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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LPGA 투어 직행’ 황유민 우승 축하 와인은 샴페인 아니라 프로세코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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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08 13:01:07 수정 : 2025-10-08 13:00:59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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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선수로 출전 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서 ‘깜짝 우승’/퀄러파잉 시리즈 최종전 거치지 않고 미국 무대 직행/우승 순간 동료들 달려 나와 프로세코 빌라 산디로 축하

 

우승 뒤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 프로세코 빌라 산디를 마시는 황유민. AFP연합뉴스

추석 전날이던 5일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섬 에바비치의 호아칼레이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후원사 초청 선수로 출전한 ‘돌격 대장’ 황유민(22·롯데)은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1타차 공동 2위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했지만 4번 홀(파3) 버디를 5번 홀(파5) 보기로 맞바꾸며 좀처럼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해 우승과 거리가 멀어 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13번 홀(파4) 버디를 잡은 뒤 놀라운 ‘마법’이 펼쳐졌습니다. 황유민은 15~18번 홀 막판 4개 홀에서 연속으로 신들린 버디쇼를 펼쳤고 결국 대선배인 세계랭킹 9위 김효주(29·롯데)를 한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립니다. 그는 키 163cm의 여리여리한 체격과 앳된 외모와 달리, 폭발적인 장타를 앞세운 공격적인 플레이로 ‘돌격 대장’이란 별명을 얻었는데 이를 입증한 순간입니다.

 

빌라 산디와 물로 축하셰례를 받는 황유민. AFP연합뉴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뛰는 황유민은 이번 시즌을 마치고 퀄러파잉 시리즈 최종전에 출전해 내년 미국 무대 진출을 타진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 대회 우승으로 LPGA 투어 직행 티켓을 따냈기 때문입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동료 선수들은 18번 홀 그린으로 달려 나와 황유민에게 스파클링 와인 세례를 퍼붓습니다. 황유민도 자신이 이룬 놀라운 업적이 기쁘고 대견했나 봅니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듯, 와인을 병째로 넘겨받아 벌컥벌컥 마시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황유민이 우승 축하 와인으로 마신 와인은 샴페인이 아니라 이탈리아 베네토 등에서 생산되는 이탈리아 대표 스파클링 와인 프로세코(Prosecco) 랍니다. 바로 프로세코를 대표하는 생산자 빌라 산디(Villa Sandi)의 일 프레스코 트레비소 브뤼(Il Fresco Treviso Brut)입니다. 

 

우승 트로피를 들고 손가락으로 첫승을 표시하는 황유민. AFP연합뉴스

◆미국 1위 스파클링 와인 프로세코

 

대회는 이탈리아가 아닌 미국에서 열렸지만 황유민의 우승 와인으로 프로세코가 선택된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프로세코가 가장 대중적인 스파클링 와인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세코 DOC(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원산지통제명칭) 협회 수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은 프로세코 전체 수출의 약 23%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입니다. 또 프로세코는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중 87%(금액기준)을 차지합니다.

 

금액 기준으로는 샴페인이 프로세코를 아직 앞서지만 물량 기준은 이미 수년전부터 프로세코가 앞서고 있습니다. 2025년도 비슷합니다. 10월 5~6일 시카고에서 열린 이탈리아 와인 엑스포 ‘비니탈리(Vinitaly) USA’를 앞두고 이탈리와인협회(UIV)와 비니탈리가 공동 설립한 Uiv–Vinitaly 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7월 미국에서 판매된 스파클링 와인의 30%(물량기준)는 프로세코로 프랑스 샴페인(28%)을 넘어섰습니다.

 

빌라 산디 일 프레스코 트레비소 브뤼.  최현태 기자

2024년 프로세코 판매 금액은 미국 시장에서 5억3100만달러(약 7500억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 7년간 178% 성장한 수치입니다. 미국은 프로세코 최대 수입국으로 2024년 기준(1~10월) 약 1억1760만병을 수입했습니다. 프로세코 DOC 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판매량은 6억6000만병이며, 추정 소비자 매출액은 36억유로(약 5조9389원)에 달합니다. 세계 최대 이탈리아 와인 엑스포인 비니탈리는 매년 4월초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개최되며, 지난해부터 ‘비니탈리 USA’가 시카고에서 시작됐습니다. 올해는 250개가 넘는 이탈리아 와이너리들이 참여했습니다.

