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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산불 덮쳐… 숲과 함께 살던 유럽인들의 삶까지 파괴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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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16 19:00:00 수정 : 2025-08-16 18:02:36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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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27개국서 1599건 산불

유럽의 숲은 ‘몰로토프 칵테일’
6월부터 40도 넘는 폭염에 가뭄 겹쳐
8월 초까지 피해 면적 작년 규모에 육박
추세대로면 역대 최악 피해 기록 전망

佛 “기후변화가 원인” 규정 움직임
유럽 대륙의 온난화 속도 유난히 빨라
지표면 온도 산업화 이전比 2.3도↑
전 세계 평균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아

불타는 숲, 사라지는 거주지
숲과 인간 거주지 뒤섞인 특성 피해 키워
와인 명소 佛 오드 포도나무 80% 불타
그리스·伊·스페인 관광 산업 타격 극심

유럽의 숲이 불타고 있다. 지중해의 바람이 불어오는 남프랑스의 포도밭, 진한 향기가 풍겨나오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올리브 나무들, 고대신전을 둘러싼 그리스의 수풀들까지 수많은 이들의 기분좋은 상상을 자극하는 숲의 훼손이 심각하다. 올여름 극심한 산불이 유럽을 덮친 탓이다. 이미 지난해 불탄 면적에 육박하는 숲에 화재가 발생했고, 이대로라면 역대 최악의 산불 시즌으로 기록됐던 2017년을 뛰어넘을 기세다. 유럽 대륙의 특성상 산불은 자연뿐 아니라 지역민들의 삶을 파괴해 해당 국가뿐 아니라 전 유럽이 긴장하고 있다.

대형 산불이 발생한 그리스 서부 파트라 인근 추칼레이카 마을에서 12일(현지시간) 한 주민이 산불로 타오르는 언덕을 바라보고 있다. 파트라=AP연합뉴스

◆‘아비규환’, 곳곳에서 번지는 산불

12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스페인에서는 지난 한 주간 다수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해 주민 수천 명이 대피했다. 스페인 북부 카스티야 이 레온 지역에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로마 시대 금광 라스 메둘라스 유적지가 피해를 입었다. 남부 해변 도시 타리파에서는 8일 진화됐던 산불이 다시 번지기도 했다. 포르투갈에서는 중부와 북부에서 대규모 산불 3건이 발생하면서 소방 당국이 진화에 나섰다. 이탈리아에서는 베수비오화산에서 산불이 발생해 소방관 190명과 군대가 진화를 위해 파견됐고 베수비오 국립공원은 산불로 폐쇄됐다.

다른 지역의 피해도 심각하다. 프랑스 남부에서는 지난 5일부터 프랑스 오드 지방에서 시작된 산불이 가뭄과 고온, 강풍으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이미 수도 파리 면적을 넘어서는 수만㏊의 숲이 불탔다.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도 산불로 신음 중이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감시기구 코페르니쿠스가 운영하는 유럽산불정보시스템(EFFIS)에 따르면 12일(현지시간) 기준 EU 소속 27개 국가에서 1599건의 산불이 발생해 서울 면적의 6.8배에 달하는 40만9220ha의 숲이 잿더미로 변했다. 2024년 한 해 동안 기록한 산불 피해 잠정치인 41만9298ha에 육박하는 수치를 7개월여 만에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동일 기간에 1089건의 산불로 19만8643ha가 소실된 것과 비교하면 산불 건수는 약 46.8%, 소실면적은 116.9%나 늘었다.

현재 추세로는 올해 EU 27개 국가들의 산불 피해가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낸 2017년, 2022년을 넘어설 기세다. 2017년 유럽은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무려 98만8427ha가 소실되는 최악의 산불 피해를 경험한 바 있다. 2022년에도 스페인, 루마니아 등에서 큰 산불 피해가 발생해 83만7212ha가 불탔다. 일반적으로 유럽 지역, 특히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대형 산불이 8월 말과 9월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터라 이 시기를 지나면 2025년이 역대 최악 산불의 해로 기록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 불쏘시개 된 숲

기후위기로 인해 계속된 폭염이 유럽의 숲을 작은 불씨에도 불타오르는 ‘불쏘시개’로 만들었다. 이미 4~5월 계절에 맞지 않는 더운 날씨가 속출하는 등 조짐을 보이던 유럽 지역은 6월부터 30도 후반~40도를 넘나드는 극심한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중부, 남부 유럽과 동유럽 곳곳이 최악의 더위를 경험하며 신음 중이다.

