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아, 우리 밥 한번 먹자. 내가 밥 사줄게.”라는 말 한마디의 의미는 6년 전 한국에 처음 와서 들었을 때와 지금 들을 때 많이 다르다. 그때 나는 한국어를 어느 정도 잘 구사하면서도 이 표현이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인사말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언젠가 함께 식사할 약속으로 이해하고 그날을 기다렸고, 연락이 왔을 때 혹시 바쁜 일정이 있어 못 만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밥 한번 먹자”, “언제 한번 보자”가 가벼운 인사처럼 쓰이고 반가움과 예의를 표현하는 방식이지, 오늘 당장 밥 먹을 날짜를 잡자는 뜻이 아닐 때가 많다. 인기 드라마 수리남에서 명대사로 화제가 된 “식사는 잡쉈어?”라는 대사도 단순히 식사 여부를 묻는 말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정과 관심을 담은 한국식 안부이다. 한국의 ‘밥’은 실제 음식보다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인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모국인 미얀마에서 이 말은 전혀 다른 의미의 말이다. “밥 먹자”는 말은 곧 진짜로 같이 식사하자는 말이다. 인사말이 한국보다 적은 편인 미얀마에서 이 말은 곧 행동이고, 행동은 관계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밥을 먹자는 말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약속에 가깝다. 나 역시 그런 문화 속에서 자라 한국인의 “밥 먹자”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모르게 “밥 한번 먹자”라는 한국식 인사말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이 차이점을 더욱 절실히 느낀 순간은 최근이다.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오신 엄마가 내가 미얀마 친구들과 전화로든 밖에 만나든, 밥 한번 먹자고 인사하고 작별하는 모습을 보신 것 같다. 어느 날 엄마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때 밥 먹자고 한 미얀마 친구들은 언제 밥 먹으러 오니? 음식 준비해야지.”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밥 한번 먹자”의 뜻을 미얀마에서처럼 진짜 약속한 것으로 이해하신 것이다.
그 순간 6년 전 나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우리는 정말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엄마가 준비한 미얀마 음식을 대접했다. 친구들은 고향 음식을 반가워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뒤로 친한 미얀마 친구 한두 명씩 항상 우리 집에 놀러 와 밥을 먹고 가곤 했다. 이 모습을 본 한국인 남자친구는 “왜 집에 사람들을 이렇게 자주 초대하냐?”라고 신기해했다. 요즘 한국에서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집으로 불러 밥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밥 한번 먹자”는 말은 한국에서는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가는 언어적 인사이지만 미얀마에서는 사람 사이의 신뢰를 확인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두 나라가 다 상대방에 대한 챙김과 정을 밥이나 식사로 표현한다는 유사한 점도 가지고 있다. 문화는 언어 속에 숨어 있듯이, ‘밥’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새로운 관계를 배우기도 한다. 나는 한국의 인사말인 “밥 한번 먹자”와 미얀마의 약속한 말인 “밥 한번 먹자” 사이에서 상호 문화적 만남을 소중한 경험으로 느낄 수 있었다.
6년 전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약속처럼 이해해 몇 개월 동안 기다렸던 나. 그때 그 말을 했던 친한 한국인 언니와는 지금도 연락하고 있지만, 서로 바빠서 아직도 둘이 만나 같이 밥을 먹지 못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언니 생각이 난다. 방학이 되면 꼭 언니를 만나서 정말로 그때 못한 밥 한 끼를 꼭 함께해야겠다.
먀닌이셰인(예진)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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