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정신교육보다 현실교육…다시는 같은 비극 없어야" 소망
"상현이 추모비를 보면 병사들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추상적인 정신교육 말고, 신병들이 들어오면 꼭 한 번씩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이런 비극을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육군 일반전초(GOP) 부대에 전입한 지 한 달 만에 간부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스무살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김상현 이병의 3주기를 맞은 지난 28일 부친 김기철씨와 모친 나미경씨가 아들의 추모비 앞에 섰다.
'존중·배려 기원'이 큼지막하게 쓰인 추모비 앞에서 김씨 부부는 이제는 별이 된 아들을 그리워하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상현이가 GOP를 지원해서 들어갔다길래 제가 '왜 힘든 곳을 일부러 찾아가느냐'라고 화를 냈었어요."
남들은 마다하는 GOP를 지원해서 들어간 김 이병은 아버지의 핀잔에 "이제까지 외국에서 너무 인생을 쉽게 산 것 같다. 군 생활을 빡세게 한 번 해보고 사회에 나가고 싶다"고 답했다.
아버지 김씨는 그런 아들이 못마땅하면서도 속으로는 참 대견했다. 남한테 신세 지거나 싫은 소리 일절 못하는 아들에게 평소에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 네 것 다 내주게 생겼다"고 잔소리했던 터였기 때문이다.
김 이병은 다섯 살 때부터 중국에서 살았지만, 소위 '국뽕'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국에 자부심이 강했다.
아버지 김씨는 "'대한민국이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다, 몇 년만 살아보면 한국도 부조리가 심하다는 걸 알게 될 거다'라고 했는데 상현이가 그때는 전혀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실제로 군대에 가서 부조리를 겪으니 혼란스러웠겠죠. '내가 알던 대한민국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라고 탄식했다.
고국보다 외국에서 지낸 날이 더 많았던 김 이병은 한국어거 어눌했다. 어눌한 한국어 실력은 유명 웹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민폐 캐릭터'와 오버랩되어 선임병들의 놀림감이 됐다.
2022년 9월 5일 입대 후 10월 27일 육군 12사단 33소초 GOP 부대에 전입한 지 한 달여 만인 11월 28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김 이병이 부대에서 겪은 일은 너무나 가혹했다.
김 이병의 최고 선임병이었던 상황병 김모(23)씨는 사건 당일 오후 8시 7분께 초소에서 경계근무 중인 김 이병에게 전화해 수하를 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했다.
김씨는 "막사 와서 이야기하자, 할 말을 생각해와라, '죄송합니다' 하면 각오해라"라며 협박했다.
당시 김 이병은 북쪽 경계를 하고 있었고, 남쪽 경계를 맡은 선임병이 수하를 해야 했으나 용변을 보러 간 사이 수하를 하지 못했는데 그 책임을 오롯이 김 이병에게 추궁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김 이병은 김씨의 전화를 받은 지 약 40분 만에 갖고 있던 총기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김 이병의 죽음으로 부대 내 괴롭힘이 만연해있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당시 분대장을 맡았던 하사 민모(25)씨는 김 이병의 말투를 조롱하듯이 따라 하며 모욕했고, 선임병이었던 송모(23)씨는 김 이병이 GOP 근무 내용을 제대로 숙지 못한 점을 질타하며 괴롭힘을 일삼았다.
33소초의 이름을 딴 '33노트'에는 GOP 경계 작전, 주야간 작전 현황 보고, 근무, 상황 조치 등이 담겨있었는데 김 이병은 이를 충분히 암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암기를 강요당했다.
오랜 중국 유학 생활에다 복무 당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 경계 태세가 격상됨에 따라 충분한 신병 교육 기간 없이 바로 경계근무에 투입된 김 이병으로서는 GOP 근무 내용을 숙지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음에도 배려는 없었다.
김 이병은 또 다른 선임병의 지시로 근무 중 실수를 '실수 노트'에다 적어 선임병들에게 검사받기도 했는데, 같은 실수를 썼다는 이유로 "똑같은 거 쓰면 너 진짜 죽어"라는 협박까지 받았다.
결국 초병협박, 모욕, 강요, 협박 혐의가 적용된 가해자 중 선임병 김씨는 징역 6개월을, 하사 민씨는 징역 4개월을, 선임병 송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올해 10월 판결이 확정됐다.
그사이 김 이병은 사망한 지 2년여가 지난 올해 2월에야 순직 인정을 받았고, 유가족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지난 10월 28일 김 이병이 피를 뿌리고 숨진 그 자리에 추모비가 건립됐다.
그제야 김 이병은 냉동실을 벗어나 영면에 들 수 있었다.
김 이병의 사망 이후 수사, 재판, 순직 인정, 추모비 건립, 영결식까지 약 3년의 기간 유가족에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은 '가해자들의 첫 재판'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 김씨는 "만약에 가해자들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면 받아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제일 고민스러웠어요.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였죠. 재판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죠"라고 회상했다.
그는 사건 이후 TV에 군인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채널을 돌려버린다. 길에서 군인을 마주치기만 해도 힘들다.
어머니 나씨 역시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 엄마 잘 잤어?"라며 꼭 안아주던 아들이 금방이라도 살아 돌아올 것 같은 생각에 여전히 하루하루를 살아내기가 힘들다.
신경 안정제에 의존하는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군 사망사고 사건 유가족들이 신경 안정제를 달고 사는 것도 같은 아픔을 겪으면서 알게 됐지만, 위안이라기보다 유가족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를 부여하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행여 잠결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집도 1층으로 옮겼다는 김씨는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라며 한탄했다.
김씨는 아들이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근무에 투입됐다가 사건이 일어난 만큼 "훈련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람 목숨"이라며 "기본 매뉴얼 교육이 충분히 시키고 현장에 투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인원이 부족해서 관리가 어렵다', '훈련 중이라 바빴다' 같은 핑계 대지 말고 국방부에서 병영 부조리에 더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써야 한다"며 "징집할 때 손·발가락 10개가 멀쩡하게 붙어 있었으면, 그 상태로 제대시켜주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연합>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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