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강기능식품(건기식) 시장의 상징이자 ‘절대강자’로 불렸던 홍삼의 위상이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기점으로 건기식 시장은 6조원대 수준으로 커졌지만, 그 안에서 홍삼의 존재감은 오히려 축소됐다.
면역력 강화 수요로 정점을 찍었던 홍삼은 팬데믹 이후 ‘기능 세분화’와 ‘가성비 중시’라는 새로운 소비 흐름을 견디지 못하며 왕좌를 내주고 있다.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건기식 시장은 5조9626억원 규모로 전년 대비 0.2% 증가했다.
2022년 6조1498억원으로 최고치를 찍은 뒤 지난해 5조9531억원으로 감소했지만 다시 소폭 반등한 것이다. 그러나 반등의 중심에는 더 이상 ‘홍삼’이 없다.
◆홍삼 비중 5년만에 25.9%→16%…“5000억원 사라져”
가장 뚜렷한 변화는 홍삼의 급격한 하락세다.
2021년 건기식 전체 구매액의 25.9%를 차지했던 홍삼은 올해 16%까지 낮아졌다. 같은 기간 구매액은 1조4710억원에서 9536억원으로, 약 5000억원이 증발했다.
반면 종합비타민·단일비타민은 합산 비중이 13.6%(7176억원)에서 올해 18.1%(1조779억원)로 확대되며 홍삼이 잃은 자리를 빠르게 채웠다.
소비자의 선택이 ‘전통적 종합 해결제’에서 ‘기능별 맞춤형’으로 이동한 것이다.
홍삼 구매 행태 변화도 뚜렷하다.
구매 건수 비중은 12.4%에서 9.6%로 감소했다. 가구당 평균 구매액은 16만4708원에서 12만5420원으로 24% 줄었다.
전체 소비는 유지되지만 홍삼만 꾸준히 감소하는 형태다.
◆MZ세대가 뒤흔든 ‘기능 중심·가성비 소비’
홍삼의 하락은 특정 브랜드의 문제가 아닌 소비 구조 자체가 바뀐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20~30대는 건강기능식품을 더 이상 ‘종합 관리’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피로(비타민 B) △수면(멜라토닌·테아닌) △장 건강(프로바이오틱스) △에너지(마그네슘) 등 문제별로 제품을 교체하는 ‘모듈형 소비’가 일반화됐다.
홍삼처럼 가격이 높고 포괄적 효능을 내세우는 제품은 선택 우선순위에서 자연스럽게 밀릴 수밖에 없다.
MZ세대는 경험 기반 소비를 중시한다.
홍삼은 ‘즉각적 체감 효과가 낮다’는 인식이 강하고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다.
반면 비타민·마그네슘은 저렴하면서 효과를 빨리 느낄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온라인 유통 알고리즘, 홍삼 밀어냈다는 분석도
팬데믹 시기 홍삼은 면역력 강화 수요 덕분에 일시적으로 시장을 확대했지만, 이후 온라인 중심 소비 환경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비타민·마그네슘·프로바이오틱스 등은 단가가 낮고 회전율이 빨라 알고리즘 추천에 유리해 노출 빈도가 높아졌다.
가격이 높은 홍삼은 반복 구매 빈도가 낮아 노출량이 줄어드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홍삼은 원료 특성상 제품 개발 혁신 폭이 제한적이다.
비타민·수면 보조제는 매년 새로운 제형·복합 성분 조합이 등장하며 트렌드를 주도한다.
젊은 세대는 이런 역동적인 카테고리에 더 큰 가치를 느낀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삼은 기능성 표시 범위가 상대적으로 제한돼 마케팅 문구가 단조롭지만, 비타민·프로바이오틱스는 다양한 기능성을 활용할 수 있어 메시지 확장성이 크다.
◆전문가들이 진단한 홍삼 위기의 본질은?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홍삼의 하락은 인기 변화가 아니라 소비 구조 전환”이라며 “‘하나로 종합 케어’ 시대는 끝났고, 상황별로 제품을 갈아타는 모듈형 소비가 주류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20~30세대는 효능의 즉각성을 매우 중시한다”며 “홍삼의 전통 이미지와 가격대는 이 기준과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팬데믹 이후 면역력 수요가 분산되면서 온라인 알고리즘에 유리한 저가·고회전 제품이 시장을 장악했다”고 전했다.
홍삼 카테고리는 제품 혁신의 정체가 길어졌다. 제형·조합이 빠르게 바뀌는 카테고리와 경쟁하기 어렵다.
홍삼은 여전히 ‘전통·프리미엄·선물용’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MZ세대를 겨냥한 일상 섭취용 가격대·제형 혁신·구독 모델이 필요하다.
기능성 표시 규제가 비타민보다 제한적이라 홍삼의 마케팅 확장성이 줄어든 것도 성장 둔화 요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홍삼, ‘중장년 프리미엄 시장’으로 재정의될까
또 다른 관계자는 “홍삼은 ‘부모님 선물’ 이미지가 강하다”며 “MZ세대는 자신을 위한 제품 선택 시 데이터·과학적 설명·글로벌 트렌드를 더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가 부담 속에서는 소비가 더욱 구체적 증상 해결 중심으로 이동한다”며 “고가인 홍삼은 경기 민감도가 크다”고 전했다.
홍삼 시장은 축소 중이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프리미엄·중장년층 중심 시장으로 재편되고, 젊은 층은 비타민·복합 기능성 제품 중심으로 재구조화될 것으로 보인다.
홍삼 시장은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려운 구조적 변화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홍삼이 완전히 몰락하는 시나리오보다는 카테고리의 역할 재정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중장년층·프리미엄 시장은 여전히 탄탄하고, 선물 시장에서도 홍삼의 영향력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다만 젊은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전통’이라는 이미지에만 의존하던 전략을 넘어 제품 혁신과 카테고리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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