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N번방’ 계기 도입
아동·청소년에 성인까지 확대
피해자인 척 접근… 증거 수집
검거인원 1년 새 66.7% 급증
판매·배포 등 유포범죄 최다

텔레그램 대화방을 개설해 여성연예인 얼굴에 나체사진을 합성·유포한 15세 남성이 지난 5월 경찰의 위장수사로 검거됐다. 범인이 만든 3개 텔레그램 방에 잠입한 경찰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여성연예인 30명에 대한 합성물 590개가 유포된 것을 파악했다. 합성물에는 미성년자 연예인 9명이 포함돼 있었다. 운영자가 신분을 캐물을 때도 있지만 ‘회사원’이라고 넘기며 재유포자와 소지자에 대한 수사를 이어갔다고 한다. 경찰은 위장수사를 통해 모은 증거들로 이 방 참여자 840명 중 아동성착취물을 소지하고 재유포한 23명을 추가로 검거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2021년 9월24일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위장수사 제도를 도입한 이후 지난달까지 765건의 위장수사가 실시됐다고 23일 밝혔다. 이를 통해 2171명이 붙잡혔고 130명이 구속됐다.
위장수사 제도는 텔레그램을 통해 아동 성착취 사건이 발생한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도입 당시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해서만 위장수사가 가능했지만, 올해 6월부터는 성인 디지털성범죄에 대해서도 위장수사를 할 수 있도록 범위가 확대됐다.

현재 시행 중인 위장수사는 경찰관 신분을 밝히지 않거나 부인하는 방식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신분비공개’ 수사와 경찰관 외 신분으로 위장하는 방식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신분위장’ 수사로 나뉜다. 신분비공개 수사는 상급경찰관서 수사부장 승인이 있으면 되지만, 신분위장 수사는 검사에 청구해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신분비공개 수사는 종료 시 국가경찰위원회에 관련 자료를 제출해 통제받는다. 위장수사 기간도 기본 3개월(신분위장 수사는 연장 시 최대 1년)로 제한된다. 위장수사가 범행을 유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통제망을 갖춘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실시한 신분위장 수사 191건 중 법원에 불허된 수사는 1건에 불과했다. 1건도 수사보완 요구 차원으로 법원은 대부분 위장수사 필요성을 인정하는 편이다.
지난 5월 광주에서는 피해자 얼굴에 타인의 성관계 사진을 합성한 허위영상물을 제작해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가족에 유포하겠다”고 피해자를 협박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피해자로 신분을 위장해 범인을 특정하는 수사에 나섰다. 24시간 범인의 행동에 대응하며 증거를 수집해 수사 범위를 좁혔고, 피해자인 척 접근해 대화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을 충격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마침내 피해자를 협박한 31세 남성 검거에 성공했고 지난달 구속했다.
경찰 위장수사로 잡히는 디지털성범죄는 판매·배포 등 유포범죄가 가장 많았다.
전체 위장수사 765건 중 유포범죄가 591건(77.3%)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제작 102건(13.3%), 성착취 목적 대화 46건(6%), 구입·소지·시청 25건(3.4%) 순이었다. 올해 1~8월 위장수사로 검거된 인원은 68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87명) 대비 66.7% 증가하는 등 경찰 내에서는 위장수사를 적극 활용하는 분위기다.
경찰 관계자는 “인공지능(AI) 기술 발달과 보안 메신저 활용 등 디지털성범죄 범행 수법이 갈수록 진화하고 음성화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위장수사를 통해 디지털성범죄를 반드시 근절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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