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한 편이 책 한 권으로
“짧지만 완전한 독서 경험…
100명의 작가, 100권의 세계”
시인·학자·변호사까지 소설가로
장르의 경계 허문 문학 실험
‘한 조각의 문학’ 구현한 디자인
내년 3월 101번째 이야기 공개
‘단 한 편의 이야기’라는 슬로건으로 2023년 3월 출발한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이 이달로 100권을 발간했다. ‘한 편의 단편소설이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세간의 의심 섞인 물음에 답하듯,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흐름을 응축하는 한편 디지털 시대 한국문학 독자들이 짧지만, 물성 있는 문학 작품을 원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1권 구병모의 ‘파쇄’에서 100권 이미상의 ‘셀붕이의 도’에 이르기까지. 예소연·이희주·성해나·조예은 등 주목받는 젊은 소설가부터, 시인 이소호·김현·문보영,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 변호사 김원영, 무늬글방 글방지기 안담, 여성학자 권김현영, 미술평론가 이연숙까지 다양한 필자들이 함께했다.
숨 고르기를 거쳐 내년 3월 101번째 책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다음은 위픽 시리즈를 만들고 진두지휘한 위즈덤하우스 김소연 스토리팀장과의 일문일답.
—시리즈의 문을 연 책은 구병모 작가의 ‘파쇄’다. 시리즈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하다.
“구병모 작가는 천군만마 같은 존재였다. 첫 권을 구 작가가 맡아주기로 했을 때 ‘이제 일단 됐다’는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시리즈의 첫 권은 일종의 선언이다. 위픽의 색깔을 선명하게 보이면서도 독자에게 신뢰를 줘야 했다. 위픽은 장르와 형식을 파괴하는 실험을 예고했기에, 경계를 허무는 작가로서 구병모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100번째 자리는 이미상 작가에게 돌아갔다. 어떤 의미를 담았나.
“100권은 마침표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바랐다. 이미상 작가의 원고를 받았을 때 예상보다 훨씬 강렬했다. 환호가 터질 정도로 좋았다. 위픽이 그간 쌓아온 문학적 감각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이 작품은 그 방향과 딱 맞아떨어졌다. 다른 쪽을 향해 여는 문 같은 작품으로 100번째 자리에 두었다.”
—기획의 출발점은. 처음 상정한 독자상은 어떤 모습이었나.
“기획 단계에서 1년 넘게 독자 설문과 리서치를 진행했다. ‘독자들이 지금 정말 읽고 싶은 건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순수문학과 장르문학, 단편과 중편 같은 구분은 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신경 쓰지 독자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이었다. 독자는 SF건 순문학이건 이야기로서 재미가 있으면 선택한다. 처음에는 한국문학을 꾸준히 읽는 코어 독자를 중심에 뒀지만, 위픽으로 처음 소설을 읽는 새로운 독자층이 생길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 독자 반응은 어땠나.
“예상보다 독자층이 훨씬 넓었다. 바쁜 현대인에게 문학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바랐는데, 그 의도가 전달된 것 같다. 위픽을 통해 한국문학을 읽기 시작했다는 독자의 말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 디지털 시대의 빠른 속도 속에서 긴 텍스트 읽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지 않나. 위픽은 가볍고, 짧고, 접근하기 쉽지만 밀도가 높다. 짧은 책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이 독자를 다른 이야기로도 이끌 수 있다.”
—여러 시인이나 에세이스트가 위픽을 통해 소설가로 데뷔했다.
“대부분은 우리 팀에서 ‘이분의 소설이 궁금하다’는 마음으로 청탁했다. 모험이었다. 놀랍게도 대부분 “마침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고 하시더라. 제도적 의미의 ‘소설가’는 아니지만 이미 자기 세계를 단단히 가진 분들이었다. 결과물은 짜릿했다. 글쓰기 기술보다 문학적 감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폭발적으로 드러나곤 했다.”
—100권 중 중복되는 작가가 없다. 앞으로도 그럴까.
“100권까지는 ‘100개의 세계를 보여주자’는 목표로 갔다. 가급적 많은 작가, 다양한 세계를 소개하고 싶었기에 중복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 작가의 세계를 단 한 작품으로만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픽에 참여한 적 있는 작가들의 깊어진 세계를 다시 보여준다면 정말 좋겠다. 어떤 가능성이든 열어둘 생각이다.”
—101권 이후는 시리즈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100권까지가 한국문학의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었다면, 이제는 깊이를 더하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장르를 허물고 세계를 확장하는 실험은 더 넓고 깊어질 이다. 예를 들어 시나 에세이 등 글을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사람의 작품이나, 해외 작가의 단편을 선보이는 방식도 상상하고 있다. 100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위픽은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프로젝트다.”
—단 네 명의 팀원이 3년 만에 100권을 냈다. 엄청난 체력전을 치렀을 것 같다.
“100권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서로 응원하며 달릴 수 있었다.(웃음) 업무영역을 나누기보다 나와 곽선희 편집자, 김다인 편집자, 김해지 편집자 네 명이 전 과정을 함께하는 ‘공동편집’ 체제로 움직였다. 제목, 표지 문장, 카피, 뉴스레터까지 함께 논의했다.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100명의 작가를 어떻게 발굴했나.
“국내에서 발간되는 거의 모든 문예지를 네 팀원이 나눠 전수조사하듯 읽었다. 매주 기획회의를 하며 눈에 띄는 작가를 함께 다시 읽고 논의했다. 팀원 넷은 작품 보는 눈이 비슷하지만, 취향은 다르다. 누구는 SF를, 누구는 미스터리를, 누구는 로맨스를 좋아한다. 이런 차이 덕분에 위픽의 장르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간결하고도 손에 쥐기 쉬운 판형과 매력적인 색상 역시 시리즈의 큰 인기 요인이다.
“천재 디자이너 이세호 팀장의 공이다. 단편 한 편으로 책을 만드는 건 전례를 찾기 어려운 시도였다. 온전한 한 권의 책으로 가치를 가지고 수용되기 위해 디자인 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독서는 텍스트를 읽기 전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책이 손에 잡히는 질감, 표지를 보며 느끼는 설렘도 독서의 일부다. ‘한 조각의 문학’을 콘셉트로 초콜릿 모양 격자무늬 표지에 책의 정수를 담은 문장을 담고, 문장의 일부를 가려 호기심을 유발하는 띠지까지 설계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 작가의 투고 에피소드는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 6월, 소설가 정지돈이 전 연인의 이름과 개인사를 소설 2종에 무단 인용했다는 의혹 제기됐다. 정지돈은 일부 소설의 소설 속 인물 ‘권정현지’의 이름은 전 연인이 아닌 여성학자 권김현영에게서 가져온 것이라며 해명했다. 권김현영은 같은 해 12월 “이 사태에서 얄궂은 위치에” 놓여 “피해자도 방관자도 목격자도 될 수 없었”던 자신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 소설 ‘수신인도 발신인도 아닌 씨씨’를 펴냈다. 정지돈 역시 2023년 위픽 소설을 발간한 바 있다.)
“일명 ‘정지돈 사태’가 한창이던 때 권김 작가로부터 이 사태를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기획안이 담긴 메일을 받았다. 단, 위픽 시리즈로 책을 내고 싶다는 조건이었다. 위픽의 방향성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게 된 사건이다. 권김 작가가 위픽을 선택했다는 사실도 기뻤지만, 다른 출판사가 아니라 위픽에서만 출간 수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종종 “위픽은 작가나 평단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바로 그게 우리의 색깔이다.”
—위픽의 정체성을 정의한다면.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 때로 아주 짧은 한 문장 하나에서도 우주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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