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후반기 인생의 반려자
영화관은 ‘꿈의 공장’이지요”
다큐 ‘미스터킴…’으로 관객들 앞에 서
亞 영화관들 순례하며 의미 묻는 여정
영화관에 얽힌 추억·고민 진솔하게 담아
“영화제, 영화·영화인들 친교 맺는 축제
신인 감독 발굴 등 기본 역할 이어가야”

‘당신에게 영화관이란 무엇입니까?’ 세계적인 거장들이 카메라 앞에서 이 질문에 답했다. 질문을 던진 이는 김동호(88) 전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이다.
88세 원로 영화인은 자신이 씨앗을 뿌리고 가꾼 BIFF의 30주년에, 직접 연출한 첫 장편영화 감독으로 다시 관객 앞에 섰다. 초대 영화제부터 15년간 집행위원장을 맡으며 BIFF를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성장시킨 그는 다큐멘터리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로 부산을 찾았다. 지난 20일 부산 해운대구 파라다이스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BIFF에서 최초 공개된 이 작품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영화 생태계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김 감독이 캠코더를 들고 한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의 영화관을 순례하며 영화와 영화관의 의미를 묻는 여정을 담았다. 이 여정에서 만난 영화인들은 영화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 영화관에 얽힌 어린 시절의 기억과 오늘의 고민을 진솔하게 들려준다.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문소리, 탕웨이, 다르덴 형제, 고레에다 히로카즈, 차이밍량, 두기봉, 뤼크 베송 등 세계적인 영화인들이 그의 카메라 앞에 섰다. 이들은 영화란 무엇이며 영화관은 어떤 공간이고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영화의 현재를 살피는 여정은 그 가치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원래 많은 국내외 영화인을 알고 지내기 때문에 120명 가까이 인터뷰했어요. 유럽 감독들도 많이 알지만, 거리상의 제약으로 직접 갈 수 없어 많이 담지 못했지요.”
기라성 같은 영화인들을 카메라 앞으로 불러모은 비결이 무엇일까. 김 감독은 “외국인이든 동네 사람이든 속마음을 진솔하게 터놓고 대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는 과하게 겸손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세계 유수 영화인들은 그를 ‘미스터김’이라 부르며 함께했던 밤샘 술자리와 우정을 추억한다. 특유의 친화력과 열정은 전설로 회자된다.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1961년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직에 입문한 그는 영화진흥공사 사장, 문화부 차관 등을 지냈다. 일반적 공직자라면 은퇴할 나이에 BIFF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인으로 제2의 인생을 열고 그 시기를 뜨겁게 채웠다.
그에게 영화란, 영화관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제 후반기 인생의 반려자였습니다. 영화관은 ‘꿈의 공장’이지요. 그곳에서 모든 사람이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현실의 어려움을 위로받으며 희망을 찾습니다.”

그렇다면 영화제란 어떤 의미일까. “영화와 영화인이 어우러져 친교를 맺는 축제죠. 평소에 보지 못하는 외국 영화들을 보며 영상 문화에 대해 새로운 체험을 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게 되는 자리입니다.”
BIFF 30주년을 맞은 소회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30년 전엔 영화제가 이렇게까지 성장하리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열정과 헌신을 다했을 뿐이지요. 앞으로 더 잘 발전하리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일관되게 지켜온 기본 전략, 즉 아시아 신인 감독을 발굴하고 아시아 영화를 이끈다는 정체성을 지키며 외연을 확장하기를 바랍니다.”
그는 현재 말레이시아 영화제와 베트남 호찌민영화제 명예 회장을 맡고 있다. 아시아 여러 영화제 창설을 도왔고 자문 역할을 활발히 하고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영화 산업이 최근 급격히 성장하고 있어요. 젊은 감독들이 대거 배출돼 지역 영상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흐름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는 연내 정식 개봉 예정이다. 해외 일정도 빡빡하다. 김 전 위원장은 11월 일본, 12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내년 4월에는 이탈리아로 날아가 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에는 상업 극영화 연출 계획도 공표할 예정이다. 88세 노(老)영화인의 도전은 멈출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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