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갈수록 뒷걸음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어제 포브스 통계를 분석해 발표한 ‘글로벌 2000대 기업변화로 본 한·미·중 기업 삼국지’ 보고서 내용은 충격적이다. 미국은 세계 2000대 기업이 2015년 575개에서 올해 612개로 6.5% 늘었다. 중국도 180개에서 275개로 52.7% 급증했다. 하지만 한국은 66개에서 62개로 6.1% 감소했다. 한국 기업이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장 동력까지 악화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글로벌 2000은 포브스가 매년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매출·자산·시가총액·이익 등 주요 지표를 종합해 순위를 매긴다. 우리나라는 새로 진입한 기업이 14개에 그친 반면 18개 회사가 순위에서 밀려났다. 글로벌 2000대 기업의 합산 매출액을 보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미국 기업 합산 매출액은 11조9000억달러에서 19조5000억달러로 63% 늘었고, 중국은 4조달러에서 7조8000억달러로 95% 급증했다. 한국 기업 합산 매출액이 10년간 1조5000억달러에서 1조7000억달러로 고작 15%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역차별 규제 탓이다. 기업 면모를 보면 미국과 중국 모두 첨단산업을 아우르는 간판 기업들이 성장을 이끌고 있다. 미국은 세계최대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와 CVS헬스 등 첨단산업·헬스케어 기업이 성장을 주도했다. 중국 역시 알리바바, 비야디(BYD) 등 첨단기술·정보기술(IT) 분야 기업 약진이 두드러진다. 우리는 어떤가. 삼성증권, 카카오뱅크 등 금융업이 신규 진입했지만 삼성중공업, 아모레퍼시픽 등이 밀려났다. 경쟁력을 잃어가는 한국 제조업의 초라한 현실이다.
기업에 대한 ‘계단식 규제’로 인한 ‘피터팬 증후군’부터 끊어내야 한다. 자산 규모 5000억원을 넘겨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94개의 새로운 규제에 직면한다. 자산 5조원이 넘으면 329개로 급증한다. 정부가 뒤늦게 6000여개의 경제형벌 가운데 30%를 없애겠다지만 만시지탄이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 ‘더 센’ 상법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부터 고쳐 성장을 위한 길을 터줘야 한다. 성급히 주 4.5일제를 도입할 게 아니라 고용 경직성 완화와 규제 타파가 시급하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