폭이 5.5m에 불과했다. 순찰차를 먼저 보내기 위해 A씨는 후진 기어로 바꿨다.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슬며시 밟는 그는 어둠 속 전봇대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반사판 하나 붙어 있지 않은 콘크리트 덩어리는 백미러 속에서 어둠과 구분되지 않았다. 이윽고 차량과 전봇대가 충돌했다. 그 사이 동철이 있었다.

 

119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동철은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오른손의 뼈마디가 피부를 뚫고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 갈비뼈는 안쪽으로 밀려들어간 상태였다. 복부 피부가 찢긴 자리에서 피가 흘렀다.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전인 3시49분, 동철의 심장이 멈췄다. “죽을 만큼 힘들다”는 입버릇은 복선이 됐다. 쉰여섯 번째 생일이 열흘 남은 날이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이달 2일 A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불구속 송치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실수였다”며 혐의를 인정했다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강서구청과 동철의 회사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어겼는지 조사하고 있다.

 

“손톱이 다 뒤집혔대. 멈추려고 그랬나 봐.” 송춘호가 말했다. 춘호는 열여덟 살에 동네 볼링장에서 동철을 만났다. 두 사람이 말을 놓기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했다. 사흘 내내 빈소를 지킨 그는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까지 유족과 함께하며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춘호는 “유골함에 뼛가루가 다 안 들어갈 정도로 통뼈였더라고. 장의사가 자기도 그런 건 처음 봤대요”라고 말했다.

 

11월28일 오전 3시5분, S빌라 앞에 1t 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새벽 배송 중인 쿠팡 기사가 무심하게 상품을 날랐다. 10분 뒤 형광 작업복을 입은 상선이 도착했다. 작업복 가슴팍에서 못 보던 발광다이오드(LED)등이 점멸했다.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번갈아 빛나고 있었다. 40여분 뒤 나타난 청소차에 동철이 매달렸던 발판은 없었다. 동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발판 대신 청소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노란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반사판이, 바로 그 전봇대 표면을 덮고 있었다.

 

살릴 방법은 없었을까. 상선은 머뭇거렸다.

 

“만약에 동철이가 거기로 안 가고 내가 거기로 갔으면 사고가 안 났을 수도 있고, 내가 죽었을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걸 누굴 탓하겠어요?” 탓할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상선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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