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서 10년간 1200경기 경험
마이애미·애틀랜타 DH 1·2차전 누심
안정적 판정… “훌륭하게 역할” 평가
11일은 주심 나서 볼·스트라이크 가려
KBO, 女심판 0명… 韓 4대종목 중 유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는 이미 여성 코치와 여성 단장이 등장하는 등 그동안 ‘금녀의 벽’이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선수를 제외하고 여전히 여성을 볼 수 없었던 영역이 존재했다. 바로 심판이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는 1997년, 미국프로풋볼(NFL)은 2012년에 여성 심판이 처음 등장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최초로 여성 심판을 투입한 것과 비교하면 MLB에서 여성 심판에 대한 벽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그랬던 MLB ‘금녀의 벽’이 드디어 무너지는 장면이 연출됐다. 여성 심판 젠 파월(48)이 10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트루이스트파크에서 열린 마이애미 말린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더블헤더 1차전에 1루심으로 나선 것.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경기에서 여성 심판이 판정을 내린 건 1876년 내셔널리그(NL) 창설 이후 150년 만의 일이다.

경기 시작 전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낸 파월은 1루 라인을 따라 가볍게 뛰며 몸을 푼 뒤 마이애미 1루 코치와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긴장 속에 경기가 시작했지만, 빠르게 적응한 파월은 1회 초를 마친 뒤 애틀랜타 선발투수 허스턴 월드렙의 손을 살피며 이물질 검사를 했다. 3회초 마이애미가 병살타를 쳤을 때는 1루에서 역동적인 동작으로 아웃을 선언해 눈길을 끌었다. 애매한 순간도 있었지만 비디오판독 요청이 나오지는 않는 등 안정적이었다.
파월은 이어 열린 더블헤더 2차전에서는 3루로 자리를 옮겨 판정했다. 양측 벤치로부터 별다른 항의 없이 안정적으로 경기를 마친 파월은 “오랫동안 기대했던 꿈을 이뤘지만,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애틀랜타 브라이언 스닛커 감독은 “파월 심판이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고 평가했다.
파월은 11일 여성 주심을 맡아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에 나서며 또 한 번 새 역사를 쓴다. 여성 주심도 MLB 사상 그가 최초이기 때문이다.
미국 뉴저지주 웨스트 밀포드 출신인 파월은 대학에서 소프트볼 포수로 활약했으며, 2001년 미국 여자 야구 대표팀 선수로 뛰었다. 미술을 전공해 한때 미술교사로 근무했다. 2010년대 초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소프트볼 심판으로 꾸준하게 활약해 오던 파월은 2015년 메이저리그 심판 테드 배럿의 눈에 띄었다. 파월의 잠재력을 알아본 배럿의 권유로 2016년 마이너리그 심판 아카데미를 수료한 파월은 그해 6월 루키리그에서 프로 심판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1200경기 이상 실전 경험을 쌓아 차근차근 상위 리그로 승격했다. 파월은 2023년 마이너리그 최고 수준인 트리플A에 34년 만에 나온 여성 심판이 됐다. 지난해와 올해는 역대 세 번째로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주심을 본 여성이 됐다. 올 시즌 개막에 앞서 MLB 사무국은 파월을 대기 심판 ‘콜업 리스트’ 17명 중 한 명으로 선발했고 마침내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주인공이 됐다.
처음 마이너리그 심판을 시작한 뒤 10년을 기다렸던 파월은 자신의 심판 배정이 통보된 지난 7일 “정말 오랫동안 바라왔고 노력한 게 현실이 됐다. 완전히 충전된 배터리처럼 준비됐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는 이날 역사적인 경기를 마친 후 “NFL의 여성 심판 사라 토마스도 응원해 줬다”며 활짝 웃었다. 파월은 이날 심판을 보며 썼던 모자를 명예의 전당에 전달했다.
MLB에서 여성 심판에 대한 유리천장이 깨지면서 이제 미국 4대 프로스포츠 중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만 여성 심판이 없는 리그로 남았다. 한국에서는 4대 프로종목(야구·축구·농구·배구) 중 프로야구만 여성 심판이 없다. 다만 아마추어 야구를 관장하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소속으로는 김민서(40) 심판위원이 유일한 여성으로 12년째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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