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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지니’, 흑룡포 세종… 검정색, 恨을 풀다 [지금, 옛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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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08 11:11:48 수정 : 2025-11-08 11:11:48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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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인물이 악하게 변화하는 것을 흔히 ‘흑화’(黑化)라고 표현한다. 단순하게 풀이하면 ‘까맣게 되다’이다. 여기엔 색깔에 대해 가진 강한 편견이 작동하고 있다. 검정색을 죽음, 공포, 암흑 등의 부정적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흰색은 반대의 이미지를 가진다. 

 

호림미술관은 특별전 ‘검은빛의 서사-검은색으로 펼쳐낸 무한과 생성의 풍경’은 이런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진다. “검은색의 신원(伸冤·가슴에 맺힌 원한을 품)”을 표방했다. 검정색, 곧 ‘현’(玄)은 하늘의 색으로서 “모든 가능성과 생명이 잠재한 무한한 열림”, “절제와 품위를 통한 권위와 신성함”, “사회적 질서와 정신적 경지”로서 오랫동안 인식되었음을 보여주려 한다.

드라마 ‘다 이뤄질지니’ 속 천사, 사탄의 대결. 방송화면 캡처

◆선악의 대결(?)…태평성세의 상징

 

화려한 출연진으로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는 하이라이트에 이르러 천사 ‘수현’과 사탄 ‘지니’의 싸움을 보여준다. 화려한 CG를 사용해 표현한 하늘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치는 천사는 하얀색 양복을, 사탄은 검정색 양복을 입어 대비가 확연하다. 

 

고려중기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은 무늬로 그린 학, 구름은 이 전투장면과 유사한 흑백대비를 보여준다. 상단의 학과 구름은 흰색, 하단은 검정색이다. 무늬를 대개 흰색으로 표현하는 다른 운학문 매병과 눈에 띄게 다른 점이다. 

검정색, 흰색 학과 구름을 새긴 고려청자. 호림미술관

미술관에 따르면 중국의 저술 ‘고금주’(古今注)는 “학이 1000년이 지나며 푸르게 변하고, 2000년이 되면 검게 변하여 검은 학〔玄鶴〕이 된다”고 했다. 검은 학을 귀하게 본 것이다. 고려에서는 검은 학이 이름이 높은 학자를 상징했다. 과거시험에 “검은 학이 상서로움을 드러낸다”는 주제어가 제시된 적도 있다고 한다. 검은 학은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는 임금의 덕과 태평성세를 상징하는 상서러운 의미”를 가졌다.

 

◆폭력적 카리스마(?)…바른 정치가 낳은 질서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를 그린 영화 ‘천문’에서 세종의 흑화는 가장 흥미돋는 에피소드다. 궁으로 돌아온 세종은 신하들을 모두 근정전으로 불러들이고, 군사들로 포위한다. 토론, 설득으로 자신의 치세를 이끌었던 세종의 ‘폭력적 카리스마’가 폭발하는 시퀀스다. 검정색 용포는 여기서 가장 뚜렷하게 상징이다. 붉은색 용포를 주로 입던 세종이 검정색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들끓는 분노를 표현했다. 

영화 ‘천문’ 속 검정색 용포를 입은 세종. 유튜브 캡처

사실 조선왕실에서 검정색은 임금의 권위와 신성함을 드러내고, 임금의 통치에 따른 질서를 의미했다. 최고의 예복 ‘구장복’(九章服)이 이런 상징성을 담고 있다. 구장복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즉위식을 치를 때 입었던 옷인데, 제일 바깥에 걸치는 옷이 검정색이었다. 하늘의 색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문조(익종) 어진’은 임금이 구장복을 착용한 모습을 담고 있다. 1950년대 화재 피해를 입어 절반 밖에 남지 않았지만 임금의 권위, 품위를 읽어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 어진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를 그린 것이다. 세자로 책봉된 후 임금을 대신해 대리청정까지 했으나 20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헌종이 ‘익종’으로, 고종이 ‘문조’로 추존했다. 

조선왕실 최고예복 구장복을 그린 익종어진. 

임금과 관련된 물건은 종종 검은색으로 장식됐다. ‘흑장통’(黑長筒)은 전쟁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어진을 옮길 때 쓰는 통이다. 어진 크기에 맞추어 흑장통의 길이도 각각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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