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때 이장희에 발탁된 ‘될성부른 떡잎’
송창식·조용필 밴드 거쳐 버클리 음대로
‘긱스’ 결성… 재즈·팝 융합 선구적 시도
이적·정재일 등 뮤지션들의 멘토 꼽혀
천상병 詩 ‘귀천’서 영감 얻은 새 앨범
3년 전 이태원 참사가 이끈 앨범 작업
떠난 이들을 위한 ‘조용한 추모’ 담아
‘먼북소리’ 같은 해 작고 김민기에 헌정
강단서 후배 양성… “전의 없다” 쓴소리도
정원영밴드서 후배들과 연주실험 계속
“신인은 미숙해도 꿈틀대는 생명력 있어야
자신만의 고유한 색과 메시지 지니길”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기록된 전설적 밴드 무대에 선 연주자이자 재즈와 팝을 융합한 가요를 선보인 싱어송라이터 정원영. 포크 음악의 대부 이장희가 발탁해서 ‘석기시대’, ‘사랑과 평화’, ‘위대한 탄생’ 등에서 키보드를 연주했고, ‘정원영·한상원밴드’, ‘긱스’ 등을 결성했다.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 ‘유앤미 블루 1, 2집’, ‘낯선 사람들 1집’ 등에 참여했으며, 그의 1집 ‘가버린 날들’은 시대를 앞서간 명반으로 평가된다. 이적·정재일·장재인·손승연·백아연 등 숱한 뮤지션 사부이자 멘토로, 데뷔 40여년을 넘긴 지금도 창작 열정이 식지 않은 현재진행형 뮤지션이다.

그런데도 “500명만 들어줘도 좋다”며 자기 음악 세계를 고집하는 정원영을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 CJ아지트에서 만났다. 전날 이곳에서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하는 ‘정원영밴드’ 공연을 막 마친 터였다.
“고2 때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어느 클럽 누가 잘한다’ 그러면 그 클럽을 찾아다녔어요. 한상원(기타리스트)이랑 ‘저희 음악하려고 하는데 구경 좀 하고 싶다’ 그랬죠. 그러다 어느 분이 낮에 한 번 나오라고 해서 갔더니 수술 때문에 열흘 정도 입원한다고 ‘너 한번 쳐봐’ 그래서 쳤더니 ‘오늘부터 나 대신 연주하라’고 해서 밤무대를 시작했죠.”
‘어린 친구가 연주 잘한다’는 소문이 나자 이장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이장희는 그를 송창식의 스튜디오로 데리고 가서 “아무거나 쳐봐라”라고 했다. 전설적 전자피아노 ‘펜더로즈’를 그때 처음 봤다고 한다. “제 연주를 듣더니 ‘너 고등학교 졸업하면 나랑 음반 내자’ 하셔서 그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정원영은 당대 최정상 선배 음악인과 호흡하며 밴드 연주자로서 길을 걸었다. 1980년 ‘쉼’으로 데뷔한 후 송창식의 백업밴드 ‘석기시대’와 최이철이 이끌던 ‘사랑과 평화’ 그리고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 등에서 키보드 연주자로 활약했다.