 

빌라 산디 프로세코. 인스타그램

Uiv–Vinitaly 연구소는 이런 미국내 프로세코 인기를 MZ 세대와 여성 소비자가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1980년 이후 태어난 MZ 세대는 미국 내 프로세코 소비자의 27%를 차지하고 여성은 전체 구매자의 10명 중 6명에 해당합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프로세코는 무엇보다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미국내 평균 소비자 가격이 약 19.5달러(약 2만7600원)로 합리적입니다. 또 가볍고 청량한 음료를 선호하는 트렌드 덕분에 프로세코를 포함한 스파클링 와인 수요가 급증했고, 특히 칵테일이나 과일주스 믹스 등 RTD(Ready-To-Drink) 형태로 소비되면서 인기가 더욱 확산됐습니다. 한국 시장도 비슷합니다.

 

빌라 산디로 축하셰례를 받는 황유민. AFP연합뉴스
트레비소에서 생산된 빌라 산디 프로세코라는 정보가 적힌 와인 병 백레이블 확대. AFP연합뉴스

◆황유민 우승 와인은 ‘프로세코’

 

많은 언론 매체가 황유민 우승 순간을 전하며 샴페인 세례를 받고, 샴페인을 마신다고 보도했는데 사실 황유민 우승 축하 와인은 샴페인이 아니라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을 대표하는 프로세코입니다. 프랑스 상파뉴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만 샴페인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프로세코는 이탈리아 북동부의 돌로미티와 아드리아해 사이에 있는 베네토(Veneto)와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Friuli Venezia Giulia)의 9개 마을에서만 생산됩니다. 샴페인과 프로세코는 양조 방식, 품종이 크게 다릅니다. 샴페인은 샤르도네, 피노누아, 피니뮈니에 품종으로 만들고, 프로세코는 이탈리아 토착 품종인 글레라 품종(최소 85%)을 위주로 만듭니다. 또 샴페인은 최소 15개월 이상 2차 병발효와 병숙성을 거치기 때문에 복합미가 뛰어납니다. 이를 전통 방식(Traditional Method)로 부릅니다. 반면 프로세코는 짧은 기간에 스틸 탱크에서 발효와 숙성을 한번에 끝내기 때문에 가볍고 과일향이 신선한 캐릭터를 지닙니다. 보통 샤르마(Charmat) 방식이라 부릅니다. 물론 프로세코 생산자들도 샴페인처럼 전통방식 스파클링도 많이 만듭니다. 하지만 이는 프로세코로 부를 수 없고, 전통방식 스파클링 와인이란 뜻으로 보통 ‘비노 스푸만테 메쏘드 클라시코(Vino Spumante Metodo Classico)’로 표기합니다.

 

빌라 산디 일 프레스코 트레비소 브뤼. 인스타그램

▶빌라 산디 일 프레스코 트레비소 브뤼

 

빌라 산디 프로세코는 비노비노에서 수입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도 소비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황유민이 마신 프로세코는 빌라 산디 일 프레스코 트레비소 브뤼(Villa Sandi Il Fresco Treviso Brut) 입니다. 트레비소는 프로세코 대표 산지이고, 브뤼(6~12g/L)는 당도를 뜻합니다. ‘일 프레스코’는 와인 이름으로, ‘신선하다’는 뜻입니다. 가볍게 즐기는 기본급 프로세코의 의미를 잘 담았습니다. 글레라 100%로 만들며 레몬, 사과, 배, 복숭아로 시작해 온도가 오르면서 멜론이 더해지고 아카시아 같은 흰꽃향도 피어오릅니다. 생동감 넘치는 산도와 미네랄도 잘 어우러지며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상쾌한 여운을 남깁니다. 잔당은 12g/L이며 식전주로 탁월하고 짭조름한 전채 요리, 찐 조개류와 잘 어울립니다.

