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막말한 김미나, “평생 못 잊을 모욕”이라며 일갈한 판사
“한마디 말이 사람을 이롭게 하는 가치는 천금과 같고, 한마디 말이 사람을 해롭게 하는 아픔은 칼에 베이는 것과 같음에도, 피고는 원고들에 대하여 평생 잊지 못할 모욕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원고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크나큰 정신적 고통을 야기하였다.”

이 글은 마치 친구에게 하는 조언 같지만, 사실은 민사 사건을 담당한 판사가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물어 피고를 엄히 꾸짖는 판결문의 일부입니다.
이 사건 피고는 김미나 경남 창원시의원이고, 원고는 2022년 10월29일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들입니다.
이제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알 법도 할 텐데, 김 시의원은 이태원 참사 이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시체팔이 족속들”, “나라 구하다 죽었냐”는 등의 막말을 올렸던 인물입니다.
김 시의원의 이러한 막말들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습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들은 “공인으로서 자격이 없다”며 김 시의원을 모욕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김 시의원은 정치 생명이 걸린 형사 재판을 받기도 했는데, 징역 3개월의 선고유예형을 받으면서 의원직은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자 유가족들은 “김 시의원으로부터 끝내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면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형사에 이어 민사로도 김 시의원의 막말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죠.
위에 언급한 판결문이 바로 이 민사 재판에서 나왔던 내용입니다.
김 시의원이 어떤 막말을 했는지, 이에 대한 판사의 생각은 어떠했는지 판결문을 조금 더 들여다볼까요?
김 시의원은 2022년 11월23일 SNS에 유가족 기자회견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김 시의원: “애미라는 자가 말뽄새가 뭐 저런가. 지 새끼를 두 번 죽이는 저런 무지몽매한 애미가 다 있나. 자식팔아 한 몫 챙기자는 수작으로 보인다. 자식 앞세운 죄인이 양심이란 것이 있는가.”

이 글에 대한 판사의 판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판사: “그 전체적인 내용과 형식에 비춰 원고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 내지 모멸적·경멸적인 인신공격의 감정을 담은 혐오의 표현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리고 김 시의원은 2022년 12월12일 SNS에 또 글을 올렸습니다.
김 시의원: “꽃같이 젊디젊은 나이에 하늘로 간 영혼들을 두 번 죽이는 유족들. #우려먹기 장인들 #자식팔아 장사한단 소리 나온다 #제2의 세월호냐 #나라 구하다 죽었냐.”
이 글에 대한 판사: “마치 희생자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죽음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인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원고들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했다. 나아가 원고들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원고들의 기분을 다소 상하게 하는 부적절한 표현을 넘어 사회상규에 위배될 정도로 원고들에 대한 경멸적이고 모멸적인 인신공격을 했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뿐만 아니라 민사 재판 과정에서 김 시의원이 유가족 등 모욕 혐의로 조사를 받을 때 수사기관에 출석해 진술했던 발언도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그는 “이태원 참사의 책임은 첫 번째 그곳에 간 사망자 본인 탓이고, 두 번째는 그 시간까지 그곳에 있도록 한 부모인 유가족 탓이라고 생각해 SNS에 게시글을 작성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막말 논란이 불거진 후 줄곧 유가족은 김 시의원으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호소하는데, 이 진술을 들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원고와 피고 간 기나긴 공방 끝에 판사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판사: “피고는 자신의 SNS 계정에 게시글을 게시함으로써 원고들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하였다. 이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
판사는 김 시의원이 유가족들에게 1억4300여 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측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공인인 시의원으로서의 언행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판사: “피고는 불법행위 당시 창원시의회 의원으로 재직 중이었으므로(현재도 시의원이기는 합니다), 그 사회적 영향력과 화제성 측면에서 일반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이러한 점을 피고는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영향력으로 인해 피고의 이 사건에서 한 불법행위가 10·29이태원 참사에 대한 원고들의 진상규명이나 권리행사의 위축을 발생시켰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 사안을 제가 처음 취재할 때 김 시의원은 “(SNS에) 글을 올릴 땐 의원 신분인 걸 깜빡했다”고 해명했는데, 상황이 참으로 모순적이네요.
