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예술가 아닌 장인으로 표현
“요리는 감각 훈련이자 팀워크 예술”
블랙 트러플 올린 아티초크 수프와
브리오슈 페이스트리 시그니처 메뉴
재료 본질 지키며 완벽한 조화 일품
“감정 없는 요리는 아름답지 않아”
프랑스 파리, 센 강변의 모네 드 파리. 그 고전적인 건물 안에서 ‘세계 미식의 전설’이 손님을 맞는다. 바로 40년 넘게 프랑스 요리의 품격을 지켜오고 있는 기 사부아(Guy Savoy) 셰프다. 그는 2017년 세계적인 미식 평가기관 라 리스트(La Liste)가 선정한 세계 1위 레스토랑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로도 8년 연속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프랑스 미식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요리 인생은 프랑스 남부 보르고앙 자리유의 작은 식당에서 시작됐다. 어머니가 주방에서 내던 냄비 소리와 빵 굽는 향이 요리에 대한 그의 첫 기억이다. 열다섯 살, 그는 요리사의 길을 결심했고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프레르 트루아그로에서 혹독한 수련을 거쳤다. 이를 바탕으로 1980년 파리에서 레스토랑 기 사부아를 오픈, 프랑스 요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는 요리를 이렇게 정의한다. ‘요리란 이야기를 머금은 재료를 한순간의 기쁨으로 변형시키는 예술이다.’ 그의 주방은 예술의 공간이 아니라 장인의 작업실이다. 매일 두 번의 서비스마다 식재료, 온도, 향, 리듬이 하나의 교향곡처럼 맞물린다. 기 사부아는 자신을 예술가가 아닌 장인으로 부르며, 요리를 감각의 훈련이자 인간의 기쁨을 완성하는 ‘팀워크의 예술’이라 말한다.
2015년 그는 파리의 역사적인 건축물 모네 드 파리로 레스토랑을 옮겼다. 세계적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와 협업한 이 공간은 슬레이트 그레이와 블랙 톤이 절제된 아름다움을 이루고, 11개의 대형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음식과 예술작품을 함께 비춘다. 센강, 루브르, 퐁네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서 기 사부아의 요리는 미식과 건축, 빛이 어우러지는 하나의 경험이 된다.
그의 요리는 언제나 심플하면서도 완벽하게 아름답다. 시그니처 메뉴는 블랙 트러플을 곁들인 아티초크 수프 & 버섯과 트러플을 올린 브리오슈 페이스트리. 블랙 트러플을 켜켜이 얇게 쌓아올린 바삭한 브리오슈와 부드러운 트러플 크림소스는 깊은 향과 여운을 남긴다. 이 메뉴는 ‘땅의 향’을 가장 우아하게 표현한 한 그릇이다. 또 다른 시그니처인 굴즙 젤리로 덮인 생굴은 ‘굴과 굴의 만남’이라는 점이 매우 이색적이다. 부드럽게 으깨서 크림소스로 가볍게 버무려진 굴과 굴즙 젤리로 덮은 싱싱한 굴의 만남으로 매우 진한 굴의 풍미를 즐길 수 있다. 맛과 굴 자체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허브와 스파이스는 최소로 사용하고 레몬으로 가볍게 마무리한 굴 요리다. 그의 요리는 재료의 본질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내는 미학으로 평가받는다.
오는 27일 세계 미식계를 대표하는 라 리스트가 ‘라 리스트 코리아 2026’ 10주년 갈라 & 어워즈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개최한다. 라 리스트는 2015년 탄생했다. 각국의 평론가 리뷰, 미디어 평가, 고객 피드백을 데이터로 분석해 전 세계 레스토랑의 순위를 집계하는 세계 유일의 미식 인덱스다. 그 공정성과 투명성 덕분에 ‘세계 미식의 오스카’라 불리며, 오늘날 미식이 ‘취향과 문화의 언어’로 확장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특별한 무대를 위해 기 사부아 셰프가 한국을 찾는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 셰프들의 열정과 정직함, 그리고 ‘발효’라는 전통적 기술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기 사부아는 “한국의 미식은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놀라운 세계다. 그들은 새로운 조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국의 미식은 지금 세계가 주목해야 할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 음식에는 강렬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있다. 김치와 된장, 고추장과 장아찌는 모두 발효를 통해 깊이를 얻는다. 이런 조리법은 프랑스의 전통 요리와도 통하는 철학이 있다”며 발효, 채소의 활용, 균형 잡힌 플레이팅 감각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라 리스트 코리아 2026 행사에서 한국 셰프들과의 만남은 그에게도 또 한 번의 영감을 주는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라 리스트의 인터내셔널 디렉터 스테파니 김은 “라 리스트는 지난 10년간 세계의 미식 문화를 연결하는 지도 역할을 해왔다.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10주년은 한국 미식의 성장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무대가 될 것이다”고 전했다.
시상식이 열리는 27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라 스칼라에서는 단 하루 동안 기 사부아 셰프의 요리를 직접 맛볼 수 있다. 이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모든 고객에게 그의 알바 화이트 트러플 단호박 수프가 제공된다. 섬세한 테크닉과 프랑스 미식의 깊이가 어우러진 한 그릇, 그의 예술적 영감이 담긴 순간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기쁨이 예술이 되는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 사부아는 셰프로서의 명성과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언제나 ‘매일의 수련’이라 정의한다. 그는 요리를 단순히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정의 전달수단으로 본다. 그의 부엌에서는 한 접시가 완성되기 전까지 수많은 대화가 오간다. 재료와 셰프, 셰프와 팀, 그리고 손님과의 보이지 않는 대화들. 이 모든 과정이 쌓여 결국 한 점의 미식으로 완성된다. 그는 종종 젊은 셰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감정은 만들어져야 한다. 감정이 없는 요리는 정확하지만 아름답지 않다.” 그의 주방에서 요리는 ‘조리’가 아니라 ‘대화’이며, 그 속에는 인간의 온기와 계절의 흐름, 시간의 기억이 녹아 있다. 그는 미식이란 결국 ‘기억의 예술’, 즉 사람의 마음속에 남는 경험이라고 믿는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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