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파 이시바 日 총리 사퇴
전문가 “큰 틀선 변화 없지만
신사참배 문제 등 갈등 여지”
대통령실 “긍정적 관계 기대”
美 한국인 구금 상태 계기로
비자쿼터 확보 시급한 과제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퇴진, 미국발 한국인 노동자 비자 리스크 등이 겹치면서 이재명정부가 다시 한번 외교력을 시험받게 됐다. 정권 초기 한·미·일 협력 강화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 속에서 3자 협력의 두 축인 미국, 일본과 도전 과제를 맞닥뜨린 만큼 실용외교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쏠린다.

8일 외교가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가 물러나는 변수로 인해 한·일 관계의 안정성을 단언할 수 없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2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을 언급했던 이시바 총리는 온건파로 분류돼 한·일 관계의 위험요소인 과거사 문제를 비교적 잘 관리할 지도자로 인식돼 왔다.
이런 이시바 총리가 물러난 자리에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2명의 주자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우익 행보를 보여왔다. 이 대통령의 ‘실용’이 상대에게 먹혀들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강경 보수 성향인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총리가 되면 한·일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하는 등 민감한 과거사에서 왜곡된 인식을 드러내 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농림수산상은 상대적으로 보수적 색깔이 옅고 과거사 직접 언급은 피하고 있지만 신사 참배 행보로 논란이 돼 왔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일 관계가 원만해야 한다는 것은 일본에서 큰 합의가 있기 때문에 그 기조가 바뀌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신사 참배 여부가 갈등 요소로 부각할 가능성, 과거사와 역사인식에서 얼마나 강경한 목소리를 내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을 제외하면 신사 참배를 갈 것인지 확실치 않다는 점에서 일단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최 연구위원은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일본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며 “일본의 새 총리가 과거사에 부정적 목소리를 낼 때 한국 정부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윤수 동북아평화연구소 국제관계연구소장은 “총리가 바뀌면서 생길 한·일 관계 변화는 일본 내에서의 변수에 따른 것일 텐데, 일본 역시 과거사 강경 발언 등의 여파에 학습이 됐다고 본다”며 “한국과 관계를 악화하면서까지 그런 행보를 보이기보다는 총리로서의 역할만 하는 식으로,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통령실은 이날 이시바 총리 퇴진과 관련해 “일본 국내 정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한·일 양국은 미래지향적, 안정적 관계 발전 방향에 광범위한 공감대가 있는 만큼 앞으로도 긍정적 관계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국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 사태는 전문직 취업 비자 문제를 포함해 대미 투자 사업 전반을 점검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미 행정부 차원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요청해 파견 인력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고위급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정부는 이날 오후 조현 외교부 장관을 미국에 급파했다.
외교 당국자에 따르면 정부는 그동안 우리 기업의 대미투자 증가에 따른 비자발급 관련 애로사항을 미국에 꾸준히 제기해 왔다. 그러나 미국 내 반이민 정서가 최근 악화되면서 현지 지역노조 등에서 외국인 전문가 고용에 부정적 반응을 보여왔고, 공화당 의원 등의 반대로 의회 통과가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분위기를 뚫고 유일하게 1만500개의 전문직 비자 할당을 얻어낸 호주의 사례는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과 호주 총리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미 행정부가 주도해 만든 결과인 만큼 이번에도 정상 및 고위급에서 풀어야 하는 상황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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