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증원으로 시작된 의·정 갈등이 상당수 전공의 9월 복귀 전망에 힘입어 봉합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 필수의료 공백과 지역의료 격차 같은 해묵은 과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시스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건복지부는 ‘국민 중심 의료개혁 추진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재설계해야 하는지 두고 여러 자료와 견해들을 소개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필수의료 분야의 붕괴와 심각한 지역 불균형이다.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의 전공의 확보율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2024년 레지던트 1년차 확보율을 보면 소아청소년과는 26.2%에 그쳤다. 이는 고된 업무에 비해 낮은 보상과 높은 의료사고 부담 탓이다.
지역의료 격차 역시 심각하다. 서울의 인구 10만명당 의사 수는 479명이지만, 경북은 215명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지방 환자들의 ‘원정 진료’가 만연해졌고, 2023년 서울 소재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타지역 환자는 633만명에 달했다. 결국 아프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지역의료 생태계는 점점 더 황폐해지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희귀질환 진료에 집중하고, 지역병원들은 포괄적인 2차 진료 역량을 키우는 한편, 동네의원은 예방과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주치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의 지역 보건전문가 네트워크나 독일의 병원 역할 세분화 사례 등 해외의 성공 경험을 우리 현실에 맞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한다.
의료개혁의 방향은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지역별·기능별 불균형을 해소하고, 다양한 의료인력이 협력할 수 있는 팀 기반 진료체계를 구축해 공정한 보상체계를 시급히 마련하는데 맞춰져야 한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해결될 수 있을지 불안감을 해소할 안전망 구축도 중요하다. 자동차보험과 같이 책임보험·공제 가입을 의무화하면서 보험료 재원은 국가 지원이나 부가가치세 개념과 같이 의료비와 별도로 징수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의료분쟁을 둘러싸고 현재 1심만 보통 3~4년 이상 소요되는 민사소송,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장기간 소요되고 있는 수사, 성립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의료분쟁조정과 같은 해결 절차 또한 개선이 필요하다. 중대한 과실이 없는 의료사고에는 형사처벌보다 보험 등을 통한 민사상 해결로 먼저 신속히 처리하는 제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자 간 신뢰 회복이다. 의료개혁은 어느 한쪽의 희생만 강요해서는 이뤄질 수 없고 그러한 개혁은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의사가 소신껏 진료하고 환자는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국민과 의료계 간 신뢰가 싹틀 수 있다. 의료개혁은 길고 험난한 과정이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건강하고 안전한 의료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경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soo.kim@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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