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촉발된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뒤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1년 8개월간 유지해 온 보건의료 위기 경보 ‘심각’ 단계가 20일 해제된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 대란 사태가 공식적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극심한 필수∙지역의료 공백 등을 해소하기 위한 의료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았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 해소도 핵심 과제다.

18일 정부 등에 따르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차장인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대본 회의에서 “전공의 복귀 이후) 의료체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심각 단계를 20일 0시부로 해제한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새 정부 출범 후 의료계와 소통을 재개하면서 상호 협력했고 상당수 전공의가 복귀했다”며 응급의료 상황도 수용 능력을 거의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모집을 통해 7984명의 전공의가 수련 과정에 복귀했다. 의정 사태 이전의 76.2% 수준을 회복했다. 현재 전국 수련병원의 전공의는 모두 1만305명이다. 현재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진료량은 비상진료 이전 대비 95% 수준이고, 응급실 역시 평시 기준 병상의 99.8%를 회복했다.
비상진료체계가 해제되면 비상진료 명목으로 시행됐던 한시 수가(의료서비스 대가) 등의 조치들이 종료되고, 그중 일부는 상시화된다. 정 장관은 “자원의 효율적 운영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평가된 진료지원 간호사, 비대면 진료, 입원 전담 전문의 등의 조치는 제도화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지난 1년 8개월 동안 의정 갈등으로 인해 의료현장에서 불편 겪은 환자, 가족에게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 환자 곁에서 생명 지켜주는 의료진, 119 구급대 등 공무원께 감사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부는 지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자 보건의료 위기 경보 ‘심각’ 단계를 선언한 뒤 중증·응급환자 진료 공백을 막기 위해 비상진료 수가를 인상하고 수입이 급감한 수련병원에는 건강보험 급여를 선지급하는 등 건강보험에서만 3조원 넘는 재정을 투입했다.
당장 전공의들이 복귀하면서 의∙정갈등으로 벌어졌던 의료 대란은 상당 부분 해소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지역∙필수의료 공백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도 수도권 대형병원∙인기과목에서는 활발했던 것과 달리 비인기 필수과목과 지방 병원은 복귀율이 더 저조했다. 복지부 수련환경 혁신지원 대상 전문과목 8개(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신경과, 신경외과)에는 1370명의 전공의가 여전히 복귀하지 않고 있다.
공공∙지역 의료 상황도 열악하다. 전국 공공의료기관은 의사 정원 1만4686명 중 32%인 4727명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고, 보건소와 보건지소 등 지역보건의료기관은 최소배치인원 기준 1871명 중 29%인 543명 부족해 총 5270명의 의사가 충원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 공공의료기관과 지역보건의료기관 198곳 중 정원을 채우지 못한 의료기관은 92곳에 달해 46.5%의 공공의료기관이 의사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부 산하의 국립대병원도 정원 9453명 중 4007명이 모자란 상황이다.

정부는 지역·필수·공공의료 위기 극복을 위해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설립’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료계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역의사제는 의대가 있는 대학에서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전형'으로 선발해 입학금과 학비 등을 지원한 뒤 특정 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복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의협은 지역∙필수의료의 열악한 환경과 처우 개선 없이는 “실효성이 없다”며 강제 복무는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윤석열정부에서 벌어졌던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일방적인 정책 추진으로 인한 ‘불통’으로 갈등이 벌어졌던 만큼 무엇보다 폭넓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우선 국민 참여 의료혁신 위원회를 통해 소통을 확대하면서 의료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정 장관은 전날 “국민과 의료계가 공감하는 의료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국민 참여 의료혁신위원회’를 조속히 신설해 당면한 지역·필수 의료 위기를 극복하고 의료 체계의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겠다”며 “새로운 의료개혁 추진 체계 하에서 소아·분만 등 분야에서의 의료 공백을 해소하고 응급실 미수용 최소화, 수도권 원정진료 개선 등 실질적 해법 모색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지역·필수의료의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인 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법도 지속해서 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개혁과 더불어 나날이 누적되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여야 하는 것도 과제다.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재정운영위원회 재정전망’에 따르면 내년도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4조1238억원이 적자로 전망된다. 오는 2028년 준비금은 15조8020억원으로 예상된다. 기획재정부는 이미 건강보험 재정이 내년에 적자로 전환하고, 현 상태가 유지될 경우 2033년에는 기금이 완전히 고갈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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