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류의 역사/ 데이비드 맥윌리엄스/ 황금진 옮김/ 포텐업/ 2만8800원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다. 돈은 인간이 서로를 신뢰하는 방식이며, 역사를 움직여온 숨은 동력이다.”

아일랜드 출신 경제학자인 저자는 ‘머니: 인류의 역사’에서 정치·문화·종교·혁명 등 우리가 배워온 굵직한 역사적 사건 뒤에는 “언제나 돈이 문제였다”며 돈을 통해 5000년 인류의 역사를 재해석한다.
책에 따르면 기원전 10∼6세기 리디아 왕국에서 세계 최초의 주화가 탄생한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물물교환이나 일정한 무게의 금속 덩어리를 사용했지만, 리디아 왕은 일정한 무게와 모양을 갖춘 주화를 발행했다. 이는 단순한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저자는 “주화는 금속이 아니라 권력의 상징이었다. 왕의 문양이 새겨진 순간, 그것은 국가가 강제한 신뢰가 되었다”고 말한다. 주화는 개인 간 교환의 수단을 넘어 국가 권력이 통제하는 질서의 도구였다. 더불어 이 시기 인류의 삶은 창고에 있는 곡물 중심에서 주머니에 있는 동전 중심으로 발전하며 화폐는 사람의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 ‘돈=신뢰’라는 개념이 인류에게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수의 역사책에는 종교개혁이 부패한 로마 가톨릭에 대한 반발이라고만 기술돼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도덕의 문제만은 아니며, 돈이 종교개혁을 이끈 큰 원동력이었다. “종교개혁의 주인공, 마르틴 루터는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기가 만들어낸 인물이었고, 그와 동시에 돈이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작센의 은광 지역에서 자랐으며 그의 아버지는 광산 사업가였다. 마르틴 루터도 광산 주식을 약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략 1500년부터 1530년 사이에 지나친 시굴로 광산업 침체가 발생하고 작센 지역의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루터 가족이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는 동안 교회는 면죄부 판매로 계속해서 부를 축적했다. 자신의 집안은 하루아침에 몰락했는데 교회는 계속해서 부를 쌓자 루터의 분노가 터져버린 것일까? 그가 항의에 나선 시기는 바티칸이 대대적으로 면죄부 판매 사업을 벌이던 때와 일치한다.”(188∼189쪽)
당시 면죄부 판매는 곧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고, 돈은 신앙의 위기를 촉발한 매개체로 등장했다. 저자는 루터의 종교개혁은 단순한 신학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재정 운영과 돈의 문제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고 강조한다.
인쇄 기술은 중국(목판)과 한국(금속)에서 인류 최초로 개발되었는데 왜 세계 최초의 인쇄기는 독일에서 발명되었는지도 제시한다. “구텐베르크는 오로지 돈 때문에 성경 사업에 뛰어들었다. 늘 빚에 시달리고 가는 곳마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인물, 구텐베르크는 성경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마인츠 대주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부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걸 간파했다. 그에게는 몹시 다행스럽게도 15세기 독일은 금융혁신으로 대부업자들이 넘쳐났다. 금융혁신으로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다 보니 시중에는 돈이 남아돌았다. 가난했던 구텐베르크가 만약 투자금을 빌릴 수 없었다면 인쇄기는 독일에서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174쪽)
프랑스 혁명의 지폐, ‘아시냐’도 돈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평등·박애를 내세웠지만, 그 이상은 돈의 신뢰가 붕괴하는 순간 함께 무너졌다. 혁명 정부는 교회 재산을 담보로 한 지폐 ‘아시냐’를 대량 발행했다. 초기에는 혁명 정신을 상징하는 새로운 화폐였으나, 남발과 위조로 인해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다. 혁명의 이상이 돈의 신뢰가 붕괴하는 순간 함께 붕괴했다. 물가는 치솟았고, 민중은 환멸을 느꼈으며, 급기야 혁명 정부는 독재와 폭력으로 치달았다. 돈의 불안정이 정치적 이상을 무너뜨린 대표적 사례다.
20세기 초 독일에서 돈의 붕괴가 불러온 재앙을 보여준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 독일은 전쟁 배상금을 감당하기 위해 지폐를 무제한 발행했다. 그 결과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수레에 지폐를 싣고 가야 할 정도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절망에 빠진 시민들은 급진적 대안을 찾았고, 그 빈틈을 나치가 파고들었다. 돈의 붕괴가 정치적 극단주의인 나치즘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 밖에도 라틴 아메리카에서 막대한 금·은을 가져와 한때 유럽 강국으로 도약한 스페인과 포르투갈, 위조지폐를 대량 공급해 영국을 무너뜨리려 했던 히틀러의 계략 등 주요한 역사적 사건과 돈의 상관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고결한 이상과 번드레한 수사 뒤에 숨겨진 진실은 대부분의 혁명이 결국 ‘돈 문제’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돈의 5000년 역사의 관찰을 통해 “돈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돈은 인간의 욕망과 권력, 신뢰의 총합”이라며 “돈이 신뢰를 잃는 순간, 사회는 위기에 빠진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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