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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남북열차, 도라산역서 다시 출발하길” [심층기획-경주 에이펙, 한반도 평화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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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21 06:00:00 수정 : 2025-10-21 08:39:51
파주·고성·연천=이강진·변세현·장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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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끊어진 남북교류, 단절된 기억의 흔적

끊긴 남북교류의 흔적 르포

북녘땅과 7㎞ 거리 파주 도라산역
교류 단절로 2018년 열차 왕래 ‘뚝’
동해선 제진역도 20년 가까이 방치
“쌀 나눔 등 민간교류부터 물꼬터야”

인적 끊긴 고성 제진역
철길 뚫려 있지만 北 향하는 문 닫혀
대합실엔 ‘금강산 방면 요금 4000원’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개성공단 출입 장소로 북적이던 곳
교류 재개 대비해 모의훈련 이어가

연천 평화경작지
농업협력 상징이지만 가동 ‘올스톱’
공들며 재배한 쌀 야생동물 먹이로

#1. 17일 서울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 철도의 남측 끝단 경기 파주 도라산역, 텅 빈 대합실 한쪽 벽면에 적힌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라는 문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불이 꺼진 채 덩그러니 남겨진 장비들과 부스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어진 대합실의 적막감을 더욱 짙게 했다. 남북 교류가 한창이던 당시 개성공단 인근 판문역으로 가는 물자와 사람들로 북적이던 풍경은 이제 과거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2. 같은 날 경기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 일대 논에는 최근 내린 많은 비로 벼들이 누워 있었다. ‘평화경작지’라고 이름 붙은 이곳은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됐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나빠지면서 이곳 평화경작지에서 재배된 한 톨의 쌀도 북한에 전달되지 못했다. 정권택 북삼리 노인회장은 “북한에 쌀을 못 보내니까 서운하다”고 아쉬워했다. 도라산역과 평화경작지는 남북교류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을 준비하려는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었지만 지금은 쓸쓸함과 아쉬움만 가득하다.

적막감만 가득 17일 서울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 철도의 남측 끝단에 위치한 경기 파주시 장단면 소재 도라산역 선로와 플랫폼이 텅 비어있다. 도라산역은 남북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을 때에는 남쪽에서 북한 개성공단으로 가는 물자를 실어나르는 관문으로서 역 안팎이 분주했다. 하지만 2018년 이후 남북 열차 왕래가 끊어지면서 도라산역에는 적막감만이 감돌고 있다. 도라산역에서 평양으로 가는 철로는 뻗어있지만 남북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북쪽으로 나아가는 열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파주=최상수 기자

어떻게 다시 시작할 것인가. 세계일보는 16, 17일 경기 파주 도라산역과 남북출입사무소, 강원 고성 제진역, 경기 연천 평화경작지를 찾았다. 멈춰버린 기억의 공간을 다시 찾아 과거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제언하기 위해서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하고, 남북 교류를 강조하면서 사람과 물자가 다시 오가고, 남북 간 협력이 재개되기를 바라는 그곳 사람들의 기대감도 함께 들었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구역 내 도라산역은 서울에서 북한, 중국, 러시아, 유럽으로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의 잠재력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철도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도라산역을 거쳐 유럽까지 물류를 운송할 수 있다. 북한을 넘어 중국, 러시아까지 잇는 국제선 열차 승강장을 설치한 것도 이런 정체성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남북교류협력이 단절되면 한국의 철도는 북쪽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남북 교류가 단절된 도라산역은 적막하기 짝이 없다. 매월 두 번째 금요일 남쪽의 직전 역인 임진강역에서 사전에 신청한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셔틀열차가 도라산역까지 운행되고 있으나 북으로 향하는 열차는 없다. 평양 방면 다음역인 판문역까지 거리는 불과 약 7㎞. 도라산역에서 평양을 향하는 철로는 뻗어 나가 있지만 경색된 남북관계로 북쪽으로는 한 발짝도 더 움직일 수 없다.

 

2002년 개통한 도라산역은 남북관계에 따라 활기와 침체를 반복했다. 2007년 12월부터 2008년 11월까지는 도라산역과 판문역을 오가는 남북화물열차가 정기적으로 운행됐다. 개성공단 인근 판문역에 물자 등을 실어나르는 관문이었다. 2008년 12월 북한의 일방적 운행 중단으로 열차 왕래는 끊겼다가 남북 화해 분위기가 다시 무르익은 문재인정부 당시인 2018년 11∼12월 ‘남북철도 공동조사단 열차 운행’,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열차 운행(서울∼판문)’으로 잠시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2018년 이후 열차 왕래는 또다시 끊겼다.