지난해 여름에도 유럽 지역에 극심한 폭염이 이어졌지만 당시엔 주기적인 여름 폭풍 등으로 인한 집중 강우 등으로 적어도 산불 관련해서만큼은 피해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폭염이 가뭄과 함께 이어지며 낮은 습도까지 더해져 숲의 나무들이 바싹 마른 상태다. 과학자들이 현재 유럽 숲의 상태를 화염병을 뜻하는 ‘몰로토프 칵테일’이라 부를 정도다. 스페인 국가연구위원회(CSIC)의 화재 전문가 크리스티나 산틴 누뇨는 극심한 더위, 강한 바람, 장기간의 가뭄이 이어지면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한 것은 “예상된 일”이라면서 “현재 유럽의 숲은 작은 불꽃만으로도 어디서든 화재가 번질 수 있는 몰로토프 칵테일의 모든 요소가 갖춰진 상태”라고 밝혔다.

폭염과 이로 인한 연속된 산불의 근본 원인이 기후변화라는 것은 이제 확고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영국 기반 환경단체인 카본브리프는 “유럽의 극심한 더위는 전 세계적 추세와 일치하지만 이 대륙은 세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빠르게 온난화되고 있다”면서 “지표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약 2.3도나 상승해 전 세계 평균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이는 토양과 수목을 건조하게 만들어 기록적인 화재 시즌을 초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정부 차원에서 기후변화를 산불 급증의 직접적 원인으로 규정하는 분위기다. 아녜스 파니에 뤼나셰르 환경장관은 자국의 올해 산불이 1949년 이후 최대규모라며 “기후변화와 가뭄에 따른 결과”라고 밝혔다.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도 이번 화재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기후변화, 가뭄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9일 아테네 인근 팔라이아 포카이아에 발생한 산불에 소방헬기가 물을 뿌리고 있는 모습. 아테네=AFP연합뉴스

◆삶까지 파괴하는 산불에 초긴장

유럽이 연속된 산불에 여타 대륙보다 더 큰 비명을 지르는 것은 숲과 인간의 주거 지역이 분리되지 않은 지역이 많은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유럽은 개발된 거주지역이 개발되지 않은 야생 식생과 인접하거나 섞인 지역을 말하는 ‘야생지대-도시 접경지역(Wildland and urban interfac·WUI)’의 비중이 높은 대륙으로 손꼽힌다. 지역 전체의 약 10%가 WUI로 분류되며, 지중해 국가 등에서는 이 비율이 20~30%까지 치솟기도 한다. 반면, 광활한 국토와 넒은 숲을 보유한 캐나다, 러시아는 이 비율이 5% 미만으로 추정된다. 유럽의 경우 산불이 발생하면 식생 외에 인접한 주거지와 생활 인프라까지 파괴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CSIC의 산틴 누뇨는 “유럽의 WUI 지역은 밀집된 인간 거주지와 건조한 숲이 서로 얽혀 있어 재앙적인 화재의 완벽한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도 WUI 비율이 높은 캘리포니아 등 특정 지역의 경우 산불이 대규모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로 이어진 바 있다. 유럽은 평균 인구밀도도 높아 인명, 재산 피해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특히, 농업과 관광업 등이 주요 산업인 지역의 경우 산불은 아예 삶 자체를 파괴한다. 산불로 궤멸적 피해를 입은 프랑스 남부 오드 지역의 경우 와인 생산이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기반이다. 당국은 이번 산불로 지역 포도나무의 80%가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고 추산하고 있으며, 살아남은 포도나무조차도 연기로 인한 생육 부진 등으로 당분간 품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지역에서 7대째 와인 생산을 해온 바티스트 카발은 “포도밭은 불에 타고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한탄했다.

12일 파트라 인근 숲에 발생한 산불을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 파트라=AFP연합뉴스

관광업 타격도 엄청나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산불이 극심했던 2022년 이후 예약 감소 등 관광업 경기 후퇴를 경험한 바 있다. 산불로 인해 자연 경관, 문화재 피해 등이 더 확대될 경우 여행객 들의 방문이 줄어들며 아예 관광산업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더 뜨거운 여름과 산불 등으로 인해 유럽 관광객들이 여행 지역과 시기를 옮기고 있다”고 전했다.

산불의 파괴적 영향력을 알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이미 여름 산불 시즌을 앞두고 자국 소방관을 프랑스, 그리스 등 산불 다발 지역에 파견하는 등 공동 대응에 나섰다. 지난 6월 EU 본부인 브뤼셀에서는 150여명 이상 전문가들이 모여 통합 산불 위험 관리(IWRM)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산불 관련한 비상 대비, 공공 인식, 실시간 데이터 인프라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산불을 사전 예방하고 공동 대응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점점 더 뜨거워지는 지구와 이로 인한 산불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실감하는 실정이다. 국제 기후단체인 글로벌포레스치워치의 연구원 사라 카터는 “기후변화로 인해 따뜻한 여름이 기본적으로 길어지고 있다”며 “여름 중반의 매우 더운 몇 달에 몰려 있던 산불 집중 기간도 양쪽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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