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일본 법원의 의료소송 감정률 4.4%의 의미 [알아야 보이는 법(法)]

관련이슈 알아야 보이는 법(法)

입력 : 2025-11-05 18:37:24 수정 : 2025-11-05 18:37:23

인쇄 메일 url 공유 - +

의료소송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길고 힘든 싸움이다. 법적 쟁점과 의학적 전문성이 얽혀 있어 일반 민사소송보다 훨씬 복잡한 탓이다. 일본의 사법통계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일본 민사 의료소송 1심의 평균 심리 기간(2024년 기준)은 24.9개월로, 전체 민사 1심 평균인 9.2개월보다 2.5배 넘게 길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의료 관련 사건에서 법원이 지정하는 전문가에 의한 감정(鑑定)을 시행한다. 당연히 이렇게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소송이라면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감정이 활발히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하기 쉽다. 현실은 정반대다. 지난해 일본 의료소송 중 법원의 감정절차가 실시된 비율은 고작 4.4%에 불과했다. 의학적 판단이 소송의 핵심인데도 왜 이렇게 감정 비율이 낮은 것일까?

 

첫번째 이유는 시간이다. 감정절차를 밟지 않은 사건을 포함한 전체 평균 심리 기간이 24.9개월로 긴데, 일단 감정절차가 시작된 사건의 평균 심리 기간은 무려 54.8개월, 즉 4년 반 이상으로 급증한다. 감정이 소송 지연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셈이다.

 

두번째 이유는 대체 수단의 존재이다. 일본 의료소송에서는 법원이 지정해 시행하는 감정 대신, 당사자가 개별적으로 의뢰한 의사(협력의)의 사적 의견서가 활발하게 사용된다. 환자 측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의사의 의견서를, 병원 측 역시 자신의 진료가 적절했다는 담당의나 다른 전문가의 의견서를 각각 제출한다. 2017년 도쿄지방재판소의 한 통계에서는 종결된 사건의 약 45%에서 이러한 사적 의견서가 제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 법원의 실무 관행과도 연결된다. 일본 법원은 감정을 최후의 수단으로 여긴다. 일단 당사자들이 제출한 주장과 증거, 그리고 양측의 사적 의견서와 담당 의사 등에 대한 증인신문까지 모두 마친다. 그 후에도 재판부가 도저히 의학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공식 감정절차를 채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감정에 따른 재판 지연 문제는 심각한데, 거의 모든 의료사건에서 감정을 시행하는 관행이 있다. 전문가의 판단이 필수적인 의료소송에서 일본은 감정을 하지 않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역시 모든 사건에서 감정이 필수적인지 다시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해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사적 의견서를 제출하는 사례가 있지만, 감정이 시행되면 그 역할이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법원의 본질적인 역할은 대립하는 증거를 검토하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당사자들이 제출한 전문적 의견서들을 ‘증거’로써 충실히 심리하고, 그 신빙성을 판단한다면 굳이 별도의 감정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결론에 이를 수 있는 사건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특히 신체감정과 같이 객관적 검사 결과가 바탕이라면 현재의 감정서 내용을 담은 상세한 진단서나 소견서 제출로도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소송 당사자 모두가 신속하게 결론을 받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김경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soo.kim@barunlaw.com


오피니언

포토

이유미 '반가운 손인사'
  • 이유미 '반가운 손인사'
  • 카리나 완벽 얼굴형에 깜짝…꽃 그림 들고
  • 나나 매혹적인 자태
  • 아이들 미연 '너무 사랑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