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정부가 과거 그린란드의 인구 증가 억제를 목표로 강제 피임 시술을 했다는 사실이 덴마크 정부가 지원한 공식 조사에서 확인됐다.
남덴마크대학 산하 국립보건연구소와 그린란드대학은 9일(현지시간) 연구를 의뢰했던 덴마크 정부와 그린란드 자치정부에 347쪽 분량의 ‘그린란드의 피임 관행에 대한 독립적 조사’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해당 연구는 2022년 덴마크 공영방송 DR이 이번 사건에 대해 공론화한 것이 계기가 됐다.

354명의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수집한 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 의사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그린란드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시술과 관련한 정보를 알리지 않고 자궁 내 장치(IUD)를 삽입했다. 덴마크 보건 당국의 공식 자료를 보면 1968년부터 1972년까지 IUD 삽입술을 받은 그린란드 여성은 최소 5737명에 달하며 피해 여성 중에는 12세의 어린 소녀들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과다 출혈과 감염, 통증으로 누워있거나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고통에 시달리던 여성들은 의사들에게 IUD를 제거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의사들은 “제거할 수 없다”거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며 치료를 거부했고, 결국 일부 여성들은 직접 IUD를 제거해야 했다. 당시 13세였던 한 여성은 “다른 여자아이들이 잡아당겨서 뽑았다고 해서 나도 내 IUD를 뽑아냈다”고 증언했다. 피해자들은 의사들이 IUD 제거를 거부해 만성 통증과 수치심, 고립 속에 살아야 했다고 호소했다.
IUD 삽입 대신 호르몬 피임 주사제인 데포-프로베라 주사를 맞은 여성들도 있었다. 이 주사를 맞은 여성 중 일부는 생리가 영구적으로 멈추거나 불임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자궁이 손상돼 수술로 제거한 여성도 있었다.
15세 때 동의 없는 IUD 삽입 시술을 받았다는 울라트 바흐는 덴마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날 나온 보고서가 “우리가 당한 일에 대한 인정”이라며 “누구도 여기서 도망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나 완겐하임 그린란드 자치정부 보건부 장관도 이날 발표된 보고서를 두고 “덴마크 정부가 보고서의 결론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제 피임은 덴마크가 그린란드의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공식 정책으로 시행한 것이었다. 이번 보고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로 편입하고 싶다는 야욕을 공개적으로 밝힌 뒤 덴마크가 그린란드와의 유대를 더 강화하려는 시점에 나왔다.
그린란드 여성들에 대한 강제 피임 조치를 했다는 것이 공론화되자 메테 프리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지난달 옌스 프레데리크 니엘센 그린란드 총리와 공동 성명을 내고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프리데릭센 총리는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지만 책임을 질 수는 있다. 덴마크를 대표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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