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19일로 예정됐던 고교학점제 개선방안 발표를 18일 돌연 취소했다. 장관 브리핑이 하루 전에 취소되는 것은 이례적이어서, 일각에선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부에 제동을 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18일 교육부는 출입기자단에 “내일 예정되었던 ‘고교학점제 개선 방안’ 부총리 브리핑을 연기한다”고 공지했다. 교육부는 브리핑 연기 이유로 “국가교육위원회 등 관련 기관과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고교학점제 개선안은 12일 취임한 최교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첫 정책이기도 하다. 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이 인정되는 제도로, 올해 고1부터 적용됐다. 그러나 현장에서 다양한 선택과목 개설,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에 따른 교사의 업무부담 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크자 교육부는 현장 부담을 완화하는 개선안을 만들어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 부총리도 취임 후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고교학점제를 꼽고, 15일 첫 공식 일정으로 충남 금산의 한 고등학교를 찾아 고교학점제 현장을 점검했다. 그는 당시 “올해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된 후 학생들의 과목 선택 기회가 확대되고,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에 대한 교육적 관심이 커지는 등 긍정적인 변화도 있으나 학교에서는 여러 어려움을 호소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장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고교학점제 안착을 목표로 실효성 있는 개선 방안을 빨리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16일에는 전국 시도교육감과 함께 고교학점제를 주제로 간담회도 가졌다.
당초 교육부는 이날 기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브리핑을 한 뒤 19일 최 부총리가 주재하는 브리핑을 열 계획이었으나 이날 두 브리핑 모두 갑작스럽게 취소됐다. 최근 최 부총리의 행보가 고교학점제에 집중됐고, 교육부가 ‘첫 장관 브리핑’에 공을 들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상치 못한 취소다.
취소 배경에는 국교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출범한 국교위는 국가교육발전계획 등을 수립하는 곳으로, 교육과정 등도 국교위 소관이다. 고교학점제는 2022년 교육과정에 연계된 제도여서 고교학점제를 바꾸려면 국교위가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도 개정해야 한다.
지난 정부의 1기 국교위는 ‘존재감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고, 교육부가 요청한 교육과정 개정 등을 별다른 이견 없이 통과시켜 ‘교육부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2기 위원장으로 차정인 국교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최 부총리 취임 직후인 15일 취임한 차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지난 3년간 국교위는 출범 당시 법정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이해할 수 없는 기구 축소와 출범 이후의 무력화, 리더십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역부족이었다”며 “국교위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유능한 정부기관이 돼 소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국교위 정상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국교위의 존재감과 역할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브리핑도 교육부가 주도적으로 고교학점제 개선안을 마련해 발표하려 하자 국교위가 불편함을 보이면서 취소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교육계 관계자는 “어차피 교육부가 개선안을 발표하더라도 고교학점제는 교육부 혼자 바꿀 수 없고, 추후 국교위와 논의하면서 절차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아예 발표조차 막힌 것은 국교위 눈치를 본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교육부가 이번 개선안을 하루아침에 마련한 게 아니고 기존에 국교위와 협의를 해왔을 텐데 위원장이 바뀌면서 1기 국교위와 선을 그은 것 같다”며 “국교위가 앞으로 교육 정책 관련해 더 목소리를 더 내고 역할을 많이 하겠다는 신호란 생각도 든다. 앞으로 교육부에 제동을 거는 일이 또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교육 관련 질문에 국교위를 교육 개혁 주체로 지목하며 국교위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다만 국교위 관계자는 “교육부에 고교학점제 개선안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전달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브리핑 연기에 대해 “장관이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서 많은 기관과 더 소통하고 협의해서 신중하게 하겠다는 취지”라며 “이른 시일 내에 개선안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교원단체는 고교학점제를 아예 폐지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고교학점제는 학생 맞춤형 교육과 선택권 확대란 이름으로 시작됐지만 불과 한 학기 만에 학교 현장은 혼란과 고통의 늪에 빠져들었다”며 “개선이나 보완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고교학점제 폐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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