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비행하며 내륙 지역으로 침투하는 드론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러시아 드론 21대가 폴란드 동부 영공에 침입, 폴란드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긴급대응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드론 3∼4대가 격추됐다.

며칠 뒤엔 러시아 드론이 루마니아 영공에 무단 진입해 루마니아 공군 전투기가 출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덴마크에서도 정체불명의 드론이 공항과 공군 기지에 동시 출몰해 일부 공항이 한때 폐쇄됐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 벌어진 영공 침범은 나토 회원국들의 신속한 대응으로 빠르게 수습됐지만, 유럽이 드론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는 문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급속하게 발전하는 드론 기술의 위협을 세계 각국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 셈이다.

◆방공망 문제 드러낸 러시아 드론 침입
폴란드 영공에 침입한 러시아 드론을 격퇴하기 위해 폴란드군과 나토는 F-16(폴란드), F-35(네덜란드), 패트리엇(독일), 조기경보기(이탈리아), 공중급유기(나토)를 투입했다.
그럼에도 21대 중 3∼4대만 격추했고, 일부 드론은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폴란드 영공을 비행했다.
심지어 F-16이 드론을 겨냥해 쏜 공대공미사일이 유도장치 오류로 민간 주택 지붕에 떨어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폴란드에 침입한 러시아 드론의 기종은 게르베라 드론이다. 대당 가격은 500∼2000달러(약 70만∼278만원)에 불과하다.
지난해부터 러시아가 실전 투입한 다목적 드론이다. 초기엔 이란산 샤헤드(러시아명 게란)를 흉내 내는 미끼로 쓰이다가 정찰·자폭용으로도 쓰이고 있다.
폴리스티렌·합판·플라스틱 등 비금속 재료를 사용해서 제작되며, 날개폭이 2∼2.5m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
저가·저성능 드론이지만, 이를 막고자 폴란드와 나토는 스텔스기까지 투입해야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이 주목받은 지 3년이 됐지만, 유럽의 대비태세는 큰 변화가 없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이 이스라엘산 애로-3와 다윗의 돌팔매, 아이언 돔과 미국산 패트리엇 등을 도입했으나 드론 요격보다는 미사일방어에 비중을 뒀다.
우크라이나에서 다양한 종류의 드론 공격 저지 장비와 전술이 등장했지만, 세계 각국 군대는 안티 드론건처럼 이동식 지휘소나 보급 거점 등 핵심 군사시설 주변에 즉석으로 설치할 수 있는 대(對)드론 장비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유럽연합(EU)에선 2023년 동유럽에 드론 요격·저지 체계인 ‘드론 방벽’을 구축하는 방안이 거론됐으나 지금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리섬유나 플라스틱으로 제조된 소형 드론의 대규모·초저고도 침투를 저지하긴 어렵다. 기존 방공망에 드론 저지 체계를 추가, 통합 방공망을 구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드론 요격, 어떻게 해야 하나
소형 저가 드론은 수년 전보다 더 저렴하고, 더 많이 보급됐으며, 능력도 향상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쓰이는 드론 중 일부는 전자전 시도를 회피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북한도 과거보다 성능이 향상된 드론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 19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는 두 종류의 자폭형 무인공격기가 목표물을 타격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가오리형 날개 기종은 이스라엘산 자폭 드론 하롭, 십자형 날개 기종은 러시아산 란쳇-3와 외형이 비슷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현대전에서 무인장비들의 이용 범위가 더욱 확대되고 주되는 군사활동 자산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실은 이 분야의 핵심기술 고도화와 무인무장장비 체계들의 인공지능 및 작전능력 고도화를 우리 무력 현대화 건설에서의 최우선적인 중요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군력이 취약해 근접항공지원이 한국군보다 부족한 북한군은 AI가 적용된 소형 드론의 파상공세로 이를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저렴한 소형 드론의 침입은 국민들에게 심리적 불안감을 조성하고, 군인들을 피곤하게 하며, 방공망을 소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군도 드론 위협에 대응해 탐지-식별-타격(재밍)이 가능한 대드론통합체계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주요 시설 방호만으로는 드론 공격의 효과를 떨어뜨리는데 한계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내륙의 주요 인프라와 민간·군사시설 외에도 전선의 야전부대까지 드론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
장거리 포격이나 미사일 발사 전 표적 확인을 위해 전선과 내륙 지역을 비행하는 정찰 드론을 방치하면, 나중에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주요 시설 방호와는 별도로 드론을 격추하는 창의적인 방식이 추가로 요구되는 대목이다.
주목받는 것이 탄약의 개량이다. 기존의 총포에 사용할 수 있는 드론 요격용 탄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플랫폼은 이미 전력화되어 있으므로 탄약만 배치하면 드론 요격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여러 개의 작은 금속 구슬이 넓게 퍼지면서 발사되는 산탄총이 드론 요격무기로 쓰이자, 서방의 산탄총 제작사들이 근거리에서 소형 드론을 요격할 수 있는 특수 탄환을 개발해 시장에 출시한 바 있다.
산탄총은 가격이 저렴해 대량 배치가 가능하고, 조작법이 간단해 일선 부대에서도 쉽게 활용할 수 있다.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의 개념을 적용하되, 비용을 낮춘 요격무기도 등장했다.

러시아는 3D 프린팅으로 만든 발사대에 1인칭 시점(FPV) 드론을 결합한 드론 요격무기를 개발했다. 고가의 지대공미사일로 드론을 격추하는 것은 가격 대비 성능이 맞지 않으므로, 값이 싼 FPV 드론을 요격체로 쓴 것이다.
다만 다수의 드론이 군집을 이뤄 동시에 침입했을 때에는 산탄총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총포는 기본적으로 단일 표적에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많은 드론을 한꺼번에 무력화하는 고출력 마이크로파 무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전자전에 기반한 마이크로파는 비행제어기나 위성항법수신기, 통신 모뎀 등을 교란해서 드론의 제어를 중단시킬 수 있다. 거리나 방향 등에 따라선 칩을 손상시켜 드론을 사용 불능 상태에 빠뜨린다.
미국 테크 기업 에피루스가 개발한 레오니다스 시스템은 최근 실험에서 49대의 쿼드콥터 군집 드론을 몇 초 만에 추락시켰다.
미국 록히드마틴과 레이시온도 관련 개념을 연구하고 있으며, 중국도 드론 공격 저지에 쓰일 수 있는 마이크로파 무기를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마이크로파 무기를 무차별적으로 발사하면, 민간 분야의 전자 기기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드론의 탐지와 식별 과정을 통해 드론의 위험성이 확인된 이후에 사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드론의 탐지와 식별을 정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탐지·식별이 이뤄지지 않으면 요격은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명해진 이란산 샤헤드 드론은 크기가 작고 비금속으로 만들어져 레이더에 포착되어도 새와 구분하기가 어렵다.
레이더에 매우 작게 포착되거나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드론의 움직임을 정확히 확인하려면, 인공지능(AI)에 의한 식별 기술이 필요하다.
드론의 엔진음과 프로펠러 주파수를 AI에 학습을 시키면, 야간에 드론 엔진음이 포착됐을 때, 기종을 빠르게 식별할 수 있다. 이는 지상 요격부대에 충분한 준비시간을 제공, 요격율을 높일 수 있다.
드론 요격작전 전반에 걸쳐 AI는 레이더와 음향·광학 등의 센서가 수집한 데이터를 실시간 분류·융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표적의 정체가 드론 또는 새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기종과 위협 우선순위를 자동으로 분석해 지휘부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만 영상과 음향 수집은 민간에서의 사생활 문제와 연관될 가능성도 있어서 법·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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