 

빌라 산디 발도비아데네 라 리베따 120. 최현태 기자

▶빌라 산디 발도비아데네 라 리베따 120

 

빌라 산디 발도비아데네 라 리베따 120(Villa Sandi Valdobbiadene La Rivetta 120)은 글레라 100%입니다. 와인 이름에 붙은 ‘120’은 4개월, 120일 동안 효모 앙금과 함께 숙성한다는 뜻입니다. 프로세코는 보통 2차 발효를 밀폐된 압력 탱크(autoclave)에서 3~6주 정도 진행하는데 라 리베따 120은 4배 가까이 길게 숙성합니다. 효모 앙금과 오래 숙성하면 샴페인처럼 깊은 풍미를 지니게 됩니다. 사과, 배의 과일향과 레몬 제스트, 등나무나 아카시아꽃 향 잘 어우러지고 굉장히 선명한 산도와 깔끔한 구조가 돋보입니다. 잔당은 엑스트라 브뤼(Extra Brut)인 3g/L로 매우 드라이한 스타일이지만 풍성한 과일향이 넘쳐 달콤하게 느껴지게 만듭니다. 피니시에서도 잔잔한 과일향과 미네랄이 길게 이어집니다. 특히 오랜 효모 앙금 숙성 덕분에 일반 프로세코보다 복합미와 깊이감이 돋보입니다.

 

빌라 산디 포도밭. 인스타그램

발도비아데네는 트레비소 안에서도 DOCG(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e Garantita, 원산지통제·보증명칭)를 받은 프리미엄 프로세코 산지입니다. 정식 명칭은 코넬리아노 발도비아데네 프로세코 수페리오레 DOCG(Conegliano Valdobbiadene Prosecco Superiore DOCG)이며 생산자에 따라서 발도비아데네 마을만 표기하기도 합니다.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언덕 경사면에 위치해 뛰어난 글레라가 생산됩니다. 석회질 토양에 양토(loam)가 섞여 있고 일부는 석회질 점토(calcareous-clayey) 토양을 지녀 글레라에 미네랄과 볼륨감을 선사합니다. 풍미 있는 전채 요리, 생선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빌라 산디 발도비아데네 카르티쩨. 최현태 기자

▶빌라 산디 발도비아데네 카르티쩨

 

빌라 산디 발도비아데네 수페리오레 디 카르티쩨 비냐 라 리베타(Villa Sandi Valdobbiadene Superiore di Cartizze Vigna La Rivetta)는 글레라 100%로 빌라 산디의 플래그십 프로세코입니다. 그린애플, 황금사과, 흰복숭아로 시작해 시트러스 제스트가 더해지고 인동꽃, 아카시아꽃향이 배경으로 깔리면서 허브와 카다멈, 정향의 향신료가 스파이스한 힌트를 선사합니다. 부드러운 버블, 생기발랄한 산도, 깔끔하고 우아한 미네랄이 완벽한 조화를 보여줍니다. 과일향과 꽃향이 긴 여운을 남기는 이 프로세코는 전통 카르티쩨가 지닌 잔당감을 조금 줄여 드라이하고 정밀한 표현을 강조한 버전으로 평가됩니다. 마리네이드한 농어, 연어 타르타르 등 생선류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카르티체 DOCG는 발도비아데네의 언덕에 있는 107ha 규모 특급 포도밭으로 ‘프로세코의 그랑크뤼’로 불릴 정도로 최고의 프로세코가 생산됩니다. 빌라 산디의 싱글 빈야드 비냐 라 리베따(Vigna La Rivetta)는 카르티쩨 중심부에 있습니다. 온화한 미기후와 고대 지층(석회질 사암 및 점토)이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뤄 진정한 ‘크뤼(Cru)’ 포도밭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빌라 산디 발도비아데네 리베 디 산 피에트로 디 바르보짜. 인스타그램

▶빌라 산디 발도비아데네 리베 디 산 피에트로 디 바르보짜

 

빌라 산디 발도비아데네 리베 디 산 피에트로 디 바르보짜(Villa Sandi Valdobbiadene Rive di San Pietro di Barbozza)는 글레라 100%입니다. 레몬, 감귤, 오렌지, 잘 익은 사과, 흰복숭아로 시작해 멜론, 바나나가 더해지고 인동초, 아카시아꽃과 타임의 허브향도 은은하게 피어납니다. 날생선 요리, 조개 샐러드, 핑거 푸드와 잘 어울립니다. 잔당은 3g/L의 엑스트라 브뤼입니다.

