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3개 늘려 36명 동시 치료
개소 2년 만에 치료 1만건 돌파
중증 입원환자부터 외래도 가능
세포·혈관 관련문제 긍정 효과
화상치료 기간·부작용·합병증 ↓
광역재난대응 거점병원 역할도
잠수정을 연상케 하는 두꺼운 철문이 닫히자 ‘칙-’하는 소리와 함께 체임버 내 기압이 서서히 높아진다. “수심 3m입니다.” 줄지어 놓인 의자에 앉아 조정실의 안내에 따라 산소마스크를 쓴 채 조용히 숨을 고른다.
지난 15일 찾은 이곳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한강성심병원 고압산소치료 체임버는 단순히 산소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다. 내부 기압을 평소(1기압)의 최대 네 배까지 끌어올리고 혈장 내 산소를 녹여 손끝의 세포까지 산소가 닿도록 하는 정밀 치료실이다. 비행기를 탄 듯 귀가 먹먹해지기도 하지만 고농도의 산소를 들이마셔도 불편감은 없다. 두 시간가량 치료를 받는 동안 환자들은 설치된 텔레비전 모니터를 통해 영상을 시청하거나 편안하게 시간을 보낸다.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고 감염을 억제하는 중요한 과정이지만 마치 ‘치료’보다는 ‘충전’에 가까운 시간이다.

주로 일산화탄소 중독 등 응급 상황에서만 쓰이던 고압산소치료가 화상과 당뇨병성 족부궤양(당뇨발), 난치성 골수염 등 환자들의 회복을 도우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기존 응급실 중심의 1인 체임버를 벗어나 다인용 체임버를 갖춘 전문 센터들이 늘어나며 접근성이 크게 개선된 덕분이다.
◆회복 속도 높이는 고압산소치료
산소는 우리 몸속 세포의 연료가 되고 손상된 조직을 치료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나 질환에 걸리게 되면 부종, 모세혈관 손상 등이 발생하면서 평소 적혈구에 붙어 이동하는 산소분자가 세포 속에 전달되지 못한 채 혈관을 떠돌아다닌다. 이때 기압을 높이면 산소분자가 적혈구와 결합하지 않아도 혈장 속에 녹아 말초신경까지 전달된다. 압력을 가해 탄산을 녹아들게 하는 탄산음료와 유사하다.
혈액을 통해 공급된 다량의 산소는 혈관 신생과 조직 재생을 촉진하고, 염증·부종 완화 및 감염 억제 등 회복 속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몸속 모든 세포의 활성도를 높이다 보니 특정 질환을 치료하는 데 국한되지 않고, 세포 및 혈관과 관련된 문제에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국내에서 고압산소치료는 주로 화재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이나 고압의 바닷속 활동이 많은 잠수부에게 생기는 잠수병(감압병)을 대상으로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당뇨발의 절단을 예방하거나 수술 후 상처 치료, 돌발성 난청 등 다양한 질환의 치료효과가 입증돼 건강보험도 적용되고 있다.
실제 포르투갈 리스본대 연구에 따르면 고압산소치료를 받은 허혈성 족부궤양 환자들은 상처 크기 및 염증 수치가 30~50% 감소했으며, 하지 절단율 및 사망률 등이 감소했다. 이외에도 고압산소치료는 항암치료 후 컨디션이 저하된 암환자들이나 만성 피로, 면역력 저하, 탈모 등의 보조치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병원들에선 고압산소치료가 주로 응급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탓에 최근까지도 일반 환자들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항노화와 미용, 피로 회복 등을 위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고압산소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도가 높아졌지만 시설 비용, 전문 의료진 부재 등으로 의료시설이 아닌 ‘산소방’만 우후죽순 생겨났다. 산소방과 자택용 ‘산소 캡슐’ 등은 가압이 아예 없거나 미미해 사실상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응급부터 일상 치료까지
이처럼 전문적인 고압산소치료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의료계도 인프라 확충에 나서고 있다. 국내 대학병원 최초로 고압산소치료센터를 연 한강성심병원이 대표적이다.
2023년 7월 개소한 한강성심병원 고압산소치료센터는 최근 체임버 3호기를 추가 도입하면서 국내 최대 규모인 36인 동시 치료 시스템을 완성했다. 3호기 도입으로 인프라가 확충되면서 입원 환자뿐 아니라 외래로도 문호를 넓혔다. 중증 입원 환자뿐 아니라 상처 회복이나 염증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도 지난달부터 고압산소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보건복지부 지정 국내 유일의 화상 전문 대학병원인 한강성심병원이 화상환자에 대한 수가가 낮아 적자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이같이 인프라 확충에 나선 것은 화상환자에게 고압산소치료는 특히 더 중요한 탓이다. 치료 기간이 단축됨에 따라 통증과 후유증이 생길 확률도 줄어들고, 가려움증 등을 유발하는 흉터로 진행될 가능성도 낮춘다. 특히 화상 부위가 넓어 피부이식술을 한 경우 해당 조직의 활성도가 높아져 생착이 빨리 이뤄질 수 있어 부작용과 합병증을 줄일 수 있다.
한강성심병원은 축적된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 고압산소치료 표준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연구하는 한편 다수 환자를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역량을 기반으로 광역 재난대응 거점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사회 의료 접근성 확대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다. 실제 개소 2년여 동안 고압산소치료를 1만건 넘게 시행하면서 △화상 및 창상질환에서 치유 속도 향상 △피부이식 생착률 상승 △감염과 부종 억제 △치료 후 흉터·통증 등 후유증 감소와 같은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
허준 한강성심병원 원장은 “이번 인프라 확충은 개별 환자 치료를 넘어, 대규모 재난 상황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사회적 안전망을 더욱 튼튼히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압산소치료가 더 이상 특별한 치료가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회복의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며 “화상환자뿐 아니라 암환자, 면역저하자, 일반인에게도 고압산소치료 기회를 폭넓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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