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 고향이란 작품 속이지만
박경리문학관 찾을 때마다 평안
마음 기댈 데 있다면 거기가 고향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가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린다. 어린 시절 나는 가족과 뱀사골과 장터목, 천왕봉에 오르기도 했다. 아버지가 텐트 치느라 진땀 빼셨지만 나는 온갖 벌레들이 날아드는 허술한 텐트 안 우둘투둘한 바닥에 누워 자는 게 끔찍이 싫었다. 진주 대평면 태생인 아버지는 지리산을 사랑하셨던 것 같다. 이제는 새벽같이 산에 가자며 다그치는 이가 없어서 굉장히 서글프다.
구례 시외터미널과 화계장터에서 승객이 다 내렸다. 버스 안에는 운전기사와 나만 남았다. 오른쪽 창밖으로 섬진강이 흐른다. 배를 파는 노점상도 보인다. 하동 배는 유난히 달고 시원했는데. 만약 지금이 봄날이라면 여기 십리벚꽃길은 꽉 막혀 오도 가도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길을 걸었던 게 스무 해 전쯤이었던 것 같다.
“기어이 고향 땅에 알을 슬어야겠다는 연어 떼처럼/오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듯이 사람들/미친 듯이 쏟아져 나와/가슴마다 스위치를 켜고/화개천 십리길을 따라 오른다/머리가 어디에 있는지도,/꼬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느릿느릿 꾸역꾸역 떠밀려 간다/여기저기 환호성 마구 터진다”라는 진효정 시인의 ‘십리벚꽃’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하동에서 태어나 하동에서 생활하고 있는 시인의 눈엔 십리벚꽃길 꽃구경 온 인파가 새삼스러웠을 것이다.
지금 나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위치한 박경리문학관에 가고 있다. 오는 10월18일에 열릴 ‘2025 토지문학제’를 앞두고 공모한 ‘평사리문학대상’ 시 부문 심사를 맡았기 때문이다. 2001년 가을에 나는 평사리에서 박경리 선생님을 처음으로 뵈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은 어디서나 살 수 있지만 마음의 고향을 잃으면 안 된다.”라고. 선생님이 품으셨던 ‘마음의 고향’은 어디였을까? 통영일까? 하동일까? 원주일까? 선생님이 고등학교를 다닌 진주를 민란의 시발지라고 말씀하시며 각별한 애정을 보이셨지만, 그곳을 고향이라고 여기지는 않으셨겠지. 어쩌면 특정한 물리적 장소가 고향이 아니라 선생님의 작품 속 모든 공간이 마음의 고향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고향 없는 사람이 아닐까?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10.28.~2008.5.5.) 선생님의 작품과 생애를 만날 수 있는 문학관 및 기념관은 전국에 세 군데 정도 된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박경리 선생님 관련 기념관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효율적으로 이용하게끔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각 지역의 공간은 나름의 특성을 가지고 활발하게 유지되어 가는 것 같다. 올해가 소설 ‘토지’ 완간 31주년이라고 하니, 인근에 있는 문학관을 찾아봐도 좋겠다. 여기에 간략히 소개하자면,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토지문화관’이 있다. 1999년에 개관했다. 박경리 선생님께서 따님 내외와 생활하며 오랫동안 집필에 몰두하셨던 곳이다. 박경리뮤지엄도 있고 영화관도 있으며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도 운영하고 있다.
다른 한 곳은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하동 평사리의 ‘박경리문학관’이다. 2004년에 설립된 평사리문학관이 2016년에 박경리문학관으로 이름을 바꿔 새로이 단장했다.
널리 알려진 곳으로는 ‘박경리기념관’이 있다. 선생님의 생가와 묘소가 있는 통영 소재로 2010년에 개관했다. 내게 한국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꼭 언급하는 통영. 박경리기념관에 갔다가 세병관에 들르라고 말한다. 나는 중앙시장에서 충무김밥 먹고 동피랑에 올라 바다로 지는 노을을 보곤 했다. 오래전 일이다. 통영 해양과학대학교에 출강하던 시절이었다.
뭔가 문학관 가이드의 글처럼 되어 버렸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고향에 관한 얘기. 고향은 생물학적으로 태어난 곳일까, 시골 할머니댁일까? 가장 오래 살아서 기억이 포개진 곳일까? 이상향일까? 귀향해 보면 여전히 사람 우습게 알고, 시기 질투 가득한 곳일까? 마음의 고향이라는 추상적인 거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가만히 마음 하나 기댈 데 없는 나는 고향도 타향도 다 부질없다는 생각에 미친다.
김이듬 시인·서울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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