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가 어제 국민의힘에 불법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 등과 관련해 “나의 지시로 우리 교회가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허위 사실이 유포되고 있다”며 “어떤 불법적인 정치적 청탁 및 금전 거래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김건희 특검의 수사가 시작된 이후 한 총재가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특검 수사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그동안 가정연합과 국민의힘 유착 의혹 수사는 윤영호 전 가정연합 세계본부장의 진술을 토대로 진행됐다. 윤 전 본부장은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김씨에게 명품 등을 전달하며 가정연합의 민원을 청탁하고 가정연합 신도들을 국민의힘에 입당시켜 2023년 친윤(친윤석열) 후보를 당 대표로 만들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윤 전 본부장은 그 과정에서 ‘윗선’의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아직은 일방적 진술 수준이다. 불법적인 청탁 자금이 오갔는지, 법이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당의 경선 과정에 개입했는지는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하지만 각본에 맞추는 방식의 무리한 수사는 금물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종교단체에 대한 수사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는 원론적 차원의 주문만은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종교단체에 대한 무리한 압수수색을 문제 삼았다. 정상회담 과정에서 ‘오해’로 정리됐다지만,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뉴트 깅그리치 전 미국 연방 하원의장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언론 기고를 통해 한국 특검의 종교 지도자 압수수색을 비판하며 향후 몇 주가 한·미 양국에 중요한 순간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보수 진영의 지적을 ‘내정 간섭’으로 일축할 일만은 아니다. 특검 수사가 또 국경선을 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검은 권 의원이 윤 전 본부장에게서 1억여원을 받은 혐의를 포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수사와 맞물리면서 친윤계 좌장 격인 권 의원 수사는 다른 사안보다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럴수록 수사에 정치적 동기가 개입돼선 안 된다. 정치적 예단을 배제하고 법리와 증거만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해야 공정성을 담보하고 불필요한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다. 여당은 수사 기간을 자의적으로 늘릴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 기존 사법체계 밖에서 독립적이지만 한시적으로 운영돼야 하는 특검 제도 취지와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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