그런데 김 시의원은 1심 민사 재판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습니다.
◆159명 숨진 이태원 참사 3주기인데, 유족 고통은 현재진행형
10월29일은 이태원 참사 3주기입니다.
희생자 유가족들의 시계는 그날로 멈춰 있지만, 아픔과 슬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번 글은 1심 민사 재판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재판부에 호소했던 글을 다시 올리는 것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유가족들의 심정이 잘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고 이승연씨의 어머니 염미숙씨의 글입니다.
“우리 승연이는 결혼 5년 만에 시험관 시술 4번 끝에 와준 귀한 선물입니다. 1.28㎏ 미숙아로 힘겹게 40일을 인큐베이터에서 생과 사를 오가며 버텨냈고 누구보다 건강한 대한민국 청년으로 24년을 잘 살아왔습니다.
보물보다 더 귀한 승연이는 2022년 10월29일 친구와 이태원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아직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우리 가족은 아직도 그해에 멈춰 있는데…
김미나 말에 의하면 저는 어느 순간 시체팔이 엄마가 되어 있었고, 우리 가족은 자식 팔아 장사하는 가족이 되어 있었습니다.
왜 일면식도 없는 저런 사람 때문에 우리 귀한 승연이가, 제가, 우리 가족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끔찍한 말을 들어야 하고, 트라우마를 겪어야 하는 걸까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김미나도 자식을 둔 엄마이더군요. 어떻게 본인도 자식을 둔 엄마로서 저런 막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지 그것도 공인인 시의원이라는 지위의 사람이 악마 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저희 가족은 지금도 승연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미나는 악마 같은 막말을 쏟아내고도 사과 같지 않은 억지사과를 하며 우리 유가족들을 두 번씩이나 죽였습니다.
지금이라도 그에게 합당한 벌을 내려 주시지 아니하면 이 같은 2차 가해는 또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것이며, 저는, 우리 가족은 2022년 10월에서 한발자국도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저희 가족과 10·29 이태원 유가족들이 조금이나마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판사님께서 도와주십시오.”
─고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의 글입니다.
“판사님은 근 3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을 잃은 분노와 그리움에 울다 지쳐 잠이 든 적이 있으신지요. 식은 밥 먹기도 미안하고 제 목으로 밥이 넘어가는 게 혐오스러워 냉장고에 밀리고 밀려 있던 차고 딱딱한 밥을 울면서 씹어 드셔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두 다리 뻗고 자는 제 자신이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져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잠을 미루다 해가 뜰 때 겨우 새우처럼 웅크리고 쪽잠을 자 본적이 있으신지요.
이것이 지금의 제 일상입니다. 앞날이 창창한 아이였습니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를 차디찬 영안실에 넣어놔야 했고, 국가는 제게 한 줌의 뼛가루로 돌려 줬습니다. 이 어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김미나 의원은 제 얼굴 사진을 아무 거리낌도 없이 올려놓고 의도적인 비하와 조롱, 모욕을 주는 언어폭력을 자행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도 반성문 100장을 쓰면, 피해자 앞이 아닌 법정에서만 뉘우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감형의 대상이 된다는 게 과연 정의인지 묻고 싶습니다.
저를 포함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적도 없으며 저는 김미나를 용서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판사님께 간청드립니다. 특정 유가족을 낙인찍어 혐오와 조롱을 조장하는 공직자들은 김미나를 마지막으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가 죽어야 그때서야 조치를 취하는 세상이 더 이상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자식을 잃은 유가족이 진술서를 쓰며 오랫동안 고통을 반추하고 충격을 곱씹으며 또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제가 마지막이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김미나와 같은 2차 가해자를 엄히 다스려 자신의 말의 무게를 모르고 가벼운 언행으로 유가족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공직자들에게 본보기이자 2차 가해 예방이 되는 선례를 남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재판이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 속에서 헤매고 있는, 힘없고 연줄 없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에게 아직 공감과 정의라는 빛이 있다는 걸 알려줄 수 있기를 이 못난 어미가 간청드립니다.”
민사 항소심 재판이 끝나더라도 김 시의원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지 않으면 유가족들의 고통은 여전히 계속될 것 같습니다.
항소심 재판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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