 

빌라 산디 발도비아데네 엑스트라 드라이. 인스타그램

▶빌라 산디 발도비아데네 엑스트라 드라이

 

빌라 산디 발도비아데네 엑스트라 드라이(Villa Sandi Prosecco di Valdobbiadene Extra Dry)는 글레라 100% 입니다. 감귤, 복숭아로 시작해 잘 익은 골든 애플향이 도드라지고 멜론, 아카시아 등의 꽃향기, 생강이 살짝 어우러집니다. 잔당은 17g/L으로 비교적 높아 온도가 오르면 달콤한 꿀향도 잘 느껴집니다. 가벼운 애피타이저, 섬세한 허브로 마리네이드한 생선 요리 등 해산물, 허브를 곁들인 파스타 요리, 신선한 치즈와 잘 어울립니다.

 

빌라 산디 오너 지안카르롤 모레티 플레카토(오른쪽 두 번때) 패밀리. 홈페이지

◆1920년대부터 시작된 와이너리 역사

 

빌라 산디 브랜드가 완성된 것은 1970년대이지만 역사는 1920년대 초로 올라갑니다. 마리오 폴레가토(Mario Polegato)가 발도비아데네에 포도밭을 구입하면서 시작됐으니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마리오 아들 디보(Divo)는 아말리아 모레티(Amalia Moretti)와 결혼해 가업을 이어갑니다. 1970년대까지 지역 소비용 와인을 만들던 빌라 산디는 디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두 아들 마리오(Mario)와 지안카르롤 모레티 플레카토(Giancarlo Moretti Polegato)가 와인 사업에 합류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마리오는 와인 양조학자, 지안카를로는 재무와 경영을 담당합니다.

 

빌라 산디 전경. 인스타그램
빌라 산디 오페레. 인스타그램

어머니 아말리아와 회사를 이끌어 가던 형제는 1622년 지어진 팔라디오 양식의 건물 빌라 산디(Villa Sandi)를 1970년대 후반 매입해 복원하면서 비로소 빌라 산디라는 와이너리 이름을 얻게 됩니다. 1980년대 초 프로세코 해외 수출에 앞장서던 빌라 산디는 상파뉴를 여행한 뒤 빌라 산디 복원 과정에서 발견된 지하 갤러리를 활용해 전통 방식(Classic Method)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어 숙성하기로 결정합니다. 바로 오페레(Opere) 브랜드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즉시 성공을 거뒀고 ‘이탈리아 전통 방식 스파클링 와인’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지안카를로는 아내 아우구스타(Augusta)와 함께 빌라 산디 와인의 품질을 세계에 알려 트레비소 생산자 중 프로세코 수출 부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빌라 산디 지하셀러. 인스타그램
빌라 산디 카르티쩨 라 리베따. 인스타그램

또 ‘프로세코 그랑크뤼’로 불리는 카르티쩨에서 생산하는 카르티쩨 라 리베타(Cartizze La Rivetta)가 2010년 ‘이탈리아 미슐랭 가이드’ 감베로 로쏘(Gambero Rosso)에서 최고상인 트리 비키에리(Tre Bicchieri)를 받았고 12년 연속 수상을 이어갑니다. 감베로 로쏘는 와인잔 1~3개로 와인을 평가합니다. 현재는 4세대인 지안카를로의 자녀 디바(Diva)와 레오나르도(Leonardo)가 와인 사업에 뛰어 들었습니다. 빌라 산디는 멀리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면서 아름다운 보틀 디자인으로도 유명합니다. 매년 1700만병을 생산하며 절반 이상이 독일, 영국, 미국 등으로 수출합니다.

 

빌라 산디 전경. 인스타램
빌라 산디 전경. 인스타램

◆팔라디오 양식 걸작 빌라 산디

 

