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 투자
전동화 차종 매출도 실적 견인
현대·기아 합산매출액 72.5%↑
美 고관세 부과 등 통상 악화
급성장 中 경쟁업체 추격 위협
鄭 “공급망 다각화로 위기 돌파”

정의선(사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4일로 취임 5주년을 맞는다. 정 회장이 키를 잡고 세계 자동차 시장을 누빈 지난 5년간 현대차그룹은 매출과 위상, 기술 수준이 향상되며 ‘글로벌 탑티어(최상위)’ 기업으로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회장은 전 세계 완성차 업계가 전동화를 본격화하기 전 앞서서 전기차(EV)를 비롯해 하이브리드(HEV)?수소전기(FCEV)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 투자하며 전동화 자동차 시장을 주도했다. 그 결과 전동화 차종이 현대차그룹의 실적을 견인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정 회장이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의 고관세 부담과 중국 경쟁업체들의 급성장 등 거센 파고가 잇달아 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더 공격적인 투자와 품질 경쟁력 강화, 공급망 다각화 등으로 위기를 넘어서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13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합산 매출액은 2019년 163조8924억원에서 2024년 282조6800억원으로 72.5% 늘었다. 같은 기간 합산 영업이익은 5조6152억원에서 26조9067억원으로 380%나 뛰었다.
매출 규모로 2019년 전 세계 완성차 업계 5위였던 현대차는 2022년 3위로 올라섰고 이후 일본 도요타, 독일 폴크스바겐과 함께 ‘빅3’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 트럼프 정부가 촉발한 고관세의 여파 속에서도 현대차?기아는 올 상반기 13조86억원의 합산 영업이익을 내며 반기 기준 처음으로 글로벌 2위에 올라섰다. 영업이익률은 8.7%로, 경쟁사인 폴크스바겐(4.2%)의 2배를 넘었다.
현대차는 한 수 앞을 미리 내다본 정 회장의 경영전략이 주효했다고 자평했다. 제네시스를 필두로 한 고부가가치 차종 판매 확대와 발빠른 전동화 전환이 대표적이다. 제네시스는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로 정 회장이 브랜드 출범 전 과정을 진두지휘하며 탄생했다. 제네시스 판매량은 2019년 7만7135대에서 2024년 22만9532대로 3배가량 증가했다.
정 회장은 전기차 개발이 한창이던 2018년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우리가 ‘패스트 팔로어’였지만 전기차 시대는 모든 업체가 공평하게 똑같은 출발선상에 서 있다”며 “경쟁업체를 뛰어넘는 성능과 가치로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가 2019년 24종이던 친환경차 모델을 현재 45종으로 늘린 결과 친환경차 판매량은 같은 기간 37만여대에서 141만여대로 4배가량 늘었다.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가 개발되면서 이에 기반한 아이오닉5, 아이오닉6, EV9 등은 ‘세계 올해의 자동차’에 연이어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정 회장은 로봇, 수소, AAM(미래항공교통) 등 신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는 2018년 로보틱스랩을 신설한 데 이어 2021년 로봇 전문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정 회장은 인수 당시 사재 249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또한 수소 생산부터 저장, 운송, 활용에 이르기까지 밸류체인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수소 브랜드이자 비즈니스 플랫폼인 ‘HTWO’도 출범시켰다. 정 회장의 경영철학 중 하나인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삶의 공간’이라는 신념하에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기술 상용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까지 매출, 영업이익, 기술 확보 등에서 정점을 찍었지만 미국의 고관세를 비롯한 악화된 통상 여건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경쟁국인 일본과 유럽은 미국과 협상을 통해 관세율을 15%로 낮췄지만 한국은 후속 협의가 지연되면서 여전히 25%의 관세를 떠안고 있다. 현대차?기아의 상반기 영업이익 감소액은 1조원을 넘었다. 내수 시장이 큰 안방 무대를 기반으로 급성장한 중국 경쟁업체들의 추격도 위협적이다.
현대차는 “공급망 다각화와 탄력적인 생산·판매 등 시장별로 최적화된 전략을 통해 미국의 관세 조치 등 각국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인해 재편되고 있는 세계 통상 질서에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진행한 ‘2025 CEO 인베스터 데이’에선 향후 5년(2026∼2030년)간 연구개발(R&D), 설비투자 등에 77조3000억원을 투자하겠다며 기존보다 투자 액수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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