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유연성’ 한국 지지도 포함
美 체면 살리며 국익 지키도록 해야

미국의 구체적인 ‘안보청구서’ 제시가 임박했다. 한국의 국방비 지출,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 한·미 관세협상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요구를 담은 ‘한·미 합의 초기 초안’을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입수해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의 국방비 지출 국내총생산(GDP) 대비 2.6%에서 3.8%로 인상, 주한미군 주둔을 위한 방위비 분담금 10억달러 이상 증액,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정치적 지지 선언을 요구하고 있다. 문건이 사실이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청구서 윤곽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이 다른 동맹국에 GDP 대비 5%의 국방 지출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3.8%는 낮다고 볼 수 있으나 재정부담이 상당한 액수인 것은 분명하다. 올해 한국의 국방예산은 처음 60조원을 돌파한 61조2400억원 규모다. 미국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50% 가까운 예산 증액이 불가피하다. 증세나 복지 지출의 감소가 우려될 수밖에 없다. 방위비 분담금도 마찬가지다. 방위비특별협정(SMA)에 의해 내년 한국의 분담금은 약 11억달러여서, 10억달러 증액은 2배 가까운 인상을 의미한다.
중국 견제를 의미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도 뜨거운 감자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8일 한국 취재진과 만나 자리에서도 “주한미군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미국 정부와 미군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시사하고 있다. 한국이 다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때처럼 한·미 동맹의 발전과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라는 외교안보적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의 새로운 분수령이다. “당신은 카드가 없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처지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면서도 한·미동맹의 가치와 국익을 훼손하지 않는 카드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이 다른 동맹국에 비해 국방비 지출 비율이 여전히 높은 모범국으로서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도 경제발전에 맞춰 적극 협조해왔음을 설명해야 한다. 또한 미국의 3대 무기 수입국이자 미국의 국방력 증강의 최대 파트너임도 강조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승부사적 기질을 볼 때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라는 최악의 카드를 꺼낼 때를 대비한 대응카드도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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