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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조성한 ‘진주 독성도’ 오스트리아 경매로 환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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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21 16:42:16 수정 : 2025-11-21 16:42:15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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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인 나반존자를 그린 불화, 독성도. 소나무 아래에 나반존자가 수행자가 마음의 티끌과 번뇌를 떨어내는 데 사용하는 불구(佛具)인 불자(拂子)를 쥐고 앉아 있다. 존자의 주위에는 깨달음이나 신비로움을 상징하는 긴 꼬리 같은 흰 구름띠가 머물러 있다. 

 

대한불교조계종과 조계종 제12교구 진주 호국사는 국외 유출된 ‘진주 독성도(獨聖圖)’를 최근 오스트리아 경매에서 낙찰 받아 국내로 환수했다고 21일 밝혔다.

 

환수한 독성도는 제작 시기나 화가 등의 정보를 담은 화기(畵記) 하단이 잘려 최초 봉안 사찰이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진주(晉州)’, ‘대법당(大法堂)’, ‘진주성(城)’, ‘진주내(內)’ 등의 글자 등을 비춰볼 때, 진주성 내에 위치한 진주 호국사와 관계있는 것으로 조계종은 추정만 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진주 호국사는 ‘성안에 있는 절’이라는 의미에서 내성사(內城寺)라고 불리기도 했다.

 

독성도의 금어(金魚·불화를 그린 승려)는 성규(性奎)스님 혹은 성관(性寬)스님, 보조화승은 행전(幸佺)스님으로 판단되며, 증명은 활해삼소 스님으로 추정된다고 조계종은 전했다. 성규·성관·행전스님은 활해삼소 스님을 증사로 모시고 해인사 대적광전 124위 신중도(1862년)와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도(1873년)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이번에 환수한 진주 독성도 역시 해인사를 기반으로 경남 일대에서 영향력이 컸던 고승 활해삼소를 모시고 성규스님 혹은 성관스님이 제작했을 것이라고 조계종은 관측했다.

 

국내에 현존하는 독성도는 약 300점으로, 1812년에 제작된 영주 안양원의 독성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20세기 작품이다. 이번에 환수한 독성도는 조성 시기가 1860년(함풍 10년)으로 기재된 몇 안 되는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조계종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으로부터 제공받은 국외 한국문화유산 경매 모니터링 자료에서 진주 독성도를 발견하고 호국사와 협의해 경매에 참여했다. 독성도가 국외 경매에 출품된 경위는 아직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고고학자이자 언어학자였고 1959∼1969년 초대 주한 프랑스대사를 지냈던 로제 샹바르(1904∼1982)의 소장품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문화, 특히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샹바르가 이번 진주 독성도를 수집했을 것으로 조계종은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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