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북 협상을 이끌었던 전직 미국 외교관들이 자신들의 협상 경험에 비춰 새로운 대북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며 비핵화 목표의 현실적 접근을 언급했다.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제10차 한국국제교류재단(KF)-CSIS 한미전략포럼’에서다. 장기적으로 비핵화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는데 있어선 현실적으로 북한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목표 조정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갈루치, “비핵화 목표 전면에 내세우면 협상 어려워”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미국 측 수석 협상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석좌교수는 3일(현지시간) 이날 포럼에서 시드니 사일러 CSIS 선임고문이 북한 비핵화를 주제로 진행한 첫 번째 토론에서 ‘북한 비핵화가 여전히 유효한 목표인가’라는 질문에 “답은 아니오”라며 “그 목표가 한 번이라도 현실적이었던 적이 있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북한이 러시아와의 밀착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자신감도 높아졌을 것이라며 “북한의 핵 능력은 상당하고,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의 핵보유는 헌법에 명시된 국가 정체성의 일부이고 영구적이며, ‘비핵화’라는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북한과 다시 대화하자고 하면서 비핵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도움이 될까. 제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갈루치 교수는 “그렇다고 비핵화를 완전히 포기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장기적 목표로서 유지할 수는 있다”면서도 “지금 협상에서 실질적으로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은 군비통제에 더 가깝다고 본다”고 말했다. 냉전 시절 군비통제가 위기 상황에서의 안정성과 군비 경쟁을 방지했고, 핵군축은 언젠가 도달할 먼 목표였는데 북한 문제도 비슷한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핵은 미뤄두더라도, 전쟁 위험을 줄이고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논의할 수 있는 것들을 여전히 많다”며 제재 완화, 연합훈련 조정,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등을 예로 들었다. 또 “30년 된 문제를 정상끼리 만나 점심 먹으면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충분한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정상회담이라는 화려한 목표만을 향해 성급하게 달려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과 다시 논의해야 하고, 논의할 수 있는 것들도 많으며, 비핵화를 지나치게 밀어붙이는 방식은 오히려 협상의 문을 닫아버릴 수 있다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비건, “北 원하는 것 파악해야”
도널드 트럼프 1기에서 대북특별대표로 2019년 제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등을 이끈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은 같은 질문에 “지금 상황이 매우 전망이 어두운 건 사실이지만 비핵화가 완전히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짚었다. 그는 다만 미국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비핵화’를 언급할 때마다 “조금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느낌”을 받는다며 “마치 과거 관성을 반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미국과 북한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면, 그 기대와 목표는 싱가포르와 하노이 때와 같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비건 전 부장관은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의도와 능력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확한 인센티브를 파악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 북한이 바랄 것이라고 생각한 것에 기반해 협상을 설계했지만, 그게 북한이 진짜 원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노이 회담에서 경제와 외교 관계 정상화를 비핵화와 병행해 추진하는 로드맵을 설계했지만, “북한이 그런 것을 원할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와 투사”였다는 것이다. 북한의 목표가 정권 안정, 세습 체제의 유지인 상황에서 개방과 관련된 목표는 북한이 원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만약 우리가 ‘북한이 원하는 결과가 이것’이라고 단정하고 협상을 설계하면 또다시 실패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비건 전 부장관은 다만 일반적으로 ‘노딜’ 회담으로 불리는 하노이 회담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실패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하노이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외교가 끝났다고들 생각하지만, 몇 달 뒤 김정은이 판문점으로 깜짝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사실은 그 인식을 뒤집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하노이를 실패나 거부로 규정하는 시각이 많지만, 가장 정확한 표현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정도”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기에서 북한과의 협상을 이어가려는 동인이 있다는 취지다.
비건 전 부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정한 단계의 마무리나 안정 상태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가능성은 없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한반도 핵문제)가 해결 가능한 문제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첫 임기를 시작하면서 국제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로 북한이 미국의 가장 심각한 위협 중 하나라는 보고를 받고 직접 검토하면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 ‘오래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본능적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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