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나누는 능력 점차 잃어가
다양한 만남보다 깊이가 중요
관심·배려 관계의 용기 배워야
최근 한국 사회에서 ‘외로움’이라는 용어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과거에는 외로움이 주로 노인층의 문제로 인식되었으나, 요즈음 그 범위가 젊은 세대까지 넓어지고 있다. 올해 3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가 1000만가구를 넘어 전체 가구의 41.8%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혼자 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는 ‘함께 사는 감각’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외로움은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영국은 2017년부터 외로움을 21세기의 심각한 사회적 과제로 인식하고, 이를 ‘공중보건 위기’로 규정하였다. 실제로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보고서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외로움이 흡연이나 비만만큼 신체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지속적인 고립 상태는 인간의 보상회로와 스트레스 시스템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로 인해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고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 질환 등 만성질환이 유발될 수 있다. 또한 면역력이 약화되어 통증, 피로, 감염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 외로움은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우울, 불안, 치매와 같은 정신건강 문제가 악화되고, 뇌의 해마 크기가 줄며 전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어 기억력과 판단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외로움은 마음의 병이자 신체의 병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외로움이 심화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기존의 공동체 기반이 점차 약화되었다. 동네 상점과 골목문화가 사라지고, 아파트 담벼락이 높아지면서 이웃과의 교류가 줄어들었다. 청년 세대의 경우 과도한 경쟁과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노출되면서 타인과 따뜻한 관계를 맺을 정서적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 또한 디지털 사회의 확산으로 인해 사람 간의 연결은 더 쉬워졌지만 그 관계는 오히려 피상적이고 건조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좋아요’ 수는 늘어나지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고 진지하게 대화하는 기회는 줄어드는 아이러니한 시대가 되었다.
외로움의 해법은 단순히 많은 사람을 만나는 데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깊이를 더하고 소속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 과정의 출발점은 ‘관심’이다. 주변의 누군가가 조용히 사라지거나 평소와 다르게 연락이 뜸해졌다면 작은 안부인사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요즘 잘 지내?”라는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될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개인의 약함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변화와 환경에서 비롯된 결과로 인식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실제로 영국,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은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해 정부 차원에서 외로움 문제를 관리하고 있다. 이는 외로움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체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 사회 역시 ‘정신건강’과 ‘사회적 연결’을 별개의 문제로 나누지 말고 지역사회 복지, 직장 문화, 학교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외로움은 결국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싶은 마음의 신호이다.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결핍이 아니라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을 바라는 깊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현대사회가 점점 개인화되고 기술 중심으로 변화함에 따라 우리는 서로에게 온기를 나누는 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건강한 사회란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주며,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온기를 더할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연결이 아니라 ‘마음의 연결’이다. 다양한 플랫폼과 소셜미디어가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소통과 관계의 깊이가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외로움이 일상이 된 시대일수록 우리는 다시 관계의 용기를 배워야 한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진심 어린 관심과 배려를 건넬 때 비로소 개인의 치유와 사회의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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