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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의 제5영역] 왜 야구장에 쏠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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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29 23:38:05 수정 : 2025-10-29 23: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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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 가성비 좋은 야외공연 즐기듯 찾아
보고 먹고 소리 지르고… 제재 없는 해방구

2013년 일본 공영방송 NHK는 히로시마의 야구팀 도요카프를 다루는 “왜 여성팬이 급증하는가?”라는 특집 방송을 편성한다. 평소 야구를 보는 계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20대, 30대 젊은 여성들이 카프의 팬이 된 현상을 다룬 것이다.

이른바 ‘카프조시’(カ?プ女子)라고 불린 이 여성팬들은 중년 남성의 스포츠라 여겨져 팬 서비스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일본 야구팀들이 젊은 팬을 위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당시 카프조시에겐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우선 상대적 약팀을 응원했다. 히로시마 도요카프는 일본 리그에서 우승 공백기가 가장 긴 팀이었다. 또 카프조시는 당시 유행하던 소셜미디어 ‘트위터’(지금의 엑스)를 응원의 주요 도구로 삼았다. 카프조시는 야구복과 기념품 구입에도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는데 구단은 여기에 착안해 여성팬을 위한 별도 굿즈를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한국에서도 지금 한국시리즈가 열리고 있다. 10년 전 일본처럼 한국 야구장에도 젊은 여성 관객들이 가득 들어차면서 매년 최다 관중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젊은 여성 야구팬들의 증가에 대한 설명은 다양하다. 주된 데이트 장소였던 영화관 가격이 너무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성비 좋은 야구장이 인기를 끌게 됐다는 얘기도 있고, 열광적이고 흥겨운 한국 야구의 응원문화가 케이팝에 익숙한 젊은 여성들과 잘 맞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셜미디어를 빼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에서 ‘#야구’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관련 인기 해시태그가 함께 검색되는데 ‘야구장’, ‘야구스타그램’, ‘잠실야구장’ 등이 등장한다. ‘#축구’를 검색하면 ‘축구선수’, ‘축구꿈나무’, ‘축구교실’ 등이 나오는 것과 비교해 야구가 훨씬 더 ‘관람하는 공연’의 성격이 강하다는 뜻이다. 한국만의 얘기도 아니다. 야구팬이 많은 일본에서도 #野球バカ(야구만 아는 바보), #野球??(야구관람) 등 팬문화 관련 주제어가 소셜미디어의 인기 해시태그다. 대만 또한 #棒球寫?(야구사진), #棒球褸(야구점퍼) 등이 인기 해시태그에 오른다. 공통점이 있다. 모두 ‘야구장’ 현장에 대한 해시태그다. 이제 야구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야구장이 주는 경험을 좋아한다는 얘기와 비슷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카프조시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가끔 언급된다. 야구 규칙도 모르면서 시합에 집중하지 않고 야구장만 드나드는 팬이란 비아냥인데, 한국의 젊은 여성 야구팬들도 비슷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야구장은 왜 젊은 세대에게 인기일까. 난 야구장이 금지하는 게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야구장은 ‘하면 안 되는 일’이 거의 없는 일종의 해방구다. 영화관만 가도 상영 중 휴대전화를 켜면 안 된다는 제재를 받지만, 야구장에서는 아무 때나 셀카를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려도 된다. 연극은 중간에 입퇴장이 어렵지만 야구장은 자유로운 입퇴장은 물론 재입장도 가능하다. 야구장은 경기를 보지 않고 치맥만 즐기거나 심지어 시합을 보며 삼겹살을 구워 먹는 팬들도 환영한다.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는 연주홀과 달리 야구장에서는 고래고래 노래를 따라 불러도 된다. 드레스코드도 없어서 넥타이 차림의 회사원부터 축구팀 유니폼을 입고 온 관객까지 별별 복장이 다 허용된다. 홈팀과 원정팀 응원석이 나뉘어 있지만 편의적 구분에 불과하고, 각 팀 응원석 중간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상대팀 유니폼을 입고 서 있는 관객이 드문드문 보인다.

오프라인이 빡빡한 한국에서 젊은 세대의 해방구는 소셜미디어였다. 그 해방구를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면 야구장이 된다. 더구나 그곳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야구의 계절이다. 비아냥 대신 응원을 보낼 때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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