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가’에 소비 초점
유통업계 등, 경험·감성 마케팅 적극 전개
전문가 “기업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할 것”
“나 오늘 우울해서 빵 샀잖아.”
젊은 층 사이에서 확산되는 이 밈은 최근 소비 트렌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호텔급 프리미엄 수건과 고급 양말 등 일상 속 작은 만족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패턴이 늘고 있는데, 이를 ‘기분 경제’ 즉 ‘필코노미(Feel+Economy)’라고 부른다. 유통업계도 발 빠르게 이런 소비 트렌드에 맞춰 마케팅을 전개 중이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트렌드코리아 2026’에서 내년 주목해야 할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필코노미를 꼽았다. 필코노미는 소비자가 자신의 기분을 진단하고 관리하며, 더 긍정적인 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경제 현상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소비가 필요와 욕망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기분’이 소비의 동인이자 척도가 된다는 분석이다.
그 베이커리의 빵이 요즘 유행이라서, 배고파서 등 특정한 이유에 따라 소비가 이뤄지는 ‘감정 소비’와는 결이 다르다. 심리학적으로 특정한 이유가 있어서 나타나는 마음의 움직임을 ‘감정’이라 본다면 기분은 좀 더 논리적이지 않다. 기분 경제는 돈을 쓰는 이유 자체가 맥락 없는 기분에서 시작된다. 우울해서 빵을 샀다는 과정 역시 개연성이 떨어진다.
기업 역시 부정적인 감정을 최소화하고 자기만족을 높이려는 소비자의 니즈를 빠르게 읽고 최적의 감정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 제품이나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필코노미 제품들은 소비자들에게 즉각적인 심리적 보상을 제공하되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대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식음료를 비롯해 독서, 공연 등 생활 밀착형 업계 중심으로 관련 마케팅이 늘고 있는 이유다. 특히 식음료 브랜드는 정서적 메시지를 설계한 뒤 브랜드 스토리텔링, 감각적 경험 디자인을 통해 소비자의 하루에 공감과 몰입의 순간을 더하고 브랜드의 지속성을 강화하려 노력 중이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할리스는 마스코트 ‘할리베어’를 중심으로 소비자의 감정적 몰입을 이끄는 필코노미형 매장 경험을 넓히고 있다. 인테리어와 공간 연출로까지 확장된 이번 전략은 단순한 매장 방문을 ‘기분이 머무는 경험’으로 바꾸려는 시도다. 합정역점을 ‘도시형 감성 공간’으로 리뉴얼해 대형 할리베어 조형물을 설치하고, 부산명지강변DT점과 대전호수공원점 등에서는 지역 특성에 맞춘 테마형 포토존을 선보였다. 감정적 즐거움과 참여의 재미를 제공해 소비자가 브랜드와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게 기획 의도다.
편의점 CU는 교보생명과 협업해 독서 감성을 담은 이색 간식 ‘문장 한입 팝콘’을 출시했다. 독서를 감성적 취향으로 즐기는 ‘텍스트힙(Text-Hip)’ 트렌드를 반영, 감성적 경험을 제안한다. 제품 안에는 책갈피 굿즈도 함께 동봉돼 있는데, 소설과 에세이 속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60종의 문장 중 한 문장이 랜덤으로 담겨 있다. 소비자가 한입의 간식과 한 줄의 문장을 통해 작은 정서적 여운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프링글스는 최근 ‘뚜껑 열면 빠져드는 리얼 액션!’ 캠페인을 통해 단순한 스낵 구매를 넘어 소비자가 영상 콘텐츠를 볼 때의 몰입감과 도파민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프링글스의 시그니처 캔 디자인을 모티브로 한 ‘한정판 프링글스 무드램프’도 제작했다. 콘텐츠의 분위기에 따라 다섯 가지 색상으로 변하며, 시청 공간의 무드를 자유롭게 조절 가능하다.
프링글스 마케팅팀 윤지원 부장은 “긍정적인 감정이 소비로 이어지는 필코노미 트렌드에 맞춰 먹는 즐거움을 넘어 스낵과 함께하는 콘텐츠 시청의 몰입의 경험으로 확장하고자 기획했다”며 “영상 정주행의 순간을 감정적으로 더욱 풍요롭고 즐거운 경험으로 확장시켜 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필코노미 소비가 확산하게 된 배경으로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를 꼽기도 했다. 팬데믹을 겪은 MZ 세대 중에는 인간관계를 맺을 때 직접 얼굴을 맞대는 것보다 비대면을 더 선호하는 경우가 적잖다. 남의 기분이 어떤지, 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등 ‘기분 문해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상대방에게 기분을 명확하게 전달하기보다 물건 소비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가격 대비 효율이나 기능, 사회적 지위 과시 등 ‘무엇이 필요한가’를 따져 소비가 이뤄졌다면 지금은 ‘내가 어떤 기분인가’가 소비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필코노미는 다른 트렌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소비자가 직접 검색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감정과 취향을 분석해 상품을 제시하는 ‘제로클릭(Zero-click)’, AI 전환과 유연한 조직 문화를 결합한 ‘AX(Agile Transformation) 조직’, 가벼운 트렌드들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픽셀라이프(Pixelated Life)’ 등 모두 인간의 감정을 중심으로 사회·경제 구조가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혜원 서울대학교 소비트렌트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세계일보에 “경제, 기술 등 모든 게 발전하고 상향 평준화된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기능·가격·품질만으로 상품 사이에 차이를 두는 게 어려워졌다. 가능하면 내 기분을 이해 받고 더 좋게 만들어주는 상품에 차별점을 두고 있다”며 “특히 비대면이 익숙하고 감정 표현이 어려운 젊은 층 사이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분은 더 이상 개인의 사적 영역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의 경제를 이끄는 주요 축으로 자리할 것”이라며 “과거 산업사회의 경쟁력이 ‘더 좋게, 더 빠르게, 더 싸게’ 만드는 능력에 있었다면, 이제는 소비자의 기분을 ‘더 행복하게, 더 차분하게, 더 신나게’ 만드는 능력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할 것이다. 기업들도 단순 프리미엄 등을 강조하기보다 소비자의 기분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마케팅을 늘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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