그러다 현대 대중음악의 본산 격인 버클리음악대학 유학을 결정한 건 ‘위대한 탄생’ 시절(1984년)이다. “‘사랑과 평화’에 계시던 송홍섭 선배님이 ‘위대한 탄생’의 메인 베이스 겸 편곡자였거든요. 홍섭이 형이 또 조용필 선배님 전국 투어를 같이하자고 해서 투어에 참여했죠. 그런데 너무 유학이 가고 싶은 거예요. 저는 정말 궁금한 게 많았거든요. 용필이 형한테 ‘형님, 저 유학 갑니다’ 그랬더니 ‘너 이제부터 한창인데 유학 가면 어떡하니’ 그러시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터에 무엇을 그렇게 배우고 싶었는지 묻자 미국 재즈 음악가 허비 행콕 이야기를 꺼냈다. “허비 행콕이 어떻게 저런 곡을 쓰며 어떻게 저런 연주를 하는지 너무 알고 싶었어요. 그러다 신문사 도서관에서 버클리음대 관련 책을 찾고 그래서 한상원, 김광민(재즈 피아니스트)이랑 ‘야, 우리 여기 가자’ 한 거죠.”
버클리음대에 가보니 전 세계 음악 천재들이 모인 ‘전쟁터’였다. “버클리에서 제일 좋았던 건 ‘전의’였어요. 그야말로 싸우고 싶은 의지, 이기고 싶은 마음이었죠. 왜냐하면 거긴 전 세계에서 모인 친구들이 다 있으니까요. 지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내일 밤엔 마일스 데이비스가 연주하고, 모레엔 허비 행콕, 그다음엔 키스 재럿이 무대에 서는 곳이니까요. 그걸 보고 나면 연락도 안 해요. 그냥 다들 연습하러 가요. 그게 매일 반복되는 거예요. 그게 버클리고 전쟁터 같았죠.”
수업 과제도 만만치 않았다. 매주 곡을 하나씩 써서 발표해야 하는 작곡 클래스가 있었고, 앙상블 수업에서는 매주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 앞에서 합주 공연을 했다.
그렇게 정원영은 음악 동지들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 버클리음대에서 ‘프로페셔널 음악’을 전공했다.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친 ‘버클리음대 1세대’의 탄생이다. 서울예대·동덕여대·호원대 등에서 음악인을 키워낸 정원영은 요즘도 제자들에게 “너무 ‘전의’가 없다. 너무 한가하다”고 늘 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유학을 끝마치고 돌아온 정원영은 솔로 1집 ‘가버린 날들’로 1993년 싱어송라이터로서 데뷔한다. 타이틀곡 ‘가버린 날들’은 한국 대중가요에서는 드문 복잡한 코드 전개와 재즈풍의 선율을 보여주었고, ‘별을 세던 아이는’ 등 서정적인 곡들도 호평받았다. 재즈·펑크·팝을 절묘하게 융합한 그의 음악 스타일은 한국 대중가요에 재즈적 세련미를 도입한 선구적 시도로 평가된다. 음악평론가 김영대는 “이 앨범은 가요 뮤지션의 재즈적 접근이 아니라 재즈 뮤지션이 가요라는 장르에 던지는 헌사”라고 평했다. 이후 정원영을 대중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은 2집 ‘미스터 문라이트’에선 ‘다시 시작해’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정원영은 솔로 앨범 작업을 이어가면서도 1990년대 말 이적, 한상원, 정재일 등과 함께 밴드 ‘긱스(GIGS)’를 결성한다. 천재적 연주력과 복잡한 화성어법, 세련된 편곡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의 가장 실험적이고 독보적인 밴드로 평가된다. 세계가 주목하는 작곡가로 활동 중인 정재일은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으며, 베이스를 직접 익혀 긱스에 합류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정원영밴드’를 결성해 활동을 이어간다. 그가 키워낸 후배 세션들과 함께 새로운 연주 언어를 실험하고 있는 현재형 밴드이다.
25일에는 정규 9집 ‘소풍’도 발표할 예정이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서 영감을 받은 앨범명처럼, 삶의 마무리와 떠남(죽음)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담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조용히 기리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노래가 담겨 있다. 그중 ‘먼북소리’는 2022년 작고한 김민기를 위한 추모곡이다. 모든 곡의 작사·작곡·편곡·연주를 직접 맡았으며, 정재일이 오케스트레이션을 도왔다.
“9집은 시작이 2022년 이태원 참사였어요. 멀쩡히 거리 한복판에 있다가 그렇게 세상을 떠난 분들을 생각하며, 제가 할 수 있는 건 음악으로 조용히 추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제가 영웅처럼 여겨온 뮤지션들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어요. 칼라 블레이, 제프 벡, 버트 배커랙, 아마드 저말…. 존경하는 분들 한 분 한 분을 위한 곡을 쓰다 보니, 너무 많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아예 ‘추모’에 관한 곡들로 묶자 결심했죠.”
많은 이가 죽음을 아쉬워한 김민기와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오랫동안 알고 지내 온 전유성은 정원영에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분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믿고 따르던 각별한 ‘형님들’이었다. “민기 형님을 기리며 ‘먼북소리’라는 곡을 헌정했습니다. 생전에 ‘추모 행사 같은 건 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분이어서, 그저 제 음악으로 조용히 마음을 표현한 거예요.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처럼 세상에 잠깐 왔다가 떠나는 우리들의 짧았던 삶이 한바탕 소풍이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한 곡이에요.”

4년 만에 새 앨범을 내면서도 “홍보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상업적 성공이나 노출보다는 음악 자체의 의미와 전달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철학 때문이다. “나는 그냥 한 500명이 들었으니까 (이번에도) 그 정도 사람들이 들을 거고. 매일 기도를 해요. 이 음악이 필요한 곳에 가닿기만 해달라고. 그 정도면 난 됩니다. 그렇게 결심을 딱 하고서 괜한 욕심 안 부리고, 괜한 기대 안 하고 만들고 싶은 거 만들고,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라고….”
수십 년을 강단에 선 교육자로서 정원영은 국내 인디 음악계 대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CJ문화재단 ‘튠업’ 등 여러 음악인 지원 프로그램의 심사위원과 멘토로 활약하며 숱한 음악인을 키워왔다. 신인을 발굴하고 평가할 때 그는 기술적인 완성도보다는 음악에 ‘생명력’이 있는지를 본다. “지금은 미숙해도 음악 속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지닌 젊은 음악가는 흔치 않습니다.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늘 수 있지만, 그런 생명력을 갖고 출발하는 친구들은 정말 드물거든요. 요즘 친구들의 기교나 실력도 물론 뛰어납니다. 하지만 자기 음악만의 고유한 색과 생명력, 그리고 듣는 이에게 줄 메시지가 있는지를 저는 훨씬 더 중요하게 봅니다.”
짧은 영상 콘텐츠와 K팝 중심의 소비 흐름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일 뿐, 우리가 그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면서도 생태계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옛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를 가르쳐야 하고, 기업이나 재단에서는 진정성 있게 음악하는 젊은 친구들을 계속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다양한 음악이 대중에게 어필하고,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정원영은…
●1960년 서울 출생 ●보성고·버클리음악대학 ●1980년 ‘쉼’ 멤버로 데뷔 ●석기시대·사랑과 평화·위대한 탄생·슈퍼밴드·정원영한상원밴드·긱스·정원영밴드 ●서울예대·동덕여대·호원대 실용음악과 강사·교수 역임 ●유재하음악경연대회 등 각종 음악경연·장학사업 심사위원 ●솔로앨범 ‘가버린 날들’(1993) 이후 ‘소풍’(2025)까지 9집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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