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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복귀 수도권 얘기일 뿐… 지방 의사는 ‘만년공백’ [심층기획-지역의료 붕괴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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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17 20:00:15 수정 : 2025-09-17 22:17:17
안동·속초·무안=배소영·배상철·김선덕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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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갈등 후폭풍에 지방 의사 씨가 말라
지방의료원 35곳 중 5곳 ‘내외산소’ 없어
12곳 지원자 없어 전공의 수련제도 못해
7월부터 한 지역필수의사제도 정원 미달

의과대·상급병원 없는 전남지역 더 심각
단순한 의대증원으로 해소될 문제 아냐
“공공의대 설립 불가피” 목소리 높아져
지역·필수의료 공백 해소 해법 떠올라

“전공의가 돌아왔다지만 우린 남의 일 같아요.” 16일 강원 속초의료원 접수창구 앞 로비는 몇 안 되는 환자들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좌석에 앉아 TV만 응시할 뿐 적막감이 감돌았다. “오늘 신경과 진료가 가능하냐”고 묻자 “의사가 없어 진료가 어렵다”는 원무 직원 답이 돌아왔다. 사실상 속초의료원 주요 외래 진료는 ‘개점휴업’ 상태다. 신경과를 포함해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성형외과, 가정의학과가 개설돼 있지만 전문의가 없어 진료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강원 영월의료원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영월의료원 관계자는 “진단검사의학과와 재활의학과, 성형외과, 흉부외과가 개설돼 있지만 전문의가 공석이라 현재 진료를 볼 순 없다”고 전했다.

 

지난해 2월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발표와 전공의들 집단 이탈로 ‘치킨게임’을 벌이던 의정 갈등이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다.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에 속속 복귀해 필수·응급 의료현장이 정상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공공의료원의 의사 구인난은 여전히 악화일로여서 결국 주민의 건강과 생명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수의료진이 없으니 원정진료 갈 수밖에”

 

17일 보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김윤·소병훈 의원에 각각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과목이 1개 과라도 없는 공공의료원은 35곳 가운데 5곳으로 확인됐다. 강원 강릉의료원과 전남 순천의료원, 제주의료원,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은 산부인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 목포시의료원은 소아청소년과가 없고, 제주의료원은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외과도 없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 지방의료원이 공공의료 전달체계의 핵심축인 지역 거점의료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선 의료진과 시설·장비 등 양적 확충도 중요하지만 전공의 수련 등 의료진 역량 강화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각 공공의료원이 자체적으로 전공의를 두거나 지역 상급종합병원 관리하에 소속 전공의를 파견 근무하도록 하는 ‘모자제도’를 운영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현재 공공의료원 3곳 중 1곳가량(12곳)은 전공의 수련병원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남지역의 경우 3개(목포·순천·강진) 공공의료원 모두 전공의 수련병원 제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의과대학과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전남은 기본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아 전공의 수련병원 제도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고난도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전남 중증·응급환자의 다른 시·도 유출률이 전국 최고 수준에 이르는 이유”라고 하소연했다. 경북 안동의료원과 경남 마산의료원, 충남 천안의료원, 강원 영월의료원 등도 전남과 마찬가지로 같은 수련병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

 

공공의료원 소속 전공의 수는 의정 갈등이 가시화하기 직전인 2023년 12월과 갈등이 증폭됐던 지난해 12월 사이 큰 차이가 났다. 전국 공공의료원 중 가장 많은 전공의가 근무하는 서울의료원의 경우 2023년 82명에서 2024년 12명으로 줄었다. 부산의료원 전공의는 같은 기간 20명에서 10명으로 반 토막 났고, 강원 원주의료원과 충남 홍성의료원 등 경우 한 자릿수를 채우던 9개 의료원은 지난해 단 한명도 전공의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필수의사제도 한계… “공공의대 세워야”

 

정부와 여당이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는 지역필수의사제 역시 정원이 미달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지역필수의사제는 8개 필수의료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지 5년 이내인 의사를 대상으로 한다. 채용된 전문의는 지방 의료기관에서 5년간 근무해야 하며 정부는 월 400만원의 지역 근무 수당을 지원한다. 여기에 각 지자체는 주거 등 정주 여건을 추가로 제공한다.

이 같은 파격 지원에도 지원자는 찾기 힘들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강원·경남·전남·제주 4개 시·도의 지역필수의사 채용 인원은 이달 8일 기준 36명으로 전체 모집 정원(96명)의 37.5%에 불과했다. 절차가 진행 중인 곳도 있지만 지원자가 65명에 그친 탓에 최종 채용률은 70%를 밑돌 것으로 예측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역필수의사제의 모집 정원을 채우기 위해 전문의들과 직접 통화까지 했는데 대부분 난색을 표했다”면서 “더 많은 수당과 주거지 제공에도 연고도 없는 지방에서 굳이 수년간 근무해야 할 이유를 못 찾겠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강원의 경우 24명 모집에 14명이 지원해 현재까지 5명만 확정됐다. 전남은 16명이 지원해 11명이 계약을 마쳤고, 제주는 14명이 지원했으나 아직 채용이 진행되지 않았다. 목포의료원(정원 4명)과 순천의료원(3명), 제주 한국병원(3명)과 한마음병원(1명)은 지원자가 없었다. 강릉아산병원은 6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가 1명에 불과했다. 여기에 최근 전공의 모집에서도 수도권 쏠림 현상은 두드러졌다. 민주당 백승아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15개 국립대병원 전공의 정원 2861명 중 실제 근무 중인 인원은 1955명으로 충원율은 68.3%에 불과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대병원 본원은 충원율 80.4%를 기록했으나 경상국립대병원 창원분원은 42.6%, 경북대병원 칠곡분원은 52.8% 등에 불과했다.

 

공공의료기관인 지역의료원 등이 제 역할을 하려면 처우 및 정주여건 개선과 함께 공공의대 설립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장을 지낸 주영수 강원대병원 교수(예방의학)는 “지역에서 필수의료분야 의사를 확보하려면 공공의대 설립이 필요하다”면서 “과거에도 공공의대 관련 논의가 있었지만 어떤 학생을 어떻게 뽑을 것인지, 공공의대를 졸업한 이들에게 어떻게 의무를 부여해서 지역 필수의료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강제할 것인지 등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단순한 의대 증원으로는 지역과 특히 필수의료영역 의사를 늘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공공의대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모든 비용은 국가가 부담하는 대신 필수의료영역을 공부하도록 하고 최소 10년은 반드시 공공의료 시스템 안에서 근무하게 한다면 공공의료는 굉장히 발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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