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지난해 12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20%를 넘어서며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기대수명이 100세를 넘어 120세까지 거론되는 시대, 길어진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개인과 사회 모두의 과제가 되고 있다.
29일 KB금융이 발표한 ‘2025 KB골든라이프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이 꼽은 노후 행복의 핵심 조건은 ‘건강’(48.6%)과 ‘경제력’(26.3%)이었다. 코로나19 이후 건강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슬로에이징(Slow Aging)’ 트렌드가 확산됐지만, 정작 현실의 노후 준비 수준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응답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건강은 최우선, 그러나 경제력은 여전히 핵심
조사 결과 은퇴 여부와 연령대에 상관없이 건강은 노후 행복의 1순위 요인으로 꼽혔다. 은퇴자의 53%는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답했으며, 이는 은퇴 전 가구(48.1%)보다 높았다. 연령별로도 70대(51.6%)와 60대(51.0%)에서 건강 비중이 두드러졌다.
반면 20~50대는 상대적으로 경제력을 더 중시했다. 교육비·주거비 등 지출 부담이 큰 현실 때문이다. 특히 1인가구는 ‘경제력’을 중시하는 비율이 27.1%로 부부가구(24.7%)나 부모자녀가구(26.9%)보다 높았다. 독립적으로 생활해야 하는 만큼 경제적 불안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준비 잘 돼 있다” 19%… 10명 중 8명은 불안
노후 준비 필요성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7.8%가 공감했지만, 실제로 “노후 준비가 잘 돼 있다”고 답한 비율은 19.1%에 불과했다. 지난해(21.2%)와 유사한 수준으로, 여전히 80% 이상이 준비가 부족하다고 인식하는 셈이다.
가구 유형별로는 부부가구(26.6%)가 가장 높은 편이었고, 부모자녀가구(18.1%)와 1인가구(12.9%)는 평균보다 낮았다. 특히 “준비가 부족하다”는 응답은 1인가구(61.9%)에서 가장 높았다. 홀로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세대의 불안이 뚜렷하게 드러난 것이다.
연령대별로는 60대가 27.4%로 준비가 가장 잘 돼 있다고 답했지만, 40대는 13.4%에 그쳤다. 40대는 자녀 교육비와 주거비 등 양육 부담이 집중되는 시기로, 노후 준비 여력이 부족하다. 반면 은퇴를 앞둔 60대는 현실적으로 노후를 체감하며 자기 방식대로 준비를 서두르는 양상이다.
◇결국 노후 준비는 ‘집’에서 찾는다
건강 다음으로 중요한 축은 경제력, 그리고 그 경제력의 핵심 수단은 ‘집’이었다.
응답자의 59.7%는 은퇴 후 주택 다운사이징을 고려했고, 32.3%는 주택연금 활용 의향을 밝혔다. 또 80.4%는 지금 사는 동네에서 노후까지 살고 싶다(에이징 인 플레이스)고 답했다.
즉, 한국인의 노후 전략은 ▲주택을 줄여 생활비를 아끼거나 ▲집을 담보로 연금을 받고 ▲익숙한 동네에서 안정적으로 노후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요약된다.
◇주거·부동산 시장에 드리운 변화
이 같은 흐름은 부동산 시장에도 변화를 예고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기에 접어들면서 △도심 소형 아파트 △의료·교통 인프라가 가까운 신축 단지 △시니어 전용주택 △리모델링·개조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운사이징’ 수요가 늘면 대형 아파트는 매도 압력이 커지고, 도심 소형 아파트와 교통·의료 인프라 인접 단지는 선호가 더 강해질 수 있다. 주택연금 활성화 여부 역시 노후 주거 안정과 직결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노후 준비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 다수는 건강을 최우선으로 꼽지만, 실제 대비는 경제적 한계 앞에서 부족한 실정이다. 그리고 그 경제적 대비의 핵심 수단은 결국 ‘집’이다.
전문가들은 “연금만으로는 노후 생활비 충당이 어렵다”며 “주택 축소, 주택연금 활용, 생활권 인프라 확충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