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가 어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알선수재 등 사건 첫 재판에 출석했다. 구속 기소 상태인 김씨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8월 12일 구속영장 실질심사 이후 43일 만의 일이다. 검정색 정장 차림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김씨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법정으로 입장해 피고인석에 앉는 모습이 TV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촬영을 허가한 재판부의 판단은 존중하나, 국격에 끼칠 악영향을 떠올리니 착잡함을 금할 길 없다. 국민 대다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서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씨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에 가담하고 국민의힘 공천 및 윤석열정부 인사에 관여한 대가로 금품을 받아 챙긴 정황 등을 잡고 그를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김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팀에 소환될 당시 “저 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수사 결과만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기는커녕 윤석열정부 최대 실세이자 비리의 진원지였다. 특검팀이 김씨 공소장에 적시한 범죄 수익만 10억원이 넘으니 참으로 낯뜨거운 노릇이다.
김씨 측 변호인은 이날 주가 조작 관여, 공천 및 인사 개입, 금품 수수 등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김씨 스스로 특검 조사 단계부터 제기된 의혹 거의 대부분에 “모르는 일”이란 입장을 밝힌 만큼 예견된 수순이라 하겠다. 그래도 특검팀은 여론몰이를 시도해선 안 되고 오직 증거와 법리만으로 혐의 입증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김씨도 헌정사 최초로 재판을 받는 전직 대통령 부인이 된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자숙하길 바란다. 재판에 성실히 임함으로써 진실 규명에 협조하는 자세가 한때의 영부인으로서 국민에 대한 도리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배우자는 법률상 아무런 지위도, 권한도 없다. ‘대통령의 가족은 경호 대상’이라고 규정한 대통령경호법에 따라 경호를 받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자연인이란 이유만으로 권력자인 양 떠받들어져 왔다. 현 정부는 물론 앞으로 들어설 모든 정부가 김씨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대통령 배우자 리스크 관리에 허점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 그러려면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을 감시할 특별감찰관이 꼭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초 기자회견에서 특별감찰관 임명 절차를 밟겠다고 했는데, 왜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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