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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공부만 하는 곳 아냐… 지역 커뮤니티 허브 돼야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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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05 06:00:00 수정 : 2025-11-04 20:00:47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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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인생 30여년’ 오지은 서울도서관장

‘구청 사서’로 첫발
지식 형태 바뀌어도 보관·제공은 불변
부친 권유로 도서관학 전공 뒤 사회로
도서관 기능 고민 끝에 ‘새 역할’ 자각

‘튀는 프로젝트’로 주목
재능기부 추진해 주민들 큰 호응 얻어
독서동아리 인큐베이팅 모델도 정립
MZ 겨냥 ‘힙독클럽’으로 새 문화 형성

‘도서관 혁신가’ 명성
혁신 정책 수립 위해 도서관장 도전장
서울광장 ‘책읽는 광장’ 만들어 호평
기술·인문 조화 이루는 도서관 새 목표

지난 주말, 서울시청 앞 광장에 색다른 풍경이 눈에 띈다. 드넓은 광장 한복판에 놓인 푹신한 빈백에 누워 책 읽는 아이, 푸른 잔디 위에서 책장을 넘기는 청년, 인근 청계천 변에서는 책 읽는 외국인도 보인다. 독서의 계절인 요즘, 매주 금·토·일에 서울광장 일대를 찾는 시민들은 도심에서 가을 하늘을 보며 독서삼매에 빠진다. 밤에는 형형색색의 조명과 빈백을 벗 삼아 사진도 찍고 담소를 나눈다. 서울시의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서울야외도서관’의 풍경이다. 이 프로그램은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청계천에서 만나는 ‘혁신적인’ 독서문화 확산을 위한 기획작이라 할 만하다.

오지은 서울도서관장은 2022년부터 4년간 700만명이 다녀간 ‘책읽는서울광장’, ‘광화문책마당’ 등 서울야외도서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공공도서관 혁신가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도서관이 공부하는 곳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역민의 다양한 문화생활의 향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플랫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관장이 서울도서관 내 서적들을 살펴보고 있다. 남정탁 기자

지난 4년간 무려 700만명이 찾은 ‘서울야외도서관’을 총괄한 이가 오지은(54) 서울도서관장이다. 그는 1994년 구청 사서로 공공도서관에 발을 들여놓은 후 30년간 그가 근무하는 곳마다 ‘튀는 아이디어’로 주목을 받아 ‘공공도서관 혁신가’로 불린다. 2022년부터 서울도서관장을 맡아 ‘도서관이 단순히 책 읽고 지식을 얻는 공간에 머물지 않고 지역과 시민을 위한 커뮤니티 허브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소신을 실현해 가고 있다.

지난달 30일 창 너머로 시청 앞 서울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서울도서관장실에서 만난 그는 “더 이상 도서관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시민들이 ‘도서관이 뭐 이런 것도 하나!’라고 느낄 정도로 지역 커뮤니티 허브의 기능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공공도서관 혁신가’로 불리는 그의 그간의 삶과 도서관 혁신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다.

오지은 서울도서관장 겸 공공도서관협의회장 /2025.10.16 남정탁 기자

-구청 사서로 출발해 이제는 ‘도서관 혁신가’로 불리고 있다. 공공도서관인으로 그간의 삶을 돌아본다면.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하게 됐다. 지식의 형태는 바뀌어도 지식을 보관하고 제공하는 곳은 세상이 변화해도 존재할 것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1994년 사서로 공공도서관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첫 직장은 성동구청 자료실이었다. 구청 자료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사서로 근무하면서 공공기록관리의 기초를 다졌다. 도서관 일을 하면서 도서관의 기능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문화센터와 평생학습센터가 자치구 기반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평생교육이나 문화기관과 공공도서관의 역할에는 어떤 본질적 차이가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 당시 국내 서적으로는 이러한 의문을 해소할 수 없어 해외 도서를 검색하던 중 2006년 6월 맥케이브 저자의 ‘Civic Librarian’이라는 도서를 발견하고 깊은 감명을 받아 ‘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 제목으로 반역 출판하면서부터 공공도서관 혁신에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됐다. 기존의 교육센터, 문화센터 역할을 넘어 시민과 시민, 시민과 단체를 연결하는 커뮤니티센터로서의 도서관의 새로운 역할을 자각하게 됐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커뮤니티센터 역할에 대한 의견을 활발히 제시하게 됐다.”

-2007년 35세의 최연소로 광진정보도서관 관장으로 취임하면서 튀는 프로그램을 많이 추진했는데.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다. 도서관이 커뮤니티센터로 주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늘 생각했다. 2011년에는 재능 있는 시민과 재능을 필요로 하는 시민들을 연결하는 ‘재능기부프로젝트’를 추진해 주민 호응이 컸다. 2014년에는 식량 자급자족 문제와 먹거리 안전, 기후위기 시대를 대비하여 지역주민의 경작능력 강화를 위한 ‘도시농업학교’를 건물 옥상에 마련했다. 2018년에는 지역의 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한 독서동아리 인큐베이팅 모델을 정립하고 주민의 독서모임을 활성화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2014년, 2018년 전국도서관운영평가에서 세 차례 대통령상을 받았다. 매회 최고점수를 획득하면서도 대통령상 수상 간 3~4년의 텀을 두는 제한 규정 때문에 연달아 수상하지 못한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연속 대통령상 수상에 준하는 성과라 할 수 있다.”

