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기습 상정하자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반발하면서 서울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갈등이 또다시 불거졌다. 일각에선 법적인 효력이 적은 조례를 둘러싸고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교육청이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시작된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쟁
18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다수인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는 전날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은 지난해 4월에도 서울시의회를 통과했으나 서울시교육청이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같은 해 7월 대법원이 이를 인용하며 폐지가 유예된 상태로 심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시의회는 또다시 폐지안을 들고 나왔다.
서울시교육청은 즉각 반발했다. 정 교육감은 이날 서울시교육청에서 “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또 폐지 의결한 것은 불필요한 법률적 논쟁과 행정 낭비를 초래할 뿐”이라며 “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 처리에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 교육감은 “우리 교육청은 학생인권 조례를 근거로 인권교육을 하고 있으며 과거 교육현장에서 지켜지지 못한 학생 인권의 현실을 조명하고 교육주체 모두가 함께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며 “시의회 본회의에서 폐지안을 부결시켜달라”고 촉구했다.
◆정쟁 싸움 도구로 전락한 학생인권조례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가 없다면 학생 인권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 교육감은 최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학생인권조례 덕분에 학생의 정치적 권리 보장, 학교 인권 규정 컨설팅, 인권침해 대응 등 다양한 정책이 중단되지 않고 이어질 수 있다”며 “학생인권조례가 시행 후, 체벌·두발 단속·성적 제한 등으로 대표되던 규율 중심 교육이 협력과 존중의 교육으로 변화했다. 조례는 교직원을 포함해 학교 전체의 인권 감수성을 높여온 제도적 토대”라고 강조했다.
정 교육감은 또 학생인권조례는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 학생을 보호하는 장치”라며 “조례의 원칙 아래 교육적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고도 밝혔다.
다만 교육계에선 학생인권조례의 법적인 실효성은 사실상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조례는 “학생은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등 대부분 헌법에도 보장된 선언적 내용이어서 조례 유무가 학생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현재 17개 시·도 중 10곳은 조례가 없지만, 조례가 있는 지역과 학생 권리 보장 정도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
중학교 교사 A씨는 “학생, 학부모들이 평소 자신의 지역에 학생인권조례가 있는지, 없는지를 체감하며 생활하지 않을 것”이라며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의 차이는 사실상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기에 교사가 학생 행동에 대응할 수 있는 조치를 담은 ‘학생생활지도고시’가 2023년 제정되면서 조례 중 상당수는 무력화된 상태다. 고시가 조례보다 상위법이어서, 학생생활지도고시에 명시된 내용이라면 학생은 학생인권조례를 들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결국 학생인권조례는 실효성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큰 사안인데도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교육청이 과도하게 대립하면서 힘을 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의회는 실익이 없음에도 보수 성향 주민들의 목소리를 의식해 구태여 폐지안을 고집하고, 진보 성향 교육감은 이에 과도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은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에 천막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소모적인 논쟁의 피해는 학생·교사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폐지 여부로 싸우기보다 시의회와 교육청 모두 교사의 생활지도권과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학생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들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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