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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송이 카네이션 위에서 묻는다…"무엇이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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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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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 바우쉬의 ‘카네이션’

묵묵히 양파가 쌓인 테이블을 들고나온 남성은 이내 식칼을 꺼내 든다. 세어보니 스무 개도 넘어 보인다. 몇 개나 썰까 싶은데 칼날도, 칼질도 범상치 않다. 탁탁탁. 어느새 테이블에는 썰어낸 양파가 수북하다. 아름답고 멋지나 맥락을 이해하기 힘든 무용극 중반이다.

 

다음이 궁금해질 때 등장한 정장 차림 남성들은 뚜벅뚜벅 걸어가 양파 채에 얼굴을 파묻고 비빈 후 다시 무대에 도열한다. 그때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지금 보는 것은 탄츠테아터 부퍼탈(Tanztheater Wuppertal)의 ‘카네이션’. ‘춤(Tanz)’과 ‘연극(Theater)’을 결합하며 현대 예술의 방향을 바꾼 안무가 피나 바우쉬(1940-2009)의 대표작이다. ‘움직임의 기술’이란 틀에 박혀있던 무용을 ‘인간의 진실을 탐구하는 예술’로 끌어올린 예술가의 작품이기에 나올 수 있는 무대이다.

9000송이 분홍빛 카네이션으로 뒤덮인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카네이션’. 안무가 피나 바우쉬는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지를 묻는다. LG아트센터 제공

무대는 종잡을 수 없는 이미지의 향연이다. 9000송이 분홍빛 카네이션으로 뒤덮인 무대 위에서 알 수 없는 상황과 춤이 이어진다. 남성과 여성이 등장해 카네이션 위로 흙을 뿌린다. 그러다 갑자기 여성이 대성통곡한다. 여성은 울부짖으면서도 “울지 말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런 여성 옆으로 정장을 차려입은 노신사가 다가와 여성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그녀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게 한다.

 

다시 카네이션이 뒤덮인 무대 위로 여성이 남성에게 쫓겨 다니거나, 2명의 남성이 서로 끌어안기를 반복한다. 독일 국견 셰퍼드 3마리가 나와 짖어대고, 사람들은 개 흉내를 내며 달아난다. 남성들은 모두 여성 원피스를 입고 있다. 관리처럼 보이는 초로의 남성은 수시로 등장해서 여권을 내놓으라고 압박한다. 한 여성은 의자에 포박된 것처럼 앉아있고 정장 차림 남성들은 책상으로 몸을 던지며 그녀를 겁박한다. 장면마다 유머와 위협이 교차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7일 전석 매진으로 공연이 끝난 후 이뤄진 관객과의 대화에선 “모르겠는데 좋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심야인데도 LG아트센터 서울 극장 1층을 거의 다 채운 관객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양파 장면도 그중 하나였다. 1996년 탄츠테아터 부퍼탈에 무용수로 입단한 김나영 리허설 어시스턴트는 “피나 선생은 늘 ‘당신이 느끼는 것이 바로 공연의 내용이다’라고 하셨다. 같은 것을 봐도 다르게 느끼는 것이 바로 인간이고,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늘 말씀하셨다”면서도 자신의 해석을 들려줬다.

피나 바우쉬의 ‘카네이션’ 무대에서 한 무용수가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썰린 양파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감정을 억누른 이들이 눈물 흘릴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LG아트센터 제공

“양파라는 것이 자르기도 힘들고, 자를 때마다 눈물이 나잖아요. 남자분들이 그걸 얼굴에 비빌 때, 저는 ‘눈물을 흘릴 기회를 찾는’ 행동처럼 느꼈어요. 여자들은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운데, 남자들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 장면은 감정을 억누른 사람들이 ‘눈물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였습니다.”

 

피나 바우쉬는 무용수와의 문답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관객과의 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초반부터 무용수는 계속 관객과 소통을 시도하고 나중에는 일으켜 세워 함께 춤을 추고 포옹하기에 이른다. 무용수가 줄곧 객석에 시선을 고정한 대목도 인상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관객의 숨결을 무대 일부로 삼는 피나 바우쉬식 탄츠테아터만의 감정의 교류가 일어난다.

 

무용수 자기고백으로 만들어진 피날레가 그야말로 인간적이다. 무용수가 차례로 나와 발레 기초 자세를 취하며 자신이 어떻게 춤을 시작했는지 더듬거리는 우리말로 이야기한다. “특별해지고 싶어서”, “춤추는 게 말하기보다 쉬워서”, “공중곡예사가 되고 싶었다. 너무 위험하긴 했지만” 등의 고백에 이어 한 여성 무용수는 “나는 어린이학교 교사였는데, 아이들이 나를 무서워했다. 아이가 ‘넌 우리를 무서워해’라고 말했을 때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았다”고 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카네이션’ 중 한 장면. ‘춤’과 ‘연극’을 결합해 현대 예술의 방향을 바꾼 피나 바우쉬(1940-2009)의 대표작이다. LG아트센터 제공

그 진솔한 고백들이 끝난 뒤 무용수들은 마치 졸업사진을 찍듯 무대 중앙에 도열했고 피나 바우쉬와 함께 작업했을 고참 무용수가 가운데 빈자리를 채우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고 강조했던 안무가의 혼이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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