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이상근 감독과 6년 만에 호흡 맞춰

낮에는 천사, 새벽에는 악마. 13일 개봉하는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사진)는 매일 새벽 2시만 되면 ‘내 안의 악마’가 깨어나는 여자 ‘선지’(임윤아 분)와 그를 지키려는 남자 ‘길구’(안보현 분)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회사 생활에 지쳐 퇴사한 뒤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는 백수 길구는 아랫집에 이사 온 청순한 미인 선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사랑에 빠진 길구는 친구에게 말한다. “진짜 천사가 있다면 그렇게 생겼을 것 같아!”
하지만 그날 새벽, 길구는 천사가 아닌 악마로 돌변한 선지를 마주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그녀는 전날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다. 귀신처럼 머리를 늘어뜨린 채 광기 어린 눈으로 어디론가 빨리 가야 한다며 악을 쓰고, 길구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른다.
그녀는 밤이 되면 다른 사람이 된다. 낮에는 빵집을 운영하며 프랑스 제과 유학을 준비하는 반듯한 청년, 그러나 새벽 2시부터 3시간 동안은 편의점 쓰레기통을 집어던지고 난동을 부리는 등 온갖 사고를 일으키는 악마의 얼굴로 변모한다.
이 기이한 현상 뒤에는 선지 가족의 오랜 비밀이 숨어 있다. 선지 아버지 ‘장수’(성동일 분)의 입을 통해 이 진실이 드러나고, 길구는 선지의 새벽 산책을 감시하고 보호하는 아르바이트에 나선다. 그렇게 두 사람은 묘한 관계를 쌓아간다.
영화는 웃음과 감동을 절묘하게 엮어낸 장편 데뷔작 ‘엑시트’(2019)로 942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상근 감독의 신작이다. 임윤아는 ‘엑시트’ 이후 6년 만에 이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이 감독이 11년 전 이 영화 시나리오의 초고를 쓸 당시 붙인 가안은 ‘두시의 데이트’였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 감독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를 이어간다. 그러나 전작과 비교하면 재미와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초반부는 캐릭터 코미디로 개성을 드러내지만, 중반 이후 선지의 ‘악마 들림’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드라마로 급전환되며 극의 톤 변화가 매끄럽지 않다. 갈등 해소도 허무하게 느껴지는 전개로 몰입감을 떨어뜨린다.
임윤아는 극 중 ‘낮의 천사’와 ‘새벽의 악마’ 사이를 오가며 극의 활력을 끌어올린다. 낮의 ‘파스텔 톤’ 선지에서 새벽의 ‘비비드’한 악마로 변신하는 1인 2역은 확실히 흥미롭다. ‘엽기적인 그녀’와 ‘순수한 그녀’ 사이에서 어리둥절해하는 안보현 역시 기존의 강인한 이미지를 벗고 순수하고 무해한 인물로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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