빌라 산디 건물은 과거 트레비소와 베네치아 경계 지역에 있어 ‘트레비소(Treviso)의 변방’이란 뜻으로 불리던 마르카 트레비지아나(Marca Trevigiana) 언덕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팔라디오 양식의 걸작으로 꼽히며 완벽한 대칭을 지닌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합니다. 이는 16세기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 1508-1580)가 베네토 지방에 유행시켰던 건축 스타일입니다. 지하에서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의 전투 사령부로 사용됐던 터널들이 발견됐으며 현재 와이너리 셀러로 사용됩니다. 빌라 산디 입구에는 베네치아의 유명 조각가 오라치오 마리날리(Orazio Marinali)의 섬세한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고 그의 작품은 지붕 박공(gable)과 뒤뜰에도 장식돼 있습니다. 건물의 중앙부는 4개의 이오니아식 기둥(Ionian columns)이 받치고 있는 웅장한 프로나오스(pronaos·현관 전면 주랑)가 자리하고 있고 양쪽으로는 우아한 바르케세(Barchesse·날개 건물)와 작은 예배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빌라 산디 조각 작품. 인스타그램
빌라 산디 내부. 인스타그램
빌라 산디 호텔 로칸다 산디. 인스타그램

빌라 산디 방들은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공간입니다. 파스텔 색상, 석고 장식(stuccoes), 저부조(bass-reliefs)가 섬세하게 어우러지고 화려한 무라노(Murano) 유리 샹들리에가 천장을 장식합니다. 이런 아름다움에 반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 화가 스키아보니(Schiavoni), 작가 카치아니가(Caccianiga)와 코르소(Corso) 등이 빌라 산디를 방문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현재 빌라 산디는 소믈리에 교육, 와인 강연 및 세미나,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테이스팅 행사장으로 사용됩니다. 방문객들은 지하 셀러, 아름다운 빌라 건축물, 주변 정원을 투어할 수 있습니다. 또 빌라 산디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레스토랑을 갖춘 와이너리 전용 호텔 로칸다 산디(Locanda Sandi)가 있어 여유있게 포도밭을 거닐며 와인과 미식도 즐기는 멋진 휴가도 보낼 수 있습니다.

 

글레라. 프로세코DOC협회

◆프로세코 만드는 ‘황금포도’ 글레라

 

이탈리아 와인업계에는 ‘좋은 프로세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탄생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포도 품종과 떼루아가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프로세코는 이탈리아 북동부가 원산지로 로마시대부터 재배한 글레라(Glera) 품종을 최소 85% 사용해 만듭니다. 여기에 베르디소(Verdiso), 비앙게타(Bianchetta), 트레비아나(Trevigiana), 페레라(Perera), 글레라 룬가(Glera Lunga), 샤르도네, 피노 비앙코, 피노 그리지오, 피노네로(피노누아) 등 다른 품종을 최대 15%까지 블렌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급 프로세코는 대부분 글레라 100%를 사용합니다. 프로세코 생산지역은 2022년 기준 글레라 비중이 85.24%로 압도적이고 샤르도네(6.23%), 피노그리(3.93%), 피노누아(2.18%), 피노블랑(1.3%) 순으로 소량 생산합니다.

 

프로세코 과일향과 꽃향. 프로세코DOC협회
프로세코 과일향과 꽃향. 프로세코DOC협회

글레라로 만든 프로세코는 밝은 볏짚색을 띱니다. 신선하고 향기로운 사과, 복숭아, 배, 자몽 의 과일향과 산도 좋은 감귤의 시트러스, 흰꽃향이 특징입니다. 잘 익은 사과향이 나지만 샴페인처럼 지나치게 익은, 갈변된 듯한 사과향은 아닙니다. 또 적당한 당분, 생기발랄한 산도, 섬세한 향을 지닌 이상적인 스파클링 와인입니다. 시트러스가 중심을 잘 잡아줘 산뜻함이 끝까지 잘 유지되면서 크리미한 질감이 혀를 감싸며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잔향에서도 레몬 등 과실향이 오랫동안 산뜻하게 감도는데 뒤쪽에서 산도가 잘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프로세코 당도 구분. 프로세코DOC협회

◆프로세코 로제

 

프로세코 로제는 주로 글레라와 피노네로를 블렌딩합니다. 글레라의 흰꽃, 사과, 시트러스에 피노네로의 라즈베리가 더해지며 좀 더 묵직하고 향이 풍부한 프로세코를 맛볼 수 있습니다. 아카시아, 등나무, 제비꽃, 이국적인 과일향도 피어납니다. 병에 ‘밀레지마토(Millesimato)’로 적힌 것은 그 해 생산된 포도를 위주로 만들며 최소 85% 이상 들어간 포도의 수확연도를 표시해야 합니다.

