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빚 수렁에 허우적대는 프랑스가 정국 혼돈에 빠졌다.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전 총리는 나랏빚을 줄이는 긴축예산안을 내놓았다가 8일(현지시간) 의회에서 불신임당해 실각했다. 지난해 12월 전임 미셸 바르니에 내각이 긴축예산안을 강행 처리했다가 무너진 지 9개월 만에 같은 일이 또 벌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다음날 측근인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국방부 장관을 새 총리로 임명했다. 하지만 야당은 거세게 반발하며 마크롱 탄핵까지 거론하는 판이다.
프랑스의 재정난은 악화일로다. 수십년간 이어진 확장재정 탓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는 2000년 60%에서 올 1분기 114%로 두 배가량 급증했다. 유로존에서 그리스(152.5%)와 이탈리아(137.9%)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연간 재정적자도 GDP 대비 5.8%로 유로존 평균(3.1%)을 웃돌고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약 3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이다. 다급해진 바이루 내각은 지난 7월 연금·복지·의료 혜택 동결 또는 삭감, 공휴일 축소 등을 포함해 440억 유로의 지출을 줄인 내년도 예산안을 내놨다. 긴축 강도가 바르니에 내각(600억 유로 감축안)보다 약했지만, 야당은 “서민만 희생시킨다”며 퇴짜를 놨다. 한 번 늘어난 복지지출은 여간해선 줄일 수 없는 재정중독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세계 7대 경제 대국 프랑스가 국가부도에 처할 것이라는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재무장관이 “긴축안이 무산되면 국제통화기금(IMF) 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는 판이다.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국가신용등급을 앞다퉈 낮추고 있다.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2022년 초 1%대에서 현재 3.5% 안팎까지 올라 이자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올해 말 49.1%이지만 기축통화국인 프랑스와 비교하는 건 곤란하다. IMF에 따르면 GDP 대비 정부부채비율(54.5%)은 올해 말 비기축통화국 11개국 평균(54.3%)을 넘어선다. 새 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8.1% 증액한 728조원 규모로 짰는데 이런 확장재정 기조가 이어질 경우 수년 내 재정 건전성의 기준선인 ‘국가채무비율 60%’마저 깨질 수 있다. 당장 경기회복이 급하더라도 과도한 지출에만 기댔다가는 외환위기 같은 파국이 또 올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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