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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유의스포츠속이야기] ‘배구 콤비’ 유중탁과 장윤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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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11 22:52:12 수정 : 2025-09-11 22: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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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배구는 지금 최악의 상황이다. 2025년 9월 현재 국제배구연맹(FIVB) 순위 25위에 그쳐 있다. 남자배구가 한때 아시아 정상에 올랐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5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1984년 그때. 한국은 준결승 리그에서 강호 브라질을 3-1로 꺾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미국이 4강전에 대비하기 위해 고의로 브라질전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패하는 바람에 한국은 세트 득실차에 뒤져 4강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순위전에서는 모두 이겨 영광의 5위를 차지했다. 한국이 올림픽에서 단 1패만을 기록하고도 5위를 한 것은 억울하다. 하지만 지금 올림픽 5위는 언감생심이다.

 

고 장윤창 교수와 유중탁(65) 명지대 감독은 41년 전의 주인공이다. 장 교수는 애석하게도 지난 5월30일 지병인 위암 투병 중 세상을 떴다. 그와 찰떡 콤비였던 유 감독이 지난 8월31일 정년퇴임했다. 정년 나이가 늘어나며 대학스포츠 지도자가 65세로 물러나는 것은 유 감독이 최초이다.

 

유중탁과 장윤창은 여러 가지가 닮았다. 배구에 입문한 이후 배구 외길을 걸었다. 또 장윤창은 배구선수가 되기 전에는 핸드볼 선수로, 유중탁은 축구, 농구, 육상선수로 활약했던 만능 재주꾼이었다.

 

하지만 출발은 라이벌이었다. 유중탁은 충암중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배구선수가 됐다. 그때 만났던 또 한 명의 단짝인 문용관 전 대한항공 감독이 있다. 유중탁과 문용관은 배구 명문 대신고에 이어 인하대로 함께 진학하면서 당시 무서운 신예로 배구계의 이목을 끌었다. 

 

유중탁은 187㎝의 작은 키임에도 강한 블로킹과 속공으로 팀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1983년 대학 졸업 후 실업에 진출하면서 문용관은 현대자동차서비스로, 유중탁과 장윤창은 고려증권으로 가면서 단짝이 바뀌었다. 그리고 고려증권 신화가 쓰인다. 장윤창·유중탁 명콤비는 단숨에 실업 최강의 전력을 구축했다.

 

은퇴 후 유중탁은 곧바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남자 대표팀 코치, 2001∼2003년 현대캐피탈 코치로 활약한 후 명지대 사령탑에 오른 그는 대학 배구의 터줏대감이 됐다. 장윤창은 지도자 대신 학자의 길을 택했다.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석사, 한국체육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모교인 경기대학교 교수가 됐다. 장윤창은 KBS해설위원, 대한배구협회 경기위원, 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장으로 활약하면서 늘 배구를 위해 일을 해 왔다.

 

유 감독은 “나는 배구로 복 받은 사람이다. 그 덕에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배구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했다. 장 교수에 대해서는 “윤창이는 진국이다. 대한민국 배구계에 진심이었다. 공헌을 진짜 많이 했다. 나하고는 다르다. 배구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배구에 전념하기 위해 술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장윤창·유중탁처럼 배구에 진심인 선수. 지금은 배구계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성백유 대한장애인수영연맹 회장·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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