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증권이 미국 나스닥 상장 증권사 시버트(Siebert Financial)와 손잡고 현지 법인 설립에 나서며 ‘한국형 금융 플랫폼’의 글로벌 수출에 시동을 걸었다. 넥스트증권은 지난 10월2일 시버트와 전략적 협약을 맺고 100만달러(약 14억8000만원)를 출자해 현지 법인을 설립한다고 밝힌 바 있다. 넥스트증권이 지분 100%를 보유하는 이 법인의 초대 수장은 김승연 넥스트증권 대표가 겸임한다. 단순한 지점 설립이 아니라 인공지능(AI) 기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기술 컨설팅, 플랫폼 수출, 내년에 계획된 미 리테일 시장 진출까지 염두에 둔 모델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넥스트증권의 이번 행보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 흐름과 맞물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경로를 둘러싼 전망이 엇갈리고, AI 투자를 둘러싼 미 빅테크 기업의 레버리지 확대 논란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자본시장은 높은 변동성을 경험하고 있다. 각국 규제환경 변화와 개인투자자의 빠른 행태 변화는 전통적인 금융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재점검을 요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형사인 넥스트증권이 ‘콘텐츠·AI·글로벌 확장’을 전면에 내세워 전 세계적인 금융업 재편에 직접 뛰어든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전략의 중심에 선 김 대표의 이력을 주목한다. 그는 구글 등 플랫폼과 디지털 콘텐츠 사업에서 10년 넘게 경력을 쌓은 뒤 틱톡의 동남아시아 글로벌 비즈니스 솔루션 총괄을 맡아 동남아 6개국 매출과 손익(P&L)을 책임졌다. 이후 토스증권 대표로 자리를 옮겨 출범 초 단기간에 흑자 구조로 전환시키며 리테일 사업을 키운 인물로 평가된다. 넥스트증권은 이 경력을 높이 사 지난해 김 대표를 영입했고, 사명도 기존 ‘SI증권’에서 ‘넥스트증권’으로 바꾸며 리테일·플랫폼 중심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김 대표가 그리는 넥스트증권의 큰 그림은 “금융과 콘텐츠, 기술이 결합한 한국형 금융 플랫폼(K파이낸스)을 글로벌 시장에 수출하겠다”는 구상으로 요약된다. 단순히 미 주식 거래를 중개하는 증권사가 아니라 투자자가 금융정보를 콘텐츠 형태로 소비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거래까지 이어지도록 돕는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해외 금융사의 주요한 흐름도 이 같은 전략의 배경이 되고 있다. 미국·유럽의 증권업계에서는 이미 몇년 전부터 투자 경험의 중심이 차트와 호가창 위주의 전통적인 MTS에서 벗어나 콘텐츠 기반 탐색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중국계 글로벌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업체 타이거 브로커스(Tiger Brokers)와 위불(Webull)이 대표적이다. 두 회사는 모바일에 최적화된 직관적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실시간 콘텐츠·커뮤니티 기능, 다국어 지원, 미국·홍콩·싱가포르 등 다국가 거래 연계를 앞세워 1000만명이 넘는 글로벌 사용자를 확보했다. 타이거 브로커스는 고객 자산이 1000억달러를 넘어서며 나스닥 상장까지 마쳤고, 위불은 미 리테일 시장에서 로빈후드(ROBINHOOD)에 이어 영향력 확대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흐름을 압축하면 ‘투자는 정보 소비이고, 정보 소비는 콘텐츠 플랫폼에서 일어난다’는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유튜브와 틱톡,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금융정보가 소비되는 속도는 빠르게 상승했지만, 기업의 공식 공시나 기업설명(IR) 자료를 원문으로 꼼꼼히 읽어보는 투자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김 대표 역시 “테슬라 투자자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테슬라 홈페이지 IR 섹션에 있는 분기 보고서를 직접 찾아본 이는 거의 없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투자자의 정보 소비처가 이미 ‘콘텐츠 플랫폼’으로 이동한 상황에서 금융사 자체 플랫폼이 신뢰할 수 있는 금융 콘텐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넥스트증권 전략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넥스트증권이 내년 상반기 공개를 예고한 신규 MTS는 구조 자체가 기존과 다르다. 그 핵심은 ‘콘텐츠에서 매매로의 즉시 전환’이다. 투자자는 애플리케이션 안에서 쇼트 폼(짧은 영상) 형태의 금융 콘텐츠를 시청하면서 기업의 실적, 산업 동향, 리스크 요인 등을 빠르게 이해하고, 그 아래에 노출되는 티커(종목 코드)를 눌러 바로 매수·매도 주문을 넣을 수 있다. 투자자가 차트와 호가창을 먼저 띄웠다가 따로 뉴스를 찾아보러 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방식이 아니라 콘텐츠가 곧 매매의 출발점이 되는 구조다.
