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고위 인사들이 민감한 현안을 두고 연일 엇갈린 입장을 내놓으며 정책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쌍방이 훈련을 중지하면 모르지만, 우리가 일방적으로 중지할 순 없다”며 “군인은 기본적으로 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5일 9·19 남북 군사합의의 선제 복원을 위해 먼저 우리 군의 남북 접경지역 훈련 중단을 거론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주장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통상 외교·안보 사안은 내부적으로 이견이 있더라도 대외적으론 한목소리를 내는 게 기본 원칙이다. 이재명정부 대북 정책의 방향성이 무너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난달 24일에는 정 장관이 “남북이 사실상의 두 국가”라고 발언하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이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을 설명하며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이게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라고 규정한) 헌법에도 맞는 관점”이라고 반박했다. “정부의 공식 입장이 뭐냐”는 지적이 쏟아지며 혼란을 부추겼다. 이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밝힌 ‘엔드(E.N.D) 이니셔티브’를 둘러싼 엇박자도 그렇다. 외교·안보 라인의 조율되지 않은 발언은 국제사회에서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신뢰성과 일관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위험하다. 북한에도 오판의 빌미를 제공할 게 뻔하다. 득이 될 게 없는 일이다.
이재명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이질적인 구성을 띤다. 북한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자주파’와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가 공존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 장관과 이종석 국정원장 등을 자주파로, 위 국가안보실장·조현 외교부 장관 등은 동맹파로 분류한다. 애초에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함께 중용해 외교·안보 정책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3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안보 협상은 물론 한·중, 미·중 정상회담 등 치열한 한반도 외교전이 예고된 상태다. 이들의 불협화음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지 않다. 어렵더라도 이 대통령이 나서 현안 전반에 걸쳐 하나의 메시지 송출 전략을 짜고, 자주파·동맹파 인사들도 국익을 우선하는 자세로 민감한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국가 신뢰 하락을 막는 길이다. 북미 대화에서 예상되는 ‘코리아 패싱’ 가능성도 줄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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