2022년 1월 5일 강원 고성군 제진역에서 동해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착공식이 열렸다. 뉴시스

경의선과 함께 남북한을 잇는 또 다른 축인 동해선의 남쪽 지역 최북단 제진역도 상황은 같다. 동해선은 2006년 금강산 육로 관광 활성화를 위해 준공됐다. 제진역은 북한 금강산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동해선을 타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정차한 곳이다. 하지만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건 이후 제진역을 통하는 모든 교류가 중단됐다. 2007년 이후 20년 가까이 방치됐다.

 

16일 찾은 제진역 대합실은 인적은 없고 금강산, 평양, 백두산, 모스크바 등의 목적지가 적힌 열차요금표만이 교류의 흔적을 보여줄 뿐이었다. 요금표에 적힌 금강산까지의 요금은 4000원, 소요 시간은 20분에 불과하다.

 

북쪽으로 향하는 철도는 여러 군데 녹이 슬었고. 일부 구간은 쏟아진 흙더미로 덮여 있었다. 북쪽으로만 선로가 이어져 있는데, 지난해 북한이 경의선·동해선 철도 및 도로를 폭파·철거하면서 제진역은 남북 어디도 갈 수 없는 고립된 역이 됐다. 제진역과 붙어 있는 동해선 도로 남북출입사무소는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북으로 향하던 이들의 출입경 업무를 담당했다. 2018년 광복절을 기념해 마련된 제21차 이산가족 상봉 당시 이곳을 거쳐 북한으로 향하기도 했으나 2019년 2월 업무가 중단됐다. 남북출입사무소 관계자는 “제진역은 2007년 시범 운행 이후 한 번도 쓰인 적이 없다”며 “지금은 일반 관광객도 못 들어온다”고 했다.

굳게 닫힌 문 강원 고성군 현내면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 남측 지역에서 16일 울타리 너머로 북측 지역으로 나아가는 도로가 텅 비어 있다. 위 작은 사진은 왼쪽부터 17일 경기 파주시 장단면 소재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일대에서 훼손된 채 방치된 도로 표지판,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내 출경 안내 표지판, 16일 강원 고성군 현내면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 밖에 세워진 금강산 방면 표지판. 고성·파주=이제원·최상수 기자

◆교류 재개를 꿈꾸는 모의훈련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의 업무는 2020년 멈췄다. 그해 1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왕래가 끊기다시피 했고, 6월에 북한이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하지만 군사분계선까지 약 2㎞, 개성공단까지는 약 7㎞ 떨어진 이곳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른 남북 간 출입장소로, 인원과 물자의 출입 업무 처리를 담당해 꽤나 북적이던 곳이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한국을 찾은 북한 예술단 및 고위급 대표단 등이 지나간 곳이기도 하다. 2011∼2012년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소속으로 남북한 출입경 업무를 지원했던 황찬숙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실무관은 “북한에 원자재 및 물자를 운반하는 첫 타임(MDL 통과 기준 오전 8시30분)에 화물차가 차량 게이트 앞에 길게 쭉 늘어져 서 있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경의선 남북 출입시설 체험 프로그램 해설을 담당하며 그때의 기억을 전하고 있다.

 

개성공단에 여러 번 다녀왔다는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국 한 직원은 “처음엔 긴장을 많이 했는데, 나중에는 왔다 갔다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고 했다.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는 남북 간 교류가 재개되고, 사람과 물자가 예전처럼 오가게 되는 그때를 위해 지금도 모의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이지호 주무관은 “인원 및 차량 검사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총 27회의 모의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경기 파주시 장단면 남북출입사무소. 파주=최상수 기자

◆쌀을 나눌 북한주민, “이웃이다”

 

경기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 일대 평화경작지는 북한에 보낼 쌀을 재배하는 농장이다. 황해북도와 직선거리로 불과 2㎞ 정도 떨어진 이곳은 농업 협력의 상징이지만, 남북관계가 냉각되며 공들여 생산한 쌀은 북한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재배한 쌀은 이제 북한 접경지역에 보금자리를 튼 두루미, 독수리, 청둥오리, 고라니 등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로 뿌려진다.

 

쌀을 나누려는 북한 주민은 연천군 주민에게 ‘이웃’과 다름없다. 민통선 안에서 30년을 산 은금홍 평산리 노인회장은 “산에 올라가면 북한 오장동 농장에서 농사짓는 북한 주민을 400∼500명씩 볼 수 있다”며 “홍수가 나 물에 휩쓸려 떠내려온 북한 사람을 본 것도 여러 번이다. 모두 이웃”이라고 했다.

 

남북 화해와 교류가 누구보다 절실한 건 그래서다. 쌀 나눔 등의 민간교류가 시작일 수 있다는 이들의 말에는 묵직한 울림이 있다. 은 회장은 “빨리 민간인 교류라도 활발히 돼서 서로 오가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며 “우리 연천군이 발전하려면 일단 북한하고 사이가 좋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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