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몇 년간 살면서 익숙해진 것들도 많지만, 여전히 낯선 것도 있다. 특히 혼자 사는 외국인으로서 갑자기 맞닥뜨리는 예기치 못한 상황은 마음을 흔들곤 한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에서 경험한 ‘비상 알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직한 뒤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혼자 생활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무척 기뻤다. 혼자 생활하면서 쓰레기 분리배출부터 전기·가스 요금 납부까지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았지만, 그마저도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라 의미 있게 여겼다. 가장 슬플 때는 아플 때였다. 혼자 이겨내며 회복해야 해서 서글프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자취는 이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걱정과 불안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어느 날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건물 전체에 비상벨이 울린 것이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휴대전화, 지갑, 여권, 노트북만 급히 챙겨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복도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주변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늦은 저녁이었기에 집에는 사람이 많았을 텐데 아무도 나오지 않아 의아했다. 그 순간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옆집 문을 두드려 물어봐야 하나?”, “집주인에게 전화해야 하나?” 등 말이다. 복도에서 잠시 고민하는 동안 비상벨은 꺼졌다. 혹시 몰라 근처 편의점에 가 필요한 것 몇 가지를 사며 시간을 조금 더 보냈다. 편의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윗집 사람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비상벨에 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그날 하루만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비상벨이 울렸고, 매번 별다른 상황은 아니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비상벨이 울리면 문을 살짝 열어 상황만 확인하고 특별한 움직임이 없으면 그대로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혹시 정말 큰일이 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얼마 후 나는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다. 새집에서도 비상벨이 울렸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때는 외국인 한 명이 내려와 기다리고 있어서 조금은 안심되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 사람도 몰랐다. 우리는 경비실에 전화해 확인을 요청했고, 잠시 뒤 경비 직원은 “누군가 실수로 잘못 누른 것 같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안내했다.
튀르키예에서는 이런 경험이 거의 없었다. 다만 영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체류할 때 기숙사에서 새벽에 두세 번 화재 대피 훈련을 한 적이 있었다. 모두가 함께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나는 비상 알림이 울리면 즉시 대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 달라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한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사회의 안전 문화와 생활 방식까지 배우고 적응해 가는 과정인 것 같다. 비상벨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무덤덤해 보였지만, 그만큼 시스템을 신뢰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아직 낯설지만, 이런 경험을 하나씩 겪으며 한국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해 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비상벨에 놀라지 않고 차분히 상황을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알툰 하미데 큐브라 남서울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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