오지은 서울도서관장 겸 공공도서관협의회장 /2025.10.16 남정탁 기자

-2022년 2월 서울도서관장에 응모해 도서관 혁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기초지자체 근무자의 한계를 절감했다. 당시 많은 공공도서관이 제가 있던 광진정보도서관 관계자가 벤치마킹하기 위해 우리 도서관을 방문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혁신을 추진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공공도서관이 공무원 조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혁신이 개인의 승진이나 인사평가 같은 생사여탈권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권한을 가진 서울도서관장이 되고 싶어 공모에 응모했고 합격해 관장에 취임했다. 취임하자마자 ‘서울도서관 서비스를 광장과 연계시켜 보라’는 오세훈 시장님의 지시를 받았고, 수차례 아이디어 회의를 해 서울광장을 ‘책읽는 광장’으로 만드는 야외도서관 사업을 추진했다. 2022년 세계 책의 날인 4월23일에 광장의 4분 1 공간에서 시작한 책 읽는 서울광장이 시민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2023년에는 광화문광장까지 확장했고, 지난해에는 청계천의 책읽는 맑은 냇가까지 추가 확대했다. 도서관 공간 개념을 건물 안에서 건물 밖으로 확장한 서울야외도서관 모델은 서울시민은 물론 해외 도서관계자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국내 공동도서관으로는 처음으로 국제도서관연맹협회(IFLA)에서 주관하는 친환경도서관상과 마케팅상을 2023년과 2024년 연달아 수상했다. 영광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반대가 거셌다. 야외에서 도서관을 운영한다는 것에 회의적 시선이 많았다. 날씨 변수, 장서 관리, 안전 문제 등 우려사항도 많았다. 그러나 일단 시작했고, 시작하는 순간 시민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 반응이 다시 우리에게 힘을 주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됐다. 통계를 내 보니 지금까지 700만명이 ‘서울야외도서관’을 찾았다. 만약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질 때까지 기다렸다면, 아마 지금도 회의실에서 보고서만 작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면 된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MZ세대와 함께하는 ‘힙독클럽(Hip-讀 Club)’은 뭔가.

“지난해 4월 출범한 전국 최초의 느슨한 연대 방식으로 새로운 독서문화를 만들어가는 북클럽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책 한 권만으론 움직이지 않는다. 책을 매개로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 힙독클럽은 그 감각을 반영한 프로그램이다. 현재 회원 수는 1만여명이다. 회원의 81%가 20~30대 MZ세대라는 점에서 젊은 세대의 독서문화에 대한 잠재적 수요가 얼마나 큰지를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리딩몹과 노마드리딩이다. 리딩몹은 1만명의 느슨한 연대 속에서 특정한 목적이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독서활동을 한 후 다시 흩어지는 플래시몹 개념을 독서에 접목했다. ‘벽돌책 격파단’을 통해 사피엔스, 총균쇠, 코스모스 등 혼자 읽기 어려운 두꺼운 책을 함께 읽는다. 노마드리딩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하면서 책을 읽는 개념으로,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는 보라매공원, 역사적 정취가 있는 운현궁, 이효석문학관이 있는 봉평 메밀밭 등 의미 있고 아름다운 장소로 이동하면서 몰입독서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행사는 독서가 정적이고 지루한 활동이 아닌 동적이고 즐거운 활동이어서 MZ세대 반응이 너무 좋다.”

-서울광장에 어린이를 위한 창의도서관 마련도 큰 보람이라고 말하는데.

“서울도서관은 광역대표도서관으로서 서울시 전체 도서관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역할에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공공도서관과 달리 어린이 열람실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주말이 되면 가족 단위로 서울도서관을 방문하는 어린이들이 적지 않았고, 이들은 성인 중심으로 설계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내는 소음 등으로 다른 이용자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어린이들은 조용히 해야 한다는 주의를 듣고 주눅이 들어 도서관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도서관이 모든 세대를 포용해야 한다는 본질적 가치와 배치되는 상황이라 생각했다. ‘책읽는 서울광장’을 기획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창의놀이터’를 별도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 단위로 피크닉을 즐기듯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도서관 공간을 마련했다. 시행 결과 어린이들이 ‘어린이날에 가장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서울광장 야외도서관을 꼽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너무 기뻤다. ‘책 읽는 서울광장’에서는 운영시간이 끝나갈 무렵 미아방송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놀랍게도 부모와 함께 온 자녀들이 집에 가기 싫어서 숨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들에게 도서관이 더 이상 조용히 해야 하는 억압적 공간이 아니라 자유롭게 뛰어놀고 책을 읽고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행복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야외도서관이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의미로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오지은 서울도서관장 겸 공공도서관협의회장 /2025.10.16 남정탁 기자

-서울도서관의 현안과 앞으로의 계획은.

“인공지능(AI)와 메타버스가 일상이 된 지금, 도서관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디지털 인문학’이 중요하다. 전자책, 오디오북, AI 추천 시스템 같은 기술은 이미 일상이다. 하지만 도서관은 기술보다 ‘사유의 깊이’를 지켜야 한다고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도서관은 생각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기술과 인문이 조화를 이루는 도서관, 그것이 서울도서관의 다음 목표다. 도서관은 전통적으로 개인의 학습과 독서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현대사회가 직면한 복합적 과제들을 고려할 때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제 개인의 학습을 넘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 간의 교류와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 간 신뢰와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자본을 형성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

 

오지은 관장은…

 

●1971년 경남 진주 출생 ●이화여대 문헌정보학 박사 ●1994년 성동구청 자료실 사서로 공직 입문 ●2007∼2022년 광진구립도서관장 ●전국도서관운영평가 대통령상(2011년, 2014년, 2018년 3회 수상 ●2017~2021년 서울시사서협회 공동대표 ●2022년~현재 공공도서관협의회장 ●2023년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 녹색도서관상 ●2024년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 마케팅상 수상 ●2022년~현재 부산국제아동도서전 공동추진위원장 ●2022년∼현재 서울도서관 제3대 관장 ●한국도서관협회 부회장 ●저서 ‘책 읽는 시민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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