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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3000만원 내리세요”…‘빌라 전세’ 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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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08 05:00:00 수정 : 2025-09-08 06:26:03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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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요건 강화 검토중
비(非)아파트 전세 10건 중 8건 보증 가입 불가 예상
“제도 안정 vs 시장 충격”…서민 주거시장 시험대 올라

정부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요건을 현행 주택가격의 90%에서 70%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빌라 등 비(非)아파트 전세 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서민 주거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기존 계약의 상당수가 보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되면 역전세난과 시장 경색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연립·다세대 78% 보증 가입 불가…“10건 중 8건 탈락”

 

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오는 4분기 만기가 도래하는 전국 연립·다세대 전세 계약은 총 2만4191건.

 

보증 강화안은 제도적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이지만, 시장 현실과 괴리를 줄이지 못하면 임대인·임차인 모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게티이미지

이 가운데 무려 78.1%(1만8889건)이 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별로는 인천이 93.9%로 가장 높았다. 경기 80.2%, 서울 75.2% 등 수도권 전역에서 비아파트 전세 거래 대부분이 보증 가입 대상에서 제외될 위기다.

 

현재 전세보증은 보증금이 주택가격의 90% 이하일 때 가입 가능하다. 빌라의 경우 주택가격은 공시가격의 약 140% 수준으로 인정된다. 공시가격의 최대 126% 수준까지는 보증 가입이 가능하다.

 

기준이 70%로 강화되면 실질 허용 기준은 공시가격의 98%로 감소해 다수 계약이 조건 미달로 자동 탈락하게 되는 셈이다.

 

◆“보증금 수천만원 낮춰야”…임대인·임차인 압박 가중

 

보증 가입이 어려워지는 전세 계약은 평균 3533만원의 보증금을 낮춰야 새 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러한 조정이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임대인은 기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한 뒤 수천만원을 낮춘 보증금으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유동성이 부족한 임대인은 자금 부족으로 인해 전세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해 ‘역전세 리스크’에 빠질 수 있다.

 

임차인 입장에서도 전세보증 가입이 불가능해지면 사실상 전세 계약 체결 자체가 어려워지는 셈이다.

 

보증 없이 위험을 감수하거나, 대출을 더 받아 월세로 전환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릴 수 있다.

 

◆정부 “사기 예방·제도 안정성 확보”…시장선 “정책 취지 공감하지만 시기·방식 문제”

 

정부는 이번 조치가 전세사기 방지와 전세보증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건전성 확보 조치’라고 설명한다.

 

시장에서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일방적인 기준 강화는 되레 시장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반발이 나온다.

 

현재 전세보증은 사실상 전세 계약의 기본 조건이 된 상황. 가입 제한은 곧 전세 거래 위축, 시장 유동성 악화, 임차인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 “보증금 반환 불능 → 신규 계약 불가 → 시장 유동성 악화”

 

전문가들은 이번 강화 조치가 잘못 설계되면 임차인 보호를 위한 제도 자체가 임차인의 피해로 되돌아오는 ‘역설’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부동산 금융 전문가는 “보증 강화는 제도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일 수 있다”며 “이미 유동성이 취약한 빌라 전세 시장에서는 파괴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보증금 반환 불능 → 신규 계약 불가 → 시장 유동성 악화라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책은 예측 가능성과 단계적 적용이 핵심”이라며 “기존 계약에는 유예 조치를 두거나, 일정 기간 과도기적 보완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시가격, 감정평가…“구조적 한계도 짚어야”

 

일각에서는 비아파트 전세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빌라 등 비아파트는 공시가격과 실거래가 간 괴리가 크고, 감정평가의 신뢰성도 낮은 편이다.

 

이에 따라 보증 기준을 강화하기에 앞서, 공시가격 산정 방식 개선이나 가격정보의 투명성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전세보증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의 성격을 지닌 제도”라며 “제도 남용을 방지하면서도 시장 자체를 위축시키지 않는 균형 잡힌 접근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향후 과제…“단계적 적용·유예기간·가이드라인 마련 절실”

 

정부가 검토 중인 이번 보증 강화안은 제도의 신뢰성과 재정 건전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시장 현실과의 괴리를 줄이지 못하면, 정책의 역효과로 인해 서민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전세 시장이 ‘안정성 강화’, ‘서민 보호’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찾아갈 것인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게티이미지

전문가들은 △기존 계약에 대한 유예기간 또는 완화 적용 △보증금 조정에 대한 표준 가이드라인 제시 △공시가격 산정 체계의 현실화, 정밀도 향상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한 단계적 제도 전환 등과 같은 보완책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번 전세보증 요건 강화 논의는 단순한 행정 규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한국 전세 시장이 앞으로 ‘제도 안정성’과 ‘서민 보호’라는 두 축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선택할지를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시장과 정책이 따로 노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제도는 강화됐지만 실질적 피해자는 서민과 청년층이 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건 제도와 시장이 함께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유연하고 예측 가능한’ 정책 대응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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