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지역 확대·보유세 부담 강화 유력
‘공급대책’ 우려 못 지우면 백약이 무효

이재명정부가 출범 넉 달 만에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1차 대책이었던 6·27 대출 규제로 한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집값이 지난달부터 서울 등 수도권 일부에서 다시 가파르게 오른 탓이다. 추석 연휴 직후인 다음 주 중 추가 대책이 발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수도권에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는 등 초강력 수요 억제 방안을 담은 6·27 대책은 문재인정부의 모든 대출 규제를 합한 것보다 더 강력하다는 평가가 나왔으나 약발은 두 달도 채 못 갔다. 공공 주도의 공급 확대를 앞세운 두 번째 9·7 대책은 도리어 서울 아파트값 상승 폭을 키우는 빌미를 제공했다. 또다시 시장의 외면으로 단발성에 그치거나 되레 이른바 ‘패닉 바잉’(공황 매수)을 부추겨서는 곤란하다.
이번 부동산 안정화 대책으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차주의 연간 소득 대비 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이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 규제를 강화하고, 가격 상승률 확대 폭이 큰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나 조정대상 지역으로 추가 지정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다만 이미 수도권에선 주담대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된 만큼 대출 추가 규제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젊은 실수요층이나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적은 서민은 앞서 주담대 한도 제한으로 타격을 받은 데 이어 DSR 규제마저 강화된다면 사실상 ‘내 집 마련’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릴 공산이 크다.
지금과 같은 주택가격 상승기에 규제지역 확대는 실수요자의 불안 심리를 키워 패닉 바잉을 유발할 우려도 만만치 않다. 부동산원 주간 동향 기준 최근 3개월간(6월 30일∼9월 29일)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서울 성동구(5.01%), 경기 성남 분당구(4.99%), 경기 과천시(3.81%), 서울 광진구(3.57%), 서울 마포구(3.17%) 순으로 높았다. 신규 수요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인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대신 비강남 한강 벨트와 경기도 일부로 쏠린 결과다. 이 같은 풍선효과가 나타난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추가 지정한다고 해도 패닉 바잉 수요를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결과만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수요자들 사이에서 ‘추가 규제 도입 전 집을 사야 한다’는 심리가 팽배해진 상황이다.
정부는 더불어 공시가격 현실화율이나 공정시장가액비율(공정비율)을 상향 조정해 보유세 부담을 키우는 대책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간 이재명 대통령은 수차례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고 했는데, 보유세 부담이 커진다면 스스로 정책 신뢰를 훼손하는 일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이전 정부에서 공정비율을 80%에서 60%로 보유세 부담을 덜어준 것을 원상복구 하면서 이번에도 ‘과세 정상화’라고 우길 텐가? 보유세 인상은 전·월세를 밀어올려 매매 수요를 자극할 수 있지만,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쏠림을 부추겨 외려 집값 폭등을 불러왔던 ‘문재인정부 시즌2’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집값 안정의 근본 해법은 공급이다.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수요가 몰리는 곳에 양질의 주택을 중장기적으로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정책 기조를 분명히 해야 실수요층도 진득이 기다릴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최근 수도권 집값 상승은 9·7 공급 대책에 실망한 수요자들 사이에서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는 불안 심리가 커진 탓 아닌가. 2030년까지 수도권에 신규 주택 135만 가구를 착공하겠다면서도 전체 주택 공급의 80%를 담당하는 민간이 아니라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맡겨놓은 데다, 신규 택지가 거의 없는 서울에서 어떻게 새집을 내놓을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니 ‘공급 부족’ 우려를 잠재우지 못한 게 아닌가. 28차례 대책을 발표했지만 수급 안정보단 규제 강화에 중점을 둬 백약이 무효였던 문재인정부의 전철을 밟아서는 결코 안 된다.
집값 상승의 발원지인 서울은 올해 아파트 분양 물량이 수요에 턱없이 부족한 2만 가구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공급 물량의 88%를 차지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공사비 갈등이나 각종 규제로 지연된 탓이다. 마침 지난달 서울시는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속도를 끌어올려 구역 지정부터 입주까지 기간을 기존 18.5년에서 12년으로 최대 6.5년 단축해 2031년까지 주택 31만호를 착공하겠다고 밝혔다. 재건축·재개발에 속도가 붙는다면 시장 불안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는 초과이익환수제, 공공기여 부담 등 재건축 규제 전반을 과감히 푸는 방안부터 검토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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