 

◆프로세코 당도

 

프로세코의 당도는 샴페인과 비슷합니다. 제로에서 스위트까지 다양합니다. 브뤼 나뚜르(Brut Nature) 0~3g, 엑스트라 브뤼(Extra Brut) 3~6g, 브뤼(Brut) 6~12g, 엑스트라 드라이(Extra Dry) 12~17g, 드라이(Dry) 17∼32, 드미섹(Demi Sec) 32∼50g입니다. 보통 브뤼나, 엑스트라 드라이가 가장 인기가 높습니다.

 

프로세코 와인. 최현태 기자

◆전통방식 vs 마르띠노띠방식

 

샴페인은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나 오크통에서 1차 발효가 끝난 뒤 최소 15개월 2차 병발효와 병숙성을 거칩니다. 하지만 프로세코는 보통 스틸 탱크에서 발효와 숙성을 끝내는 샤르마(Charmat) 방식으로 만듭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마르띠노띠(Martinotti) 방식, 메소드 이탈리아노(Method Italiano)라 부르며 19세기말부터 이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전통적인 양조기법입니다. 먼저 스틸 탱크에서 신선한 포도즙(머스트)을 섭씨 15~18도의 낮은 온도에서 2~4주 1차 발효해 알코올, 맛, 향을 추출합니다. 이어 밀폐된 압력 탱크(autoclave)에 1차 발효한 와인과 당분, 효모를 넣어 2차 발효를 진행합니다. 이때 버블이 와인 녹아들고 발효 중단 시기에 따라 프로세코의 당도도 결정됩니다. 샴페인은 병에서 2차 발효한 뒤 그대로 병에서 최소 15개월에서 많게는 6년 이상 숙성하지만 샤르마 방식 프로세코는 1∼2개월이면 양조가 끝나고 길어야 6개월 정도입니다. 대량생산하며 양조기간이 짧기 때문에 생산 단가가 샴페인보다 훨씬 적게 들어갑니다.

 

프로세코 음식 페어링. 프로세코DOC협회

샴페인은 2차 병발효때 발효를 마친 효모를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함께 오랫동안 병숙성(쉬르리·Surlies)하기 때문에 잘 익은 사과향과 빵냄새 같은 효모 풍미가 풍부하게 녹아들어 복합미가 뛰어납니다. 반면 발효와 숙성기간이 짧은 프로세코는 산뜻한 아로마와 신선한 과일향, 꽃향이 두드러집니다. 프로세코는 숙성된 향보다 신선한 과일향을 강조하는데 글레라를 탱크에서 발효하면 이런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프로세코가 탱크 방식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글레라 뿐 아니라 모스카토, 말바지아 등 아로마가 뛰어난 품종은 빠르게 양조과정을 진행해야 산뜻한 아로마를 고스란히 보존한 완벽한 와인을 얻을 수 있습니다. 2차 발효하는 오토 클레이브는 커다란 탱크지만 작은 발효조처럼 아주 빠르게 양조과정이 진행돼 1∼2개월만 지나도 양조가 끝나 병입할 수 있습니다.

 

빌라 산디 지하셀러. 인스타그램

프로세코 DOC 규정에 따르면 2차 발효 기간은 최소 1개월, 로제 프로세코는 최소 2개월을 지켜야합니다. 하지만 생산자에 따라 훨씬 더 오래 숙성하는 곳도 있습니다. 또 1차 발효를 건너뛰고 오토 클레이브에서 한번에 발효와 숙성을 끝내는 방식도 있습니다. 대신 두달 이상 길게 발효와 숙성을 합니다. 빌라 산디(Villa Sandi) 프로세코가 대표적으로 수확한 뒤 바로 즙을 짜 차갑게 만든 머스트로 한번에 발효와 숙성을 끝냅니다. 좀 더 산뜻하고 꽃향이 도드라지고 아주 섬세하고 우아한 향도 느껴집니다. 잘 익은 사과, 열대과일, 바닐라, 꽃향도 피어나 샴페인 못지않은 풍미를 줍니다. 굳이 가격대가 부담스러운 샴페인만 고집할 필요가 없는 이유랍니다.