여기에는 AI 기술이 결합한다. 개별 기업의 분기 실적 발표, 공시 내용, 애널리스트 리포트, 시장 뉴스 등을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해 영상 스크립트로 변환하고, 이를 자동으로 영상 콘텐츠로 제작하는 방식이다. AI가 만든 영상에는 매출 성장률, 영업 이익률, 밸류에이션 지표까지 핵심 데이터가 정리돼 포함되고, 투자자는 이를 짧은 영상으로 소비한다. 넥스트증권은 투자자의 관심 종목, 과거 거래 패턴 등을 반영해 콘텐츠가 개인별로 추천되도록 할 계획이다. 언어 장벽을 낮추기 위해 영어 등 다국어 지원도 기본으로 탑재한다는 구상이다.
김 대표는 “지금의 MTS는 정보 소비와 거래를 분리해 불필요한 마찰을 만든다”고 지적해 왔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 일부는 투자 관련 정보를 텍스트·표 중심에서 벗어나 AI 생성 콘텐츠 형태로 제공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로빈후드는 실시간 뉴스·테마 분석을 자체 알고리즘으로 제공하며 콘텐츠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넥스트증권은 이런 경쟁에 한국식 콘텐츠 감각과 AI 기반 자동 제작·개인화 기술을 앞세워 뛰어들겠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이제는 브랜드 로고나 건물 크기가 아니, 콘텐츠 자체가 신뢰의 기준이 되는 시대”라며 “데이터 출처가 명확하고, 설명가능한 구조를 가진 금융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하는 회사가 신뢰를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생성형 AI가 대량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시대일수록 콘텐츠의 신뢰성과 설명가능성(XAI·eXplainable AI), 그리고 이를 관리하는 모더레이션 역량이 금융사의 핵심 경쟁력이 된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 추세와도 맞물린다. 현재 전 세계 자본시장에서 관찰되는 기술 트렌드는 크게 세가지인데, 가장 먼저 AI 기반 정보 생산의 대중화를 꼽을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AI 기반 마켓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솔루션을 선보이고 있다.
투자자 경험 중심의 플랫폼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로빈후드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수수료 혁신을 앞세워 미국의 밀레니얼·Z세대 투자자를 끌어들였고, 이후 위불과 타이거 브로커스가 멀티마켓·저비용·모바일 최적화 전략으로 글로벌 사용자 기반을 확대했다.
글로벌 분산 투자도 크게 확산하고 있다. 투자자가 특정 국가의 정보·플랫폼에 묶이지 않고, 하나의 앱 안에서 미국·유럽·아시아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파생상품을 동시에 거래하는 구조가 점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은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고, 모바일 기반 정보 소비와 커뮤니티 중심 투자 문화가 발달해있다. 개인의 직접 투자와 ETF를 통한 ‘제2의 동학개미운동’ 흐름이 이어지고 있고, AI·반도체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 글로벌 기술 사이클의 수혜를 직접 받는 구조다. 여기에 정부가 코스피 5000 시대를 공약으로 제시하고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 상법·세제 개편, 국민성장펀드 조성 등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해외 투자자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넥스트증권은 이러한 국제 환경에서 한국만의 디지털 소비문화를 경쟁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행보는 미국의 대표적인 온라인 브로커 IBKR(Interactive Brokers)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데서 알 수 있듯 가능성과 기술력을 검증받았다.
김 대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소비 속도, 모바일 기반 투 문화, 엔터테인먼트·게임·광고산업에서 축적된 콘텐츠 생산 역량, 그리고 대중가요·드라마·게임 등을 통해 이미 검증된 K콘텐츠의 글로벌 확장력을 가진 한국이 기술·데이터·사용자 경험(UX) 설계를 금융에 결합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K파이낸스’로 승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넥스트증권의 미 법인이 본격 가동돼 AI·콘텐츠·글로벌 전략이 실제 서비스와 실적에 어떻게 반영될지에 따라 한국 금융산업이 앞으로 몇년간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힌트가 될 전망이다. 금융사가 단순한 중개업자를 넘어 ‘경험과 신뢰를 설계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는 흐름에서 넥스트증권이 던진 승부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국내외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선임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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