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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대통령 관저 또 옮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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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10 22:47:37 수정 : 2025-11-10 22: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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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통령 거처
업무·생활 공간 이상의 의미 지녀
음습함 있다면 조경을 바꾸면 돼
풍수보다 과학적 사고 기반돼야

우리나라만큼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에 대해 말이 많은 나라가 또 있을까. 또 한 번, 대통령 거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에는 관저다. 최근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곧 옮겨 가기로 되어 있는 청와대 내 대통령 관저를 사용하지 말 것을 대통령실에 건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유 관장은 국정감사에서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 관저가 “음습한 자리”라 “풍수뿐 아니라 건축가들의 입장에서는 생활 공간의 위치로서 부적격하다”라고 주장했다.

대다수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말로가 아름답지 못했으니 그 탓을 집터로 돌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 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괜히 조상 묏자리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하기 좋아하는 우리네 버릇 같기도 하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문재인 전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광화문에 있는 정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선거 공약으로 내걸기까지 했다. 그는 그전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사용하던 청와대를 ‘구중궁궐’, ‘불통’, ‘권위주의의 상징’이라는 용어로 그 위치의 부적절함을 강조하며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선 공약은 대통령 당선 후 슬그머니 사라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반대편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있었다. 그는 추진력만큼은 ‘불도저’ 같았다. 윤 전 대통령은 단 하루도 청와대에 머무를 수 없다며 집무실은 용산으로, 관저는 한남동으로 옮겼다. 국민에게 돌려준다며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청와대도 바로 개방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곧바로 졸속 이전이란 비판과 함께 무속 논란에 휩싸였다. ‘도사’니 ‘법사’니 하는 사람이 이전에 관여한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풍수 전문가’인 ‘백 교수’가 앞으로 사용할 관저를 답사했다는 경찰 발표가 있었다. 논란이 일자 당시 여당 대변인은 “백 교수는 풍수지리학계 최고 권위자로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는 백 교수의 풍수지리학적 견해를 참고차 들은 바 있으나 최종 관저 선정은 경호, 안보,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됐고 …”라고 해명했지만, 풍수를 정책 결정에 끌어들인 것을 인정한 꼴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임금이나 대통령이 업무를 보고 생활하는 곳은 업무와 생활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조선의 법궁(法宮, 임금이 주로 사용하는 으뜸 궁)은 경복궁이었지만, 제3대 임금 태종은 창덕궁만 사용했다. 신하들이 법궁인 경복궁으로 옮겨야 한다고 상소를 올리자, 태종은 경복궁을 기피하는 자신의 명분을 풍수에서 찾으면서 한편으로는 꺼림칙하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힌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내가 태조께서 처음으로 창설하신 뜻을 알고, 또 지리의 설(說)이 괴상하고 헛된 것을 안다. 하지만 술자(術者: 관상감에서 천문, 역산, 풍수와 지리 등을 전문으로 보는 관리)가 말하기를 ‘경복궁은 음양의 형세에 합하지 않는다’ 하니 내가 듣고 의심이 없을 수 없다. 또 무인년 규문의 일(태조 7년 이방원이 주도하여 세자 방석과 정도전 일파를 죽인 일)은 내가 경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다. 어찌 차마 그곳에서 거처할 수 있겠는가.” 이를 통해 태종이 경복궁을 기피한 것은 왕권을 위해 이복동생을 죽인 골육상쟁 때문이며 풍수는 하나의 핑곗거리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도 풍수와 같은 ‘지리의 설’은 ‘괴상하고 헛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음습’한 것이 대통령 관저를 옮겨야 할 만큼 심각한 것일까.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건축물을 지을 때 모든 조건이 다 좋은 곳은 없다. 현대는 물론이고 예전에도 건축물을 세울 때 집터가 가진 약점은 기술력으로 극복해 왔다. 한양도성의 동대문인 흥인지문은 본래 저지대의 습지여서 땅이 무른 개흙이었지만 옛사람들은 이곳에 나무 말뚝을 박고 돌을 채워 약한 지반을 보강한 후 성벽과 동대문을 세웠다. 동대문 수리 때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초고층 건축물의 고향이라 불리는 미국 시카고는 자연조건의 불리함을 기술력으로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시카고는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 이후 빙하가 흘러가면서 남긴 퇴적물 위에 도시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지표면에서 지하 30m까지는 부드럽고 습한 점토층이라 20세기 초 이곳에 100층을 넘나드는 초고층 빌딩을 세우는 것은 굉장한 도전이었다. 엔지니어들은 지하를 깊이 뚫어 지하 30m 아래 암반층까지 철근콘크리트 파일(pile)을 설치하는, 이른바 ‘케이슨 공법’을 사용해 초고층 빌딩의 지반을 안전하게 보강했다.

습한 지역을 극복한 건축물로는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해 1939년 완공한 ‘낙수장(Fallingwater)’을 꼽을 수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스튜어트 타운십 계곡에 있는 낙수장은 말 그대로 폭포 위에 건축물을 세웠으니 사시사철 습기와 물안개가 끊임없는 환경이었다. 라이트는 의도적으로 폭포의 물보라와 습기를 차단하지 않고 흡수하고 견디는 건축을 지향했다. 그러나 완공 후 실내 습도가 70~90%에 이르고 수분으로 인해 철근이 부식하는 문제가 발생하자, 1988년 이후 수차례에 걸쳐 구조물을 탄소섬유 등으로 보강하고 2010년 이후에는 실내 제습 및 환기 시스템을 도입해 문제점을 극복했다.

대통령 관저 자리가 ‘음습’하다면 주변의 조경을 바꾸어 바람이 잘 통하게 하고 현대적인 제습과 환기 시스템을 설치해 쾌적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대통령 관저는 여염집처럼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생활하지는 않을 것이니 주변 환경에 의한 영향도 적을 것이다. 올해는 양자역학이 탄생한 지 백 년 되는 해다. 풍수나 감(感)보다는 과학적인 사고가 우선이지 않을까. 더구나 나라를 경영함에야!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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