 

프로세코 생산지역. 프로세코DOC협회
프로세코 생산지역. 프로세코DOC협회

◆프로세코 생산지역

 

프로세코는 이탈리아 북동부의 돌로미티와 아드리아해 사이에 있는 베네토(Veneto)와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Friuli Venezia Giulia) 9개 마을에서만 생산됩니다. 기후, 토양, 와인메이킹 전통이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프로세코가 탄생했습니다. 프로세코 DOC(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원산지통제명칭)가 적용되는 곳은 베네토 5개 마을(Treviso, Belluno, Padua, Venice, Vicenza),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4개 마을(Trieste, Gorizia, Pordenone, Udine) 입니다. 프로세코 DOC에선 트레비소와 트리에스테가 가장 중요한 생산지로 프로세코의 역사와 함께 합니다. 수확·와인 제조·병입이 모두 트레비소와 트리에스테에서 이루어지는 경우 ‘Prosecco DOC Treviso’ ‘Prosecco DOC Trieste’라는 명칭을 병 레이블에 표기할 수 있습니다. 특히 트리에스테에는 ‘프로세코’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지금의 프로세코 명칭은 바로 이 마을에서 시작됐답니다.

 

카르티쩨 위치. 와인폴리

◆프로세코 ‘그랑크뤼 마을’ 카르티제

 

고급 프로세코가 생산되는 프로세코 DOCG(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e Garantita, 원산지통제·보증명칭)는 트레비소 중심에 있는 코넬리아노-발도비아데네(Conegliano-Valdobbiadene)와 아솔로(Asolo) 두 곳입니다. 차로 40분가량 떨어진 코넬리아노와 발도비아데네는 DOCG를 별도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발도비아데네에는 ‘그랑크뤼’로 부르는 최고의 포도밭이 있습니다. 바로 ‘카르티체(Cartizze)’로 병 레이블에 따로 표시합니다. 발도비아네데(Valdobbiadene) 마을 내 산토 스테파노(Santo Stefano)와 산 피에트로 디 바르보차(S. Pietro di Barbozza) 지구 사이 사이에 있는 카르티제 포도밭은 총 107ha이며 해를 잘 받는 남향 경사면에 조성돼 있습니다. 수백만년된 해양토로 조개류 화석이 섞인 쵸크(Chalk) 토양 입니다. 쵸크 토양은 상파뉴 그랑크뤼 마을이 몰려있는 샤르도네 생산지 꼬뜨 데 블랑(Cote des Blancs)과 같은 토양으로 일반 라임스톤 토양보다 산도가 훨씬 더 생기발랄하고 높으며 풍부한 미네랄을 지닌 포도가 생산됩니다. 수확시기도 다른 곳보다 2주 정도 늦으며 아주 풍성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구조감이 특징인 프로세코가 만들어 집니다.

 

프로세코 생산현황(2022년 기준). 프로세코DOCg협회

카르티제 아래 등급은 프로세코 슈페리오레 리베(Superiore Rive)입니다. 아주 가파른 경사면 포도밭 43곳에 생산되는 와인들은 별개의 DOCG로 정해 관리합니다. 프로세코 DOCG 마을에서 만드는 와인은 착즙량이 100kg 당 70ℓ로 일반 프로세코 보다 양이 적습니다. 그만큼 품질이 좋은 포도즙만 사용합니다. 프로세코 DOC와 DOCG는 병목에 정부 인증 마크 라벨·인증 씰이 붙어있고 DOC는 푸른색, DOCG는 분홍색으로 구분합니다.

 

2022년 현재 프로세코 포도밭은 2만8100ha, 포도재배농가는 1만398개, 와이너리는 1173개, 2차발효와 보틀링까지 모두 커버하는 프로세코 하우스는 364개입니다. 2022년 기준 한행 생산량은 6억3800만병, 금액기준 33억5000만유로이며 생산량의 81%(5억1680만병·27억유로)를 수출합니다. 그만큼 프로세코가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높다는 뜻으로 최대 수출국은 미국이며 영국, 독일, 프랑스 순으로 수출됩니다. 전체 수출 국가는 160개국이 넘습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부르고뉴와인 마스터 프로그램,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한국소믈리에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독일 ProWein, 이탈리아 Vinitaly 등 다양한 와인 엑스포를